Once upon a time there was a little girl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이런 것들 해보셨나요? 저는 4학년 때부터 조금씩 이런 대단한 활동에 아장아장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더니, 드디어 저도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었거든요. 태어나서 10살까지 죽기 살기로 아프고 11살부터는 살만했습니다. 10년 주기로 대운이 든다는 말이 있다고는 하던데, 저에게 초등학교 4학년이 대운이 든 시기였나봅니다. 개근도 했거든요. 지금은 개근이 의미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개근상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4학년은 아프지 않아서 나름 행복하고 대견한 해로 기억됩니다.
개근도 개근이지만, 나머지 공부도 벗어나게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때는 나머지 공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공부를 못하면 남아서 담임 선생님과 공부를 하고 집에 가야 했습니다. 구구단 외우기도 시계를 보는 것도 저에게는 너무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몇 시니?”라고 물으면 밥 먹을 때가 되었나 생각해보고 얼버무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면 “너 아직도 시계볼 줄 몰라?”하는 말이 따라 왔습니다. 하지만 4학년이 되고서는 달라졌습니다. 결석 없이 매일 학교를 다녀서 기본은 하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사람노릇을 하며 결석하지 않고 1학기를 마쳤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결석 없이 학교를 다녔던 것에 대해서 대견하게 생각하시며 자전거를 사주셨습니다. 빨간색 안장의 핑크색 자전거였습니다. 안장에 앉으면 바닥에 발이 닿을 듯 말 듯 했습니다. 보도 블럭에 한발을 걸쳐 놓고 한발은 페달에 놓고 밟을까 말까를 고민하기를 한참. 망설임 끝에 힘겹게 페달을 밟으면, 흔들흔들 거리다 넘어지기 직전 간신히 보도 블럭에 한발을 도로 걸치게 됩니다. 남들이 타는 것을 볼 때는 참 쉬워 보였는데, 막상하려니 정말 두려웠습니다.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 있던 저를 보고 있던 아빠는 뒤에서 잡아주셨습니다. 아빠가 잡아 주었던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바닥에 박힐 것 같은 두려움으로 바닥과 발만 보면서 페달을 밟으면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은 천하장사라도 금새 지쳐가니까요.
자전거를 처음 타던 날 기억 나시나요? 든든한 아빠가 뒤에서 잡고 있다고 생각하면 앞을 보고 페달을 밟습니다. 아빠! 아빠를 연신 부르다가 아빠의 대답 소리가 점점 희미해질 때, 자전거도 푹 쓰러집니다. 비빌 언덕이 사라진 시점에서 두려움이 몰려와 페달을 밟을 용기가 사라지게 됩니다. 원래 자전거 페달은 망설임 없이 힘차게 밟아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가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하는데 아빠가 잡고 있나를 확인하다가 꽈당하게 됩니다. 뒤돌아보지 말라는 유혹을 이기지 못한 여인이 소금 기둥으로 변한 성경 구절과 오버랩이 되네요. 자전거 초보는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때는 왜 깨닫지 못했을까요? 아무튼 그렇게 2주 동안 제 무릎은 성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얻은 것은 자전거에 익숙해졌습니다. 아슬아슬 주행 거리도 제법 길어진 그때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발끝이 아니라 고개를 들고 앞을 보게 되었습니다. 흔들흔들거리긴 했지만, 서툴게나마 주행 거리가 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넘어야 할 산은 전봇대였습니다. 왜 그리 전봇대들이 많았는지.......초딩 자전거 초보가 제일 무서운 것은 전봇대입니다. 부딪히지 말아야지 하고 전봇대를 보고 있으면 자전거는 전봇대로 향합니다. 가고 싶은 곳을 봐야 하는데 가고 싶지 않은 곳을 바라보다가 꽝하는 것입니다. 정말 딪히고 싶지 않은데, 정말 두려운 그 존재에게로 자석처럼 다다가는 자전거가 참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다 크고 나서 알게 된 것이지만, 원래 두려워하면 그곳으로 가게 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급류로 유명한 계속에서 근무하는 훌륭한 래프팅 강사들은 포지티브 포인트(positive point)를 보라고 한다고 해요. “부딪히거나 위험한 곳은 제가 볼테니 여러분은 우리가 배가 가야만 할 곳을 보세요. 포지티브 포인트를 보아야 해요” 그래야 부딪혀 다치는 큰 사고들을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제 핑크색 자전거가 전봇대 마다 부딪혔는지 이제는 속 시원히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전봇대 같은 네거티브 포인트를 계속 신경 썼던 핑크색 안장의 자전거가 자석처럼 전봇대로 빨려 들어가는 게 당연했겠지요.
