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생 Feb 14. 2022

우리, 뭐 하고 놀까?

휴직 중 아빠와 방학 중 딸 - 36,37일째

- 36일째 - <우리 뭐 하고 놀까?>


"딸, 우리 오늘은 뭐할까?"

"뭐하긴 뭘 해? 나 바빠!"

"네가 뭐가 바빠?"

"운동해야지, 피아노 해야지, 플루트도 해야지, 문제집도 풀어야지, 동생이랑 놀아줘야지, 핸드폰도 해야지, 올림픽도 봐야지, 밥도 먹어야지. 에구~ 쉬는 시간이 하나도 없네"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이상하게 말한 것 같기도 하네"

"아냐. 바빠. 그러니까 아빠 혼자 놀아"


이제 휴직도 막바지에 접에 들었다. 3주만 지나면 즐거웠지만 굉장히 짧았던 1년의 휴직이 끝난다. 1년이 이렇게 짧은 줄 미처 알지 못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라진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 건지, 아니면 놀 땐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일할 땐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이유 때문인진 정확히 모르겠다.


며 칠 남지 않은 휴직을 어떤 식으로 재미있고 알차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그래서 아침에 딸에게 특별한 무언갈 해보지 않겠느냐는 의미로 질문을 했는데 딸은 너무도 바빴다. 정확히 말하면 바쁘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 종일 신경 써서 지켜보았다. 진짜로 바쁜지.


결론은 바빴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많긴 했지만 본인 말대로 라면 쉬는 시간이 아니라 핸드폰 하는 시간, 티브이 보는 시간이지 '쉬는 시간'은 아니라고 한다면 나보다 더 바빠 보였다.

그래서 오후에 유치원에서 돌아온 막둥이를 데리고 놀려고 했다.

"아가, 아빠랑 놀자. 씨름할까?"

"싫어"

"왜 싫어?"

"나 삐졌어. 싫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막둥이는 삐졌단다. 큰애는 바쁘고, 막내는 삐지고, 아내는 일하고, 나는 할 게 없었다. 늘 하던 집안일 빼면 신나는 일이 없었다. 이렇게 시간만 보내면 안 될 것 같은데, 곧 복직인데, 새롭고 신나는 걸 하지 않으면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 시간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무언가를 빨리 정말 빨리 찾아내야겠다.


"애들아, 아빠 좀 재미있게 해 주라~~~"


- 37일째 - <장모님, 생신 축하드려요>


"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근데 우리 오늘 뭐 먹어요?"

오늘은 나의 장모님이자, 아내의 엄마이자, 아이들의 할머니인 분의 생신 날이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생신 축하 인사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우리 딸은 굳이 오늘 만남 장소가 어디인지 거기에서 무얼 먹게 되는지를 더 궁금해하며 물어보았다.


어제저녁부터 우리 딸은 오늘 점심 메뉴에 고민이 많았다. 할아버지가 처음 추천한 대게를 먹겠다고 했다가, 갈비찜을 먹겠다고 했다가, 숯불갈비를 먹겠다고 했다. 그렇게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숯불갈비로 메뉴가 정해졌었다. 하지만 아침에 또 메뉴가 바뀌었다.


그렇게 바뀐 오늘의 메뉴는 숯불 소고기였다. 장인어른이 최근에 가보시고 너무 좋았다며 강력 추천한 식당에서 코로나 정책에 맞추어 우리 식구 4명과 장인어른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이신 장모님을 만났다. 처제네 식구는 저녁을 부모님과 함께 하기로 했다.


장인어른이 추천한 식당의 고기 맛은 정말 맛있었다. 최근 내가 먹어본 소고기 중에서는 단연코 최고라 할 만했다. 오로지 그 이유 하나뿐이었다. 나와 딸이 오늘의 주인공이신 장모님보다, 계산을 하신 장인어른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먹게 된 건 그 뛰어난 맛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우리 생일 인양 수십만 원 상당의 고기를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고기가 살살 녹았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서 침이 꼴깍 넘어간다. 너무 맛있어서 옆에 앉은 딸과 경쟁하며 먹는데 집중하다 보니 사진을 단 한 장도 찍지 못했다. 또 가고 싶다.


"장모님, 생신 축하드려요. 매일매일이 장모님 생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이에요"



이전 19화 "아빠, 맞춰주기 너무 힘들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