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롯이 써니 Jan 15. 2021

김장김치가 뭐라고!

친정엄마의 부재

  

몇 달 전 허리디스크가 다시 재발했다. 이번에는 디스크가 파열되기까지 했다. 통증도 심했다. 그리고 겨울이 왔다. 김장철이 온 것이다. 어렸을 때는 김장철이 되면 200~300포기의 김장을 하다 보니 막내였던 나도 국민학교 때부터 김장에 참여해야 했다. 배추 포기의 꼭지를 따고 물로 헹구고 나르는 일이 김장에서의 내 포지션이었다. 지금이야 절임 배추를 사서 양념만 만들면 되니 예전에 비하면 일거리가 많이 준 셈이다.


일거리가 줄었다고는 하나, 혼자 하는 김장은 그래도 부담이다. 다른 해 같았으면 햇고춧가루를 사고 멸치액젓이 좋다는 곳에 미리 주문을 해두고 고구마 가루까지 직접 만들어가며 김장을 준비했을 텐데, 올해는 아무 재료도 사지 않았다.


결혼하고 몇 년은 시골에서 직접 담갔다는 김장을 사서 먹었다. 맛이 괜찮기는 했지만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은 아니었다. 사실 맛이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김장김치가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었다.


김장철이 시작되려고 하면 늘 마음 한 곳이 서늘했다. 김장철이 뭐라고 마음까지 서늘할 일인지.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김장 명인들의 책을 사서 읽어보고 동영상도 찾아보며 나만의 김장 레시피를 만들고 정착했다. 엄마가 직접 만들어 주신 김치는 아니지만 엄마의 마음을 담아 김장을 했다. 빨간 김치, 백김치 두 가지씩이나 말이다. 김장을 하다 보면 초등학교 때 배추의 꼭지를 따던 장면이 그렇게 떠오른다. 엄마는 일하는 엄마였고 늘 바쁘셨는데, 어찌 200~300포기의 김장을 하셨을까. 엄마에 대한 애잔함이 밀려왔다. 나는 고작 절임 배추 한 박스, 7~8kg가 될까 말까 한 김장을 그것도 따뜻한 아파트에서 하는데도 허리가 부서질 것 같은데, 주택에 살아서 춥기까지 했던 그때 엄마는 참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김장이 단순히 김치를 담그는 게 아니라, 나에게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엄마를 마음껏 추억하고 엄마의 웃는 얼굴을 마주하는 의식과도 같은 행위였던 것 같다.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 지인들은 피곤하게 무슨 김장이냐며, 사 먹으면 될 것을 피곤하게 사는 것 같다고 내가 원하지도 않는 내 걱정을 하고는 했다. 심지어 남편마저도 허리 아픈데 그냥 사 먹자며, 코스트코 김치가 얼마나 맛있는 줄 아냐며 내 비위를 건드리기도 했다.




그리고 2020년 김장철이 되었다. 동네 절친들이 친정엄마가 한 김치라며 한 두 포기씩을 주고 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정엄마표 김치라며 건네는 사람들에게 고마움도 있었지만 마음 저 밑에서 부러움과 속상함이 올라왔었다. 그깟 김치가 뭐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깟 김치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올해 나는 김장을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아픈 허리를 돌봐주기로 했다.  허리도 아프고 김장도 못하는 것이 신경 쓰일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편안하다.  엄마의 부재를 충분히 애도한 근 몇 년의 시간들 덕분인 것 같다.


만약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막네야, 우리 막네 허리 아픈데, 김치 사서 먹어도 괜찮아~’라고 말씀해주셨을 것이다. 오늘도 동네 절친이 무인 택배함에 김장김치를 넣어두고 갔다. 절친들이 주는 김치가 그냥 고마울 따름이다.  내년 김장철에는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괜찮다.  김장은 그냥 김치일 뿐이다.


점심에는 다이어트한다고 먹지도 않던 라면을 끓였다. 김장김치에는 라면이 딱이니까 말이다. 김치가 참 달다. 내 마음도 달다. 마음이 참 좋다.



Photo by Portuguese Gravity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마흔에 처음 엄마가 되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