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들어오는 한국 식품들은 당연히 한국만큼 다양하지가 않다. 가격도 한국보다 비싸고, 선택의 폭이 매우 제한적이다. 그런 와중에 나처럼 향미증진제니, 글루타민산 나트륨이니, 색소니 하는 식품 첨가물을 뺀 제품을 사려면 그 폭이 더 좁아지게 된다.
간장이 족히 스무 가지는 넘게 진열되어 있는 대형 한국식품점의 매대에서 난 내가 찾고 있던 '탈지 대두'가 들어가지 않은, '대두'를 원료로 한 간장을 찾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노안이 와서 안경을 벗고서야 그 작은 글씨들이 겨우 보이는 마당에, 일일이 간장을 집어 들어 올려 탈지대두인지 그냥 대두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고된 눈 노동에도 난 결국 탈지대두가 들어가지 않은 간장을 찾을 수 없었다.
살림을 시작한 처음부터 유별나게 재료들을 일일이 다 확인해 가며 첨가물이 들지 않은 식품을 구매한 것은 아니다. 살림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었던 나는 그저 엄마가 혹은 시어머니가 하는 방식 대로 따라 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살림에 대한 애정도 열심도 없었기에 그냥 흉내만 내기에 바빴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살림의 본질을 깨닫고 나서는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공부라고 해서 별다른 것은 없다. 그저 가족의 건강을 위해, 살리는 살림을 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었을 뿐이다.
살림의 기본은 가족을 그냥 먹이는 데 있지 않다. 가족을 '건강하게' 먹여야 한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고, 모르고 먹으면 약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책은 나에게 소비자들이 알지 못하는 많은 유해한 식품첨가물이 가득한 가짜 음식들이 가족의 입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알려주었고, 알게 된 것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알게 된 이상, 짧은 혀끝의 풍족함을 위해 길게 가는 건강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보기에 그럴싸하고 입에서만 기분 좋은 음식보단 첨가물을 빼 섬섬하고 단순해도 몸을 살리는 진짜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이고 싶었다.
결국 한국 식품점에서는 탈지대두가 들지 않은 간장은 찾을 수 없었고, 시드니에서 어느 한국분이 유기농 콩으로 직접 메주를 쒀 만든 간장을 주문하기로 했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첨가물 따윈 생각 안 하고 라면을 찾을 때도 있고, 가끔은 캐러멜 색소가 범벅인 줄 알면서도 짜장면을 사 먹는다. 하지만 그런 일탈은 아주 가끔으로 접어두고 대부분 내 부엌에서 만큼은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건강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당연히 나의 음식은 입안에서 폭죽이 터지는 자극적인 맛이 나지 않는다. MSG가 없는 재료들을 사용하다 보니 무언가 입에 촥촥 감기는 감칠맛이 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음식은 그게 멋이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 있는 음식. 자연이 식재료에 넣어준 감칠맛만으로 감사할 수 있는 음식. 그런 음식이 내가 추구하는 음식이다.
닭고기를 무쇠팬에 각종 야채와 함께 구우면서 소금만 뿌려주어도 정말 맛있는 요리가 된다. 소금으로만 간을 하고 나머지는 재료 본연의 맛으로 맛을 낸 음식이라도 색이 알록달록하도록 적절히 채소를 사용하면 접시에 내놓았을 때 무척이나 먹음직스럽다. 이 요리를 먹어본 어느 분이 너무 맛있는데, 정말 소금으로만 간을 한 거냐고 몇 번씩 물어보신 걸 보면 과하지 않고 단순해도 정공법만으로도 통할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MSG로 무장하지 않아도, 향미증진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현란한 색소를 사용하지 않아도 재료 본연의 색과 향과 맛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사람도 음식과 다르지 않다는 걸 살림을 하며 배우게 되었다.
나를 포장하기보단 솔직한 내 모습으로 나를 살려 놓으면 그런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화려하게 외모를 꾸미지 않아도, 내 체취마저 가리는 향수로 내 온몸을 뒤덮지 않아도, 내 그대로의 모습만으로 나는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 나의 맛을 살려줄 '소금' 하나만 찾으면 된다.
내가 누군지도 알아볼 수 없게 하는 수많은 MSG와, 향미증진제와, 색소들은 내 삶에서 걷어내고 싶었다. 나에게 슬며시 스며들어 나의 맛을 더 풍부하게 해 줄 '소금' 하나면 된다.
그런 소금과 같은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음식은 사람을 살리는 원천이다. 사람을 살리는 원천에 사람을 죽이는 온갖 불필요하게 과잉된 것들을 첨가하고 싶지 않다. 인생 역시 나를 살리는 재료로 꾸려가고 싶었다.
엄마가 해주는 조금은 심심하고 밋밋한 요리를 먹으며 아들도 나 같은 생각을 하길 바랐다. 아들도 첨가물을 뺀 음식 같은 사람으로 커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게 되었다. 아들이 자신만의 맛과, 자신만의 향과, 자신만의 색만으로도 아름다운 그런 사람으로 커가길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