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생 Feb 18. 2022

넌 내가 다 키웠지!

휴직 중 아빠와 방학 중 딸 - 40,41일째

- 40일째 - < 보름달 보고 소원 빌자 >


정월대보름 날이다. 저녁 7시쯤 동네 근처에서 짚불 태우기를 한다고 며칠 전부터 나무를 예쁘게 쌓아 놓았기에 시간에 맞추기 위해 일찍 저녁을 먹고 이동을 했다. 그런데 도착했는데 차도 없고, 사람도 없고, 쌓아놓은 장작 더미 주위에는 찬 바람만 강하게 불고 있었다.


그 순간 한 트럭이 들어와 차를 세우고 한 분이 내려 짚불 근처를 돌기에 아내가 물어보았다.

"아저씨, 오늘 짚불 태우기 언제 해요?"

"아~ 오늘 안 해요"

"왜요?"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불똥 튈까 봐 못 해요"


그렇게 며 칠전부터 기다리던 짚불 태우기는 결국 보지 못하고 아이들을 태우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차고에 주차를 하고 뒷마당으로 올라와(우리 집 주차장은 지하에 있고, 계단을 올라오면 뒷마당으로 연결된다.) 하늘을 봤는데 방금 전까지 구름에 가려져 있던 보름달이 구름이 걷히고 환화게 우리를 비쳐주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달을 보며 두 손 모아 기도를 했다. 각자의 소원을 모두 들어주길 바라며. 우리 가족의 소원은 세계평화나 민족통일이 아닌 너무도 개인적인 것들로 비밀을 유지해야 하기에 여기에 적시할 순 없지만 그 소원들이 모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코로나로 인하여 예전처럼 대규모의 대보름 행사를 볼 수도 없고, 작게 하는 것 마저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진행하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들만의 소원 빌기 행사를 밝은 달 아래에서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만, 기온도 너무 낮고 바람도 많이 부는 추운 날이었기에 소원을 짧고 굵게 빌고 바로 집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건 달님도 이해해주실 거라 생각한다. 



- 41일째 - < 넌 내가 키웠지! >


"오늘 막내 유치원 선생님이 전화 왔는데 칭찬을 너무 많이 하는 거야. 지금까지 유치원 역사상 이렇게 착하고 예쁘게 말하는 아이는 처음이래. 그래서 청소해주시는 할머니 선생님도 우리 애를 너무 좋아한데. 인사 잘하고 말도 이쁘게 잘해서"

나 : "그래. 다 내가 잘 키워서 그렇지"

딸 : "아닌데, 내가 맨날 놀아주면서 잘 가르쳐서 그런 건데"

엄마 : "내가 먹이고 재우고 힘들게 키웠는데 무슨 소리야"

막내 : "나 밥 더 줘"


오늘 저녁 식사 시간에 있었던 대화 내용이다. 막내 유치원 선생님과 아내가 통화를 했는데 아내에게 막내에 대한 좋은 말들을 많이 해주었다. 그걸 들은 아내가 기분이 너무 좋아서 말을 꺼냈는데 이 말에 모두 숟가락을 얹기 시작했다.


'내가 잘 가르쳐서 그런 거다', '아니다, 내 덕분이다' 같은 말을 서로 끊임없이 주고받았다. 기분 좋은 것, 잘 되는 것, 잘 나가고 있는 것들에는 나 자신이 약간의 지분이라도 있길 바란다. 그 반대로 안 좋은 것, 잘 안 풀리는 것, 잘 안되고 있는 것들엔 나는 쑥 빠지고 다른 사람 핑계되기 바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행동이 기실 집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직장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 잘 되고 있는 일에는 욕심 있는 몇몇 분들은 서로 자기가 지원해줘서라던가 "그때, 내가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잖아"같은 말을 하며 지분을 요청한다. 그러면서 일이 잘 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일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했다는 듯, 처음 들어본다는 듯, 그런 일이 있었어?라는 듯이 행동하며, 본인은 티끌 조차도 연계되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증명하려 한다.


그런데 나도 그런 사람들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인격을 가지고 있다. 다만, 조금 다른 건 잘 안 되는 일뿐만 아니라 잘되는 일에도 내가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업무가 아닌 이상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한다는 것뿐. 좋든 좋지 않든 어떤 식으로도 무언가에 엮이는 걸 꺼려한다.


다만, 이번엔 가족의 일이고 자식의 일이다 보니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나도 무언갈 했다는 걸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내가 휴직하면서 1년간 자주 안아주고, 놀아주고 했기에 안 그래도 착하고 예뻤던 아이가 마음이 편하니깐 더 좋은 방향으로 자라고 있는 거야. 진짜 나 대단하다" 


이전 21화 뭐든 하면 할수록 늘더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