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동안 모르는 채 여러번 스쳐 지나갔을 네가
갑자기 내 눈에 들어왔던 건 홍대의 아주 작은 bar에서 였다.
친구가 노래하는 작은 무대 위 한 구석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던 너.
노래하는 친구의 더 없이 행복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겨보면
아주 얇고 기다란 기타를 매고 너는 물끄러미 기타만 바라 보고 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튕기는 기타줄을 나는 곁눈질로 흘끔 바라본다.
너의 곁에 있을 때 나는 늘 기분이 묘했다.
구름위에 떠있는 듯 설레이면서도 차분히 가라앉은 안개처럼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좋다고 해야할지 싫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는 그 어중간한 기분.
애매한 것이 싫으면서도 네 곁에 있을 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늘 너를 찾았고, 아무렴 어떻든
결국 너의 옆이 내가 돌아갈 곳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시선이 너의 까만 머리칼을 타고 희미하게 보이는 이마를 거쳐 도톰하고 높은 콧대에 멈춘다.
천천히 내려가던 시선은 너의 입술 까지 가지 못하고 다시 너의 눈동자를 올려다 본다.
너무나도 모호해서 자꾸 빠져드는 너의 눈동자에 나는 집중한다.
쌍커풀 없이 크고 짙은 너의 눈을 깊이 바라본다.
하지만 이렇게 너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는데도 나는 도저히 안을 알아볼 수 없다.
짙은 갈색인지 아니면 까만색인지 모르겠지만 다만 투명하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눈으로 대화할 수 있다고 했던가.
눈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수도 있다고.
그래서 나는 다시 너의 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너를 읽고싶고 너를 알고싶고 너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고 싶은 나의 집착 때문에.
가끔 누군가의 눈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 사람의 눈이 반짝인다 던가, 나를 너무 빤히 쳐다봐서 나 역시 빤히 쳐다보게 만든다던가,
아니면 정말 깊은 눈을 가졌다던가.
나는 그런 눈을 바라볼 때면 저편으로 깊고 짙은 바다를 떠올렸다.
파랗다 못해 검은색으로 뒤덮힌 깊이를 알 수 없을만큼 어둡고 차가운 바다 말이다.
하지만 너의 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너의 눈동자는 바다보다는 호수에 가깝다는 것을.
말도 안되게 투명한,
거짓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깊은 호수.
유명한 사진이나 영화에서만 보던 속이 너무나 훤히 들여다 보이는 그런 호수의 물처럼 너의 눈은 그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를 투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나 투명해서 깊이를 망각하게 하는 그 '투명함'이 공포스럽게 느껴지기 까지 했다.
바닥조차 훤히 드러나 있어서 닿을 수 있을만큼 얕다고 생각하게 만들곤
빠져들고 나서야 헤어나올 수 없을만큼 깊은 바닥이란 걸 알게하는 그 호수.
너무나 환히 보여서 진짜와 진짜를 망각한 가짜를 구별할 수 없고,
거짓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눈.
알고싶지만 알고싶은것에 하나도 닿을 수 없는 그런 호수같은 눈동자.
그렇게 나는 너의 눈 안에서 길을 잃었다.
.
.
.
뒤돌아서는 나를 끝까지 바라보지 않았던 너의 호수같이 투명한 눈을,
나는 여전히 떠올린다.
그리고 너의 눈동자가 까매지는 유일한 순간을 나는 기억한다.
네가 떠나갈 곳을 생각하는 눈과 조용히 속삭이는 입.
너의 눈동자가 선명해지는 그 순간을 너는 기억할까.
나만이 기억하는 그 순간들을 언젠간 너도 꼭 알기를,
그렇게 다시 나아가기를 나는 오늘도 바란다.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오늘도 바래본다.
너의 따뜻한 온기 안에서 내가 추위에 떨어야 했지만
그래도 함께 쓴 우산 안에서 잠시나마 비를 피할 수 있었다.
* 작가의 말
친절한 사람, 착하고 좋은 사람
하지만 결코 내 사람이 될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 내게 따뜻한 목도리를 내어줄 순 있지만
꽁꽁 언 손을 잡아주지 못하는,
함께 우산을 쓸 순 있지만 같이 비는 맞을 수 없는 사람.
너무나 친절해서 차가운 사람.
그 사람을 회상하며 쓰는 글.
여전히 유일한 나의 짝사랑.
그 사람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 제가 말하는 호수는 미국에 있대요.
플랫헤드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