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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매기 Jul 03. 2024

맞아 죽은 아이

엄마에게 맞아 죽은 아이가 있었다.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던 웃음끼 하나 없던 5살짜리 여자아이. 서른 중반을 넘어 나를 찾아온 별처럼 빛나고 환한 내 딸도 5살이 되었다. 나는 요새 자꾸만 악몽에 시달린다. 나의 아픔, 다른 이의 아픔, 그리고 내가 아프게 한 사람들이 떠올라서 이따금 숨을 몰아쉬며 새벽에 잠이 깨곤 한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집은 큰 이불가게를 했다. 부모님과 여동생, 남동생 그리고 나까지 우리 다섯 식구는 그곳에서 생활했다.


엄마는 작은 교회를 다녔었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그중에서도 가게 바로 맞은편 아파트에 살던 교회 아줌마는 거의 매일 우리 집에 드나들곤 했다. 젊고, 예쁘장한 새댁은 5살 해리와, 3살 아들 누리를 데리고 자주 놀러 왔다.


나는 그 아줌마가 시도 때도 없이 애들을 데리고 와서 밥을 얻어먹고, 안 그래도 별 볼 일 없는 우리 집 살림살이를 축내는 것이 내심 못마땅했다.


"매기야, 동생들 데리고 가서 같이 과자 사 먹고 놀다 와."

하면서 엄마가 첫째인 나에게 가끔 돈을 쥐어 줄 때면


"쳇, 저 아줌마는 한 번도 우리한테 과자 사준 적도 없는데... 왜 맨날 엄마만 돈을 써!"

하면서 괜히 심통이 났다.


그래서 나는 나와 내 동생들 과자에는 손도 안 대고, 해리와 누리가 들고 있는 과자 봉지를 먼저 뜯어서 홀랑 다 뺏어먹곤 했다. 그런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그 아이들은 우리 남매를 참 잘 따랐다.


나는 그 아줌마가 정말 싫었다. 멀쩡한 자기네 집을 놔두고 왜 허구한 날 우리 집에 와서 자기 딸을 쥐 잡듯이 잡고 혼내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해리는 틈만 나면 야단을 맞았다.


"너! 엄마가 눈치 보지 말라고 했지? 왜 자꾸 눈치를 봐? 너 이리 와봐!"


그렇게 해리를 가게 뒤쪽 구석으로 데려가면, 우리 집 파리채는 어디서 찾았는지 그걸로 연신 바닥을 탁탁 치면서 한참 동안 그 아이를 무릎을 꿇게 하고 벌을 세웠다.


"엄마! 저 아줌마는 왜 자꾸 남의 집에 와서 애를 혼내? 진짜 짜증 나. 오지 말라고 해!"

"쉿! 그냥 모르는 척 해."


엄마는 다 알면서도 남의 집 가정사에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흐르고, 어느 정도 화가 잦아든다 싶으면 말리는 척하면서 그 불쌍한 아이를 잠시나마 구출해 주곤 했다.


해리는 거의 웃지 않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동그랗고 큰 눈, 단정한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항상 주눅이 들어 있었고, 엄마 눈치를 보느라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해리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어느 날, 엄마가 급한 전화를 받고 나에게 말했다.

"엄마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가게 좀 보고 있어. 금방 올게."


엄마는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7살 남동생만 데리고 가게를 부리나케 나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는 상기된 얼굴로 동생과 함께 가게로 돌아왔다. 그때 동생이 대뜸 이런 말을 했다.


"누나, 해리가 죽었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마가 소리쳤다.

"어허!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엄마가 얘기하지 말랬지?"


나는 엄마의 반응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그 불쌍한 아이에게 큰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말이다.


그날 저녁, 엄마는 해리 동생 누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누리와 함께 저녁밥을 먹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갈 무렵, 경찰 두 명이 불쑥 가게로 들어왔다.


"누리가 누구죠?"

"얘가 누리예요." 엄마는 누리를 데려와 경찰들에게 보여줬다.


"아이 몸을 좀 확인할게요."

그 말에 엄마는 경찰들을 도와서 아이의 윗 옷을 천천히 벗겼다.


"아휴... 쯧쯧"

누리의 몸에는 멍 자국이 가득했다.


경찰관이 들고 있던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누리는 영문도 모른 채 그저 멀뚱하게 서서 어리둥절 해 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진 촬영을 마친 경찰들이 돌아가고, 얼마 되지 않아 낯선 중년 부부가 찾아왔다. 누리의 친척이라고 했다. 그들은 슬프고,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별말 없이 누리를 데려갔다.


평소와 다르게 참 분주했던 그날, 아무도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나는 조심성 없는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쉽게 엿들을 수 있었다.


해리네는 재혼 가정이었다. 해리 엄마는 애를 낳아 본 적도 없는 계모였고, 특히나 남편이 예뻐하던 딸 해리를 무척이나 미워했다. 매일 조금씩 하던 손찌검이 점점 심해졌고, 그날은 유독 아이를 심하게 혼냈다. 심지어 아이를 쌔게 벽으로 밀쳤는데 머리가 부딪히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그 여자는 기절한 아이를 보고도 살펴보기는커녕 일어나라고 찬물을 한 바가지 끼얹었다. 그렇게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움찔거리는 아이를 그대로 방치하고는 집 밖을 나가서 우리 집에 왔다. 아무 말도 없이 커피를 마시던 그 여자가 갑자기 아이가 쓰러졌는데 어떨지 모르겠다는 말을 꺼냈다. 그 말에 너무 놀란 엄마는 빨리 집에 가보라고 여자를 떠밀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 여자는 그대로 쓰러져 있던 아이가 숨을 쉬지 않자 무섭다며 우리 엄마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었다. 엄마는 즉시 119에 신고했고, 구급차와 함께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 여자는 즉시 체포되었고, 벌을 받았다. 결국 잔인한 살인자는 살아서 교도소 걸어 들어갔고, 허물없는 가엾은 아이는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당시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다소 충격적이었던지 약 25년이 지난 지금도 모든 것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온 동네가 떠들썩했고, 뉴스에도 보도 됐을 정도로 아주 큰 사건이었다.


그 사건 이후, 우리 이불가게는 심한 불경기로 인해서 결국 문을 닫았고, 훨씬 더 삶이 팍팍해졌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때, 아빠는 먼 지방으로 장사를 하러 다니셨고, 몇 달에 한번 집을 찾았다. 그리고 엄마는 아빠도 없는 집에 우리 3남매만 남겨두고, 집을 나갔다.




웃음꽃 한번 제대로 피지 못하고 하늘의 별이 돼버린 그 아이, 그곳에서는 해맑게 빛나길 바라며 '해리'라고 이름 붙여 주었다. 지금은 다 큰 성인이 되었을 동생에게 누이 몫까지 온 세상을 마음껏 누리면서 살라고 '누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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