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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딕라쿤 Nov 21. 2024

쿠킹 명상

1.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캐비어 라이스볼]   

쿠킹타임: 30분

재료: 쌀 1인분, 벨루가 캐비어 2큰술, 참기름 1큰술, 통깨, 여력이 된다면 금박지 조금


맛의 지평을 넘어





2019년 봄, 서른두 살. 나는 북유럽의 작은 나라 스웨덴행을 결정했다. 스무 살 초반부터 여행과 유학, 그리고 해외근무까지 장장 10여 년을 한국을 떠나 살았기에, 새로운 나라로 떠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사실 나는 오랜 해외생활을 청산하고 내 나라에 정착해보고자 했었다.


영국에서 2년간 국제관계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인도 델리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3년을 보냈다. 많은 사람들이 대사관을 비자를 발급해 주고 민원을 해결해 주는 '동사무소' 정도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무, 경제, 국방, 문화 등 다양한 부서가 있어 그 나라의 정세와 정책 동향을 모니터링하는 중요한 업무를 수행한다. 말하자면 '착한 스파이(white spy)'인 셈이다. 나는 정무과 연구원으로서 인도의 정세 동향을 분석하고 약 500여 건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50도에 육박하는 더위와 장염으로 6개월마다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도 버텨냈다.


부모님은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딸을 자랑스러워했고, 나는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공명심 하나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청춘을 바쳤다.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지금도 인도 한국대사관의 '전설'로 남아있다고 한다. 업무 성과도 성과지만, 동료와 상사와의 관계도 잘 해냈다는 평가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공공 부문에서 처음 마주한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이라는 화려한 간판이 무색하게도, 조직 문화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해외 생활을 통해 경험한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조직문화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상호 존중에 기반한 계약 관계'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그 자리에는 우리가 벗어났다고 믿었던 조선 시대의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에도 여전히 '군자와 소인'을 구분 짓던 그 낡은 위계질서가 건재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이러니했다. 분명히 위계가 필요한 조직과 업무의 성격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인도 근무 3년 차, 한국 국가정보원 경력직에 지원했다. 수백 건의 국제관계와 전문 보고서를 작성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정식 공무원이 되어보자는 심산이었다. 새까만 정장을 위아래로 맞춰 입고 들어선 최종 면접장. 전문 지식과 인성을 파악하기 위한 날카로운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습니까?"라는 물음 앞에서 나는 '바고 같은' 고민에 빠졌다.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도 자식 교육을 위해 밤낮으로 고생해 온 우리의 부모 세대를 생각하니, 나의 영혼을 그냥 갖다 바치겠다고?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라는 대답을 끝으로 면접장을 나섰다. 지금도 이 질문은 한국 사회에 던지고 싶은 가장 근본적인 물음으로 남아있다. 청년 실업과 저출산으로 인구 절벽을 목도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직도 자기네 회사를 위해 희생할 수 있겠느냐는 묻고 있는 것은 아닌지.


Feat. 똑 떨어진 국가정보원을 뒤로하고 국회의장 해외 순방 등 의회 외교를 담당하는 의전과에 지원했는데 또 이와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강경화 외교장관처럼 영어 할 수 있나요?"...

- 그걸 질문이라고. 무슨 대답을 원하십니까?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그 정도의 연식과 경험과 전문성은 필요치 않은 자리에 왜 그 정도의 실력을 원하십니까?


IMF 외환위기는 한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한보철강, 기아자동차 등 대기업들의 연쇄 부도와 함께 시작된 이 위기는 많은 기업의 도산과 대규모 실업을 야기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증가, 양극화 심화 등 그 후유증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경제적 충격을 넘어 깊은 사회문화적 변화를 가져온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IMF 관리 체제를 졸업한 이후, 한국은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반도체와 조선, 자동차 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고, 삼성과 현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K-pop과 K-drama로 대표되는 한류는 이제 전 세계 문화계의 중심에 서 있다. BTS와 블랙핑크의 글로벌 성공스토리,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흥행은 한국 문화의 저력을 증명했다. 이제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자 중견국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1인당 GDP는 3만 달러를 넘어섰고, G20 회원국이자 OECD 가입국으로서 국제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흔히 선진국의 기준으로 1인당 GDP, 경제 규모, 인간개발지수(HDI), 국제기구 가입 여부 등을 거론한다. 하지만 나는 진정한 선진국이란 이런 수치나 지표만으로는 정의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깊은 고민이 나의 스웨덴행 결심에 일조했다고 본다. 높은 복지 수준과 탄탄한 사회 안전망을 갖춘 스웨덴이라는 나라는 개인의 안녕과 성장이 곧 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국가와 개인이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호혜적 관계, 그것이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답이었다.


한국에서의 경험들, 특히 공공 부문에서 겪은 좌절은 역설적으로 나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다.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아야 더 넓은 세상이 보이는 법이다. 스웨덴으로의 결정은 단순한 도피가 아닌,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전진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계 시민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제 나는 내 안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북유럽의 진보적 사회 시스템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꿈꾸는 진정한 '퓨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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