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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Feb 12. 2022

"아빠, 맞춰주기 너무 힘들다"

휴직 중 아빠와 방학 중 딸 - 34,35일째

- 34일째 - <아빠, 맞춰주기 너무 힘들다>


"아빠 맞춰주는 게 너무 힘들어"

"네가 뭘 맞춰줘. 아빠가 너 맞춰 주느라 피곤하지"

"아빠, 내가 이거 먹자 그러면 싫다 그러고 저거 먹자 그래도 싫다 그러고. 그러니까 내가 맞춰주는 게 힘들지"

"아니, 집에 가서 먹자는데 자꾸 사 먹자고 하니까 그러는 거지"


클라이밍을 하고 나오는 길에 딸과 나누었던 대화이다. 운동 후에는 항상 그렇듯이 오늘도 마찬가지로

"나 배고파. 떡볶이 먹을래? 아님 짬뽕?"

"떡볶이는 지난주에 먹었고, 짬뽕은 이틀 전에 먹었고, 오늘은 집으로 가자"

"집에 맛있는 거 없잖아. 먹고 가자고!"라는 대화로 시작해서 위에 언급한 "아빠 맞춰주는 게 너무 힘들다"까지 대화가 흘러갔다.


나는 방학 중인 딸과 30여 일이 넘게 24시간 붙어있다 보니 지지고 볶고 싸우고 웃으며 최대한 딸이 원하는 걸 맞춰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딸은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본인이 하기 싫은 수학 문제집 푸는 것, 핸드폰이 하고 싶지만 하루 1시간 이상은 사용하지 않는 것, 동생과 더 놀고 싶지만 저녁 8시에는 책을 읽어야 하는 것들을 내가 원하니 맞춰준다고 생각하는 거 아닌가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부녀가 싸우고 삐져도 몇 분후면 농담하며 웃고 껴안고 놀 수 있는 것도 서로가 서로를 맞춰주며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내가 어른이라 나보다 훨씬 어린 딸을 최대한 맞춰주고 있기에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딸아이도 나를 배려해주고 눈치도 보고 본인이 원하는 걸 포기도 하면서 나를 맞춰주고 있었기에 잘 지내고 있는 거였다.


따져보면 딸이 어린 나이에도 나를 맞춰주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더 대단한 것 같다.

'나 딸 잘 키우고 있나 보다. 그리고 딸도 나를 잘 보살피고 있나 보다'



- 35일째 - <넌 엄마 닮았나 봐. 다행히>


"아빠, 아빠! 아~~~ 빠~~!!!"

"아. 왜! 그만 좀 불러"

"그니까 딸이 부르면 바로 대답을 해야지?"

"쳐다봤잖아. 둘 밖에 없는데 그냥 말해. 부르지 말고"


우리 딸은 목소리가 크다. 그것도 꽤나 크다. 그러면서도 낯가림이 없다. 나는 어딜 가든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 편이다.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더더욱. 그런데 우리 딸은 다르다.

썰매장을 가도 몇 번 타고 오면 아르바이트생 오빠들하고 친해져서 내려온다. 클라이밍장을 가도 운동하고 있는 언니들과 통성명을 한다.

"언니, 너무 예뻐요. 몇 살이에요"

"전. 13살이고 000이에요"

"언니, 이름이 뭐예요?"

"언니, 너무 잘한다. 얼마나 배웠어요?"


통성명을 나누면 상대방에게 엄청난 리액션을 보여 주며 대화를 이끈다. 아내를 닮았나 보다. 아내도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어렵지 않게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일적으로 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처음 본 사람과 굳이 인사를 나누진 않는다. 낯 가림도 있지만, 사람들과 새롭게 알아가야 하는 상황이 불편하고 원하는 마음도 없다.


그렇기에 인간관계가 그렇게 넓지는 않다. 직장이 큰 직장이기도 하고, 잦은 인사발령으로 여러 명과 근무를 하기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의 숫자는 많다. 하지만 가족, 친한 친구 몇 명, 직장 사람 이외에 바운더리에서는 가깝게 지내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동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딸과 아들은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사 잘하는 아이들도 유명하다. 그 어르신들은 아이들이 엄마를 닮아서 인사도 잘하고 말도 잘한다고 한다. 나를 닮아서 그렇다고 말하는 분들은 단 한 명도 없다. 당연하다. 나는 동네에서 누굴 만나도 고개 숙여 인사를 할 뿐, 아내처럼 날씨, 건강, 자녀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까지 초대받아 다녀오는 일이 절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예의 없이 상대방을 대한다는 건 아니다. 나는 예의를 꽤나 중시한다. 또한, 어떠한 경우에라도 남한테 폐를 끼치게 되는 경우를 절대적으로 싫어한다. 그렇기에 남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도 굉장히 싫어한다. 서로가 모두 원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한쪽이라 원하지 않은 경우에는 서로의 경계에 들어가지 않는 삶을 추구한다.

 

그런 삶을 추구함에도 우리 딸이 하는 행동을 보면 너무 예쁘다. 인사 잘하고, 눈 마주치면 상대방 좋은 점 발견해서 칭찬해주고, 상대방 말에 격렬히 반응해 주는 딸을 보고 있는 게 어쩔 땐 

"너무 오버하는 거 아냐? 저 언니는 말하기 싫어할 수도 있잖아?"라고 말은 하지만 눈치도 빨라도 상대방이 어떤 말투와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지 금방 파악해서 말을 계속해도 되는지, 그만하고 자리를 비껴줘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우리 딸 참 좋은 사람으로 커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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