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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Feb 16. 2022

뭐든 하면 할수록 늘더라

휴직 중 아빠와 방학 중 딸 - 38, 39일째

- 38일째 - <딸과의 말장난>


"아빠가 아는 게 대체 뭐야? 바보~~"

"너는 대체 아는 게 뭐냐? 바보야"

"어쩔티비~"

"저쩔냉장고"

"에베베베베~~~"

"둘 다 유치하게 싸우지 좀 마. 자기는 복직하면 딸이랑 놀고 싶어서 어떻게 하냐?"

"그러게. 민원인하고 통화하다가 '어쩔티비'라고 할까 봐 걱정이긴 하네"


요즘 초등학생 딸과 자주 유치한 말싸움(?)을 한다. 하루 종일 붙어있다 보니 이말 저말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아이들처럼 유치한 말도 주고받고, 놀리고, 괴롭히고, 그러다가 껴안기도 하고, 뽀뽀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혼내기도 하고 그렇게 수많은 말들을 주고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딸과 말할 때는 인간적인 도리로써 최소한의 선만 지킨다면 어떤 말을 해도 되기에 머릿속 생각보다 입이 먼저 말을 하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말을 하는데 고민이 없다.


그렇기에 복직을 하게 되면 비즈니스적으로 상대해야만 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며, 그 사람들과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 안 되기에 벌써 신경 쓰인다. 상사, 동료, 민원인과 대화를 할 때 모두 다른 행동이나 말투 그리고 나오는 말의 태도도 모두 달라야 한다. 실제 '나'는 단 한 명이지만 상대방에 맞춰지는 '나'는 서로 다른 인격인 것처럼 행동해야만 한다. 


이걸 미리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 같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집에서 편안하게 가족들과만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살아갈 수는 없기에, 다시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집에서 미리 마음을 다 잡고 연습이라도 좀 해야겠다.


직장에서는 단 일초도 연습 시간이란 건 없을 테니깐. 오로지 실전뿐.


- 39일째 - < 요리가 늘었다 >


"휴직하면서 제일 많이 한 일이 뭐예요"

"요리요"

"그럼 이제 요리 잘하시겠네요"

"네"(어깨를 쫙 피며 당당한 자세로 말한다)


휴직하면서 가장 많이 한 일이나, 가장 잘하게 된 일 하나만 뽑으라면 단연코 '요리'이다. 그것도 집밥이라 불리는 요리들 말이다. 그중에서도 하나를 굳이 뽑자면 '솥밥'일 것이다.

솔직히 전기밥솥에 밥을 하는 게 더 쉽고 편하기는 하다. 솥밥은 옆에서 불 조절도 하고, 뒤집어 주기도 해야 하는 단점은 있으나 밥 맛이 훨씬 좋다. 그리고 최대 장점은 바로 누룽지이다. 저녁에 솥밥을 하면, 다음날 아침은 누룽지를 끓여 먹을 수 있다. 누룽지에 반찬은 맛있는 김장김치 하나면 충분하다.


그리고 각종 찌개와 국을 끓일 줄 알게 되었다. 콩나물국, 미역국, 된장찌개, 김치찌개 같은 국 종류와 고등어조림, 꽁치조림 등 조림류를 만 39세까지는 못했지만 만 40세가 된 지금은 할 수 있다. 


그렇게 휴직 기간 중 나의 요리 솜씨는 이전의 나와는 전혀 다르게 장족의 발전을 했다. 그런데 나만 요리 솜씨가 늘어난 게 아니었다. 우리 딸의 솜씨 또한 크게 늘었다. 이전에는 라면만 끓여 먹을 수 있었는데 이젠 아니다.

우리 딸이 잘하는 요리는 바로 볶음밥이다. 볶음밥을 정말 좋아하는 딸이지만 재료 자르고, 볶고 하는 과정이 이상하게 귀찮은 느낌이 강해서 가끔씩만 해주었더니 이번 방학 중에는 본인이 직접 만들어서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의 도전 끝에 이젠 나보다 훨씬 맛있게 잘 만들게 되었다.


"딸, 이거 엄청 맛있다!"

"그치, 이젠 내가 아빠나 엄마보다 더 잘 만들어"

"진짜 잘 만들었다"


살면서 많은 도움이 되는 것들도 나에게 급하게 필요하지 않으면 미루거나 끝까지 해보지 않고 포기하게 된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막상 닥치게 되면 결국 하게 되고, 하면 할수록 늘게 된다. 요리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결국 하면 늘게 될 거다. 해야 한다는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올해는 요리 말고 다른 것에 마음을 한번 다잡아 봐야겠다. 우리 딸도 그러길 바란다.

"딸, 너 요리에 소질 있는 것 같은데 볶음밥 말고 다른 요리에도 도전해 보길 바래. 그래야 아빠가 편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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