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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지다사라지다 Jan 25. 2023

오늘 우리 아이 생일이에요

헤헤 부끄러워요

오늘 우리 아이 생일이에요

그런데 저 말고는 축하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브런치에 글을 써요


제 아이의 생일이라는 건

제가 아이를 출산한 날이기도 하네요

참 무섭고 떨렸지만 산더미 같은 무거운 배를 좀 덜고 싶었기도 한 날이죠

배가 찢어지는 고통을 부여잡고 제가 남편에게 한 첫마디는


"아이는? 아이는 괜찮아?"


아마 모든 산모님들이 같을 것이라 생각해요.


전신마취를 해서 아이를 바로 안아 볼 수가 없었어요.

남편이 찍어준 사진 속에는 으앙으앵 우는 시뻘건 아기가 있었어요

그냥 눈물이 나더라고요. 엄마가 바로 안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때가 미안함의 시작이었을까요?




저는 제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요.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에 축하받을 만큼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내 첫 아이, 내 몸과 영혼의 일부인 내 아이

첫 생일이 되었던 날, 아이 아빠에게 말을 꺼냈어요.


"오늘 우리 꼬마 생일이야."

"응. 왜? 난 어릴 때 부모님이 내 생일 챙겨준 적이 없어. 지금 쟨 기억도 못 할 거야."


저는 근처 카페에 혼자 가서 작은 조각케이크를 사 왔어요.

초도 같이요.

불을 붙여주고 사진을 찍었죠.

그때 아이는 너무 어려서 그게 뭔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작년 생일에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는 친구집에 일부러 찾아가서

내 아이 생일파티를 했어요.

음식도 케이크도 다 제가 준비해서요.

여려 명이 생일축하 노래도 불러주고

불을 끈 채 일렁이는 촛불을 보니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었어요.

만화에서 봤는지 초를 조그만 입으로 후~ 부는데 불이 꺼지지 않았어요.

옆에 있던 누나가 조금 도와줬어요.


아이는 알고 있더라고요. 자신이 축하받는다는 걸요.

그리고 그 자리에 늘 아빠가 없다는 것도요.




오늘 특별한 파티를 해 주지 못했지만

키즈카페에 가서 방방 뛰고 놀다 왔어요.

오늘은 자장가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 줬어요.

아이는 꼭 팔다리 중 하나가 제 살에 닿아야 잠을 자요.

자는 아이를 보니 갑자기 미안함이 파도처럼 밀려와요.

그래서 혼자 거실에 나와 한참을 울었어요.


너는 너무 착하고 예쁜데, 엄마가 너무 못났어.

이런 엄마도 엄마라고 항상 챙겨주고 사랑해 줘서 고마워.

내가 평생 갚을게. 속죄하며 다 갚을게.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고

부모는 살기 바빠 아이들이 받아야 할 사랑을 무한히 주진 못하니까요

하지만 마음속에 항상 채무가 있잖아요

부모는 참으로 빚쟁이예요.




아가. 건강하게 씩씩하게 밝게 자라서

엄마 아빠가 줘야 마땅한 사랑 다 쓸어 받고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받으렴

사춘기가 와서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냐고 대들기도 해 보고 말이지

아빠는 그렇게 술이 좋으면 아주 홀딱 벳겨서 술에 담가 분다고 협박도 해버려


착하게만 살지 말고 뻔뻔하게 살으란 말이야

약해 빠진 엄마가 운다고 와서 윙크하고 애교 부리지 말고

엄마 울 시간 있으면 청소나 하라고 윽박지르란 말이야


너는 나처럼 바보같이 살지 말고

똑 소리 나게 강단 있게 살아

이렇게 쓰고 나니 나야말로 참으로 염치없다

내가 못한걸 너보고 하라니

참으로 뻔뻔하고 면목없다.




여보. 오늘은 당신 아들 생일이야.

당신은 오늘도 전화 한 통 없지만, 적어도 이 날짜는 기억하고 있지?

그렇게 믿고 싶다

어떻게 하냐. 당신의 생각과는 반대로 아이는 기억력이 매우 좋아.

그러니까 뭐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모르겠지만

아이에게 표현을 좀 많이 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당신하고 영상통화 연결해 주니깐

애기가 로보카 폴리 본다고 영상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더라고.

적어도 로보카 폴리보다 보고 싶은 아빠가 되길 바라.




내일은 작은 케이크이라도 사서 촛불 이벤트 해주려고요.

작년 보단 자랐으니 올해는 스스로 촛불을 끌 수 있을 것 같아요.

아까 아이가 자는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나서 기도했어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부모님 품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엄마들이 좀 덜 미안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요.


미안하다고 그만 울고, 행복해서 우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올해는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그리고 사랑을 미루지 마세요.

오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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