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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지다사라지다 May 02. 2023

네 살 아기와 비행기 타기

사서 고생하는 스타일의 엄마

문득 떠나고 싶었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을 알면서도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주 비 합리적인 성향의 나는

이 무모하고도 비겁하고도 말도 안 되는 여행을 꼭 해야만 했다.


왠지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 갈 것만 같았다.


나는 신혼여행을 가지 않았다.

회사일로 지치고 결혼식 준비에도 너무 지쳐서

왠지 결혼해서 살다 보면 해외에 놀러 갈 일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런 기회는 결혼 후 7년째 전혀 없었다.


비상금을 털고 카드론까지 받아가며 비행기 표를 살 때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간 일만 하고 살림하고 애 낳고 육아하던

우직한 소의 시간이 마그마처럼 쌓여서

호랑이의 울음으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쿠팡에서 제일 싼 캐리어를 사서 짐을 욱여넣을 때까지만 해도

나름 설레고 기쁜 마음도 있었다.


비행기에 타기 전 까지는 말이다.




인터넷에 '아기와 비행기 타기'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 보았다.

신생아를 데리고 탄 부부의 이야기는 종종 보였다.

그러나 신생아와 네 살은 아주 다르다.

네 살은 소리 지를 줄 알고, 크게 울고, 일단 뛰고 본다.

아빠 없이 엄마와 네 살 아이 단 둘이 비행기를 탄 경험이 담긴 글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고가의 비용을 치르고 죽음 같은 고생을 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글의 제목은

네 살 하고 절대 비행기 타지 마시오!!!!


부제는

삶이 무료해서 큰 자극이 필요하다면 네 살과 비행기를 타보세요. (나 혼자 죽을 수 없다.)




집에서 공항까지 가는 콜벤을 불렀다.

네 살 아이와 대형 캐리어 가방 세 개를 이고 지고 대중교통을 탈 수 없었다.

공항까지 바래다 줄 지인도 없다.


오전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해가 뜨기 전 새벽에 출발해야 한다.

세 시간 남짓 간신히 눈을 붙이고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데 아기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운다.

아마도 아기 입장에서는 육아에 지친 엄마가 이제는 결국 야반도주까지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현관 앞에 가득 쌓인 짐들과, 어둠 속에서 몰래 옷을 입는 엄마의 광경이란

네 살 아기에게 제법 공포스러운 것이다.


"아니야 아가. 엄마 혼자 가는 거 아니야. 우리 같이 갈 거야."

"우에에에에에에에엥! 우아아아아아아아악!!"


결국 아기는 잠옷 차림에 얇은 패딩을 걸친 채 콜벤에 탑승했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야 아기는 울음을 그쳤다.

오. 엄마가 날 버리지 않았어. 웬일.


낮이었으면 덜 민망했을 텐데, 진짜 아기를 데리고 야반도주하는 여자로 보일 것 같아서

해외에 자주 나가는 데 비행기 시간이 마침 이르고 짐도 많아서 이 차를 타게 되었다고

기사님이 묻지도 않은 얘기를 너저분하게 널어놓았다.

아이도 분위기에 맞게 여유로운 자세로 동요를 흥얼거렸다.


"아 그러시군요. 하하. 남편 분 만나러 가시는 거예요?"

"아. 하하하. 그렇죠 뭐."


남편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으니까.



"이 다리 말이에요. 조금 더 가면 이게 가장 높은 구간이 나와요. 거기가 아주 자살 명소라지 뭐예요.

높이가 진짜 높아서 뛰어내리면 그냥 죽죠. 거기에서 하도 사람들이 차를 대놓고 뛰어서 난리예요."

"아 진짜요? 어휴. 무섭지도 않나. 이 높은 데서 저 깊은 바닷속으로 어떻게 뛰죠?"

"그러게나 말이에요."


공항에 다다르기 전 거쳐야 하는 대교

바다 위의 길고 긴 아름다운 다리

미지의 세계처럼 안개가 자욱하게 낀 이곳

그들은 어떤 사연이 있어서 하늘과 가까운 이곳에서 바다로 뛰어들었던 걸까


죽는 것 대신

땅으로 바다로 꺼지는 대신

차라리 하늘로 한 번 날아보지 그랬어.


바다에 비친 하늘을 보고 당신은 홀로 비행했나

당신만의 세계로




나도 한번 날아보려 해요.

나만의 사연과 희망을 이고 지고

분주하게 하늘을 붕 날아 조금은 잊어보려 해요.

내 뜻대로 된 적도 없고 될 리가 없지만


그래도 한번쯤 용기 내서 날아볼 수 있잖아요.

그러고 나서 다시 힘내 살아볼 수 있잖아요.



네 살과 비행기 타기 시리즈는 한 편에 끝낼 수 없다.

이 비싸고 땀나는 이야기는 연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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