될 듯 될 듯 아슬아슬 균형을 잡기를 여러 번, 넘어지기 직전 깨달았습니다. 넘어지고 싶으면 아무것도 안하면 됩니다. 그대로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면 됩니다. 다치지 않고 넘어지려면 자전거에서 폴짝 뛰어내리면 됩니다. 자전거를 미련 없이 포기하면 됩니다. 그러면 최대한 다치지 않고 잘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전거와 함께 쓰러지지 않고 주행을 계속하려면 핸들의 방향을 살짝 바꿔서 페달을 밟아야 합니다. 세게 밟을수록 균형을 잘 잡게 됩니다. 아슬아슬 넘어질 듯 말 듯 하는 상황에서 줄타기 하듯 핸들의 방향을 살짝 바꿔가며 페달을 힘차게 밟는 것이 처음엔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한 두 번 하게 되면 그 감각이 몸에 베이게 됩니다. 남들이 보기엔 허우적거리듯 지를 버둥거리는 것처럼 처절하게 보이겠지만요.
그렇게 허우적거리는 시간을 즐기게 될 무렵 자전거 페달을 당당하게 밟게 되었습니다. 자전거 타기의 매력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원하게 와 닿는 바람에 있지 않을까요? 귓불에 스치는 바람소리가 좋아지고 내리막이 반가워지면서 자전거 타기는 일과가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누가 빨리 동네를 한 바퀴를 돌아오나 경주도 하고, 자전거 계주도 하고 즐거웠습니다. 더 이상 아프지 않다는 자유로움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결석과도 영원히 이별할 수 있었습니다. 4학년 인생에 자전거는 포지티브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지금도 자전거를 타면 그 때의 자유로움이 느껴집니다. 딸아이가 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뿌듯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행여라도 다칠까봐 헬멧도 씌우고, 보호대도 씌워줬지요. 넘어질게 뻔하니까요. 며칠 낑낑 대다가 자전거를 여유롭게 타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참 대견했습니다. 저를 닮아 어릴 때는 자주 아팠지만, 지금은 자전거를 씩씩하게 잘 타는 마이 프레셔스입니다. 가끔 “자전거 타고 올게.”라고 말하며 나가는 쿨내 진동하는 녀석입니다. “으이구, 엄마라는 사람이 쯧쯧.” 이런 말을 자주 쓰며 어른스러운 척도 합니다. 엄마가 빵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가끔 저를 부끄럽게 만드는 귀여운 녀석입니다.
마이 프레셔스 딸아이 역시 아빠가 뒤에서 민트색 자전거를 잡아주고 있을 거라는 든든한 믿음으로 페달을 밟기 시작했었지요. 뒤에서 붙잡아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는 순간 혹은 자전거는 옆으로 푹 쓰러집니다. 뒤에서 잡아주지 않고 있다는 의심의 드는 순간 딸의 자전거도 흔들렸습니다. 왜 자꾸 끝까지 잡아주지 않는거냐고 따지는 딸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타는데 뭘 잡아.” 부모의 두 발로 달리는 자전거를 따라 잡기는 힘듭니다. 잡아주는 이유는 놓기 위함임을 이해시키기까지 실갱이는 있었지만, 잘 타고 있다는 말에 힘을 얻은 딸의 표정은 밝아졌습니다.
가끔 아파트 단지 주변을 돌며 딸아이와 저의 처음을 떠올려 봅니다. 그때의 그 바람처럼 자유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참 행복합니다. 페달을 밟을 때 이미 주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자유롭게 바람을 느끼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페달을 밟아내는 것입니다. 아직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분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한 가지만 떠올리세요. 네비게이션이요. 갑자기 네비게이션? 이라고 의아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자전거를 잘 타는 방법을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네비게이션 사용법과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용법이랄 것이 따로 있나? 할 정도로 간단한 네비게이션 사용법과 같습니다.
스마트폰의 네비게이션을 켜면 앱이 실행됨과 동시에 지금 내가 있는 위치를 표시합니다. 그리고 돋보기를 눌러 갈 곳을 찍습니다. 그리고 도착지로 설정하면 됩니다. 자전거를 준비합니다. 바닥에 발이 닿는지, 타이어 바람이 적당한지, 체인은 제대로 끼워져 있는지 살펴보고 올라탑니다. 페달에 발을 올리고 주변을 살핍니다. 그리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갈 곳을 정합니다. 화단앞일 수도 있고 정문까지 일수도 있습니다. 고개를 들고 페달을 밟기만 하면 자전거는 굴러갑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한번 자전거를 만져보세요.
그런데 막상 안장에 올라타려니 너무 두려우신가요? 두려운 게 당연합니다. 운조 초보가 핸들이 무서운 것처럼요. 네비게이션이 있어도 초행길이 두려운 건 당연합니다. 다녀본 길이라면 훨씬 더 안정적으로 운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장에 올라타 페달을 밟기 전 자전거를 끌고 가려고 하는 곳까지 가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끌고 가면서 중간 중간 브레이크도 잡아봅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 위치로 가서 페달을 밟아보세요. 자녀를 무서워하는 자녀들이 있다면 한번 시도해 보세요. 며칠은 그냥 끌고만 다니게 나두세요. 그리고 용기내서 안장에 올라탔다면 고개를 들고 갈 곳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