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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충환 Jan 07. 2021

방어

은빛 찬란한 바다의 폭군

 "찌이이~ 익~"


  단단하게 감겨 있던 낚싯줄이 멋대로 풀려 나간다.


 남성 어른이 손으로 감아쥐고 당겨도 안 풀릴 정도로 단단히 감아놨던 줄이다. 낚싯대가 연거푸 바다를 향해 고꾸라 진다. 검푸른 물속의 거대한 녀석은 단단히 화가 났나 보다. 나를 물속으로 끌고 들어갈 기세다.

 파고 2.5m.

 저 멀리 육지가 파도에 가려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그 거대한 너울 위로 꾼들을 태운 낚싯배는 오르락내리락 위태롭게 흔들거린다. 칼바람이 귓전을 때려댄다. 뱃전의 나는 두 다리로 힘겹게 버티고 서있지만 벅차다. 낚싯대를 움켜쥔 두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이 녀석, 저 밑 어디쯤에 있는거야?'


 풀려 나간 줄의 양을 계산해 봤을 때, 대략 수심 50m 정도로 보인다. 바닥층에 거대한 암초라도 있다면 발버둥 치는 녀석이 옆으로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낚싯줄은 절단 난다.

 '그만 좀 힘써라 이 녀석아'

 용쓰던 녀석이 지쳤나 보다. '이때다!' 잽싸게 줄을 감아 댄다. 당겨와야 할 거리만 50m가 넘는다. 10m를 당기면 5m를 도망가고, 당기면 또 도망간다. 그렇게 녀석과의 사투를 벌인 지 10여 분. 허리가 끊어질 듯하다. 숨이 턱 까지 차오르지만 낚싯대를 절대 놓을 수 없다. 그 순간, 물속에서 허옇게 무언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보인다! 녀석이다! 다 왔다!"

 

 그런데 '아차차..' 방심하는 사이 "찌이이~익~" 녀석이 막판 안간힘을 쓰며 또 달아난다.

  '안돼!' 이번에는 배 밑으로 파고 들어간다. 낚싯줄이 선체에 쓸리면 지금까지의 긴 사투가 도루묵이 될 수 있다. 바로 터져버려 녀석과는 안녕해야 한다. 나는 녀석의 도망치는 방향을 돌리기 위해 낚싯대를 좌우로 바꿔준다. 다행히 녀석은 방향을 틀었고, 힘이 다 빠졌는지 이윽고 얼굴을 드러냈다.

 배 위로 올라온 녀석은 1m가 넘었다. 참 잘 생겼다. 몸통은 아주 반들 반들 깨끗했고, 토실토실 살도 쪘다. 은빛 비늘이 햇빛을 받아 더욱 반짝였다.


 나는 두 팔로 녀석을 감싸 안아 올렸다. 내 몸속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출됐다.  

약 10kg이 조금 넘는 대방어다


 겨울 낚시의 꽃 방어.

 바다낚시계의 진리다. 방어 지깅(메탈로 된 루어를 물속에 넣어 흔들어 잡는 방법) 낚시는 어떻게 보면 '낚시' 라기 보단 '스포츠'에 가깝다. 동해권의 경우 수심 100m까지 메탈을 내려 깊은 바닷속 방어들을 유혹한다. 수심이 깊을수록 물의 저항 때문에 액션을 많이 줘야 방어들의 눈에 쉽게 띄어 잡을 수 있다. 반짝이는 쇠 막대기가 물속 방어들의 눈에는 멸치나 고등어 같은 먹잇감으로 보이는가 보다.

이런 메탈을 물속에 넣고 빠르게 감으면 방어가 먹이인 줄 알고 쫓아와 덥석 문다


 회유성 어종인 방어는 수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동해에 출몰 하기 시작했다. 방어의 메카인 제주도는 옛말이 돼 버릴 정도다. 물론 완도 등 남해권 또한 여전히 잘 나온다.  약 3년 전, 제주도에서 선상 낚시를 할 때다. 선장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요새는 육지 고기를 가져와요. 제주도 수요를 충당 못해요"


 동해권 방어가 제주보다 더 나온다는 얘기였다. 물론 해마다 다르긴 하지만, 이상 기후로 인한 수온의 변화 때문인지 방어들이 차가운 동해 바다에서 많이 나오기 시작한 거다. 심지어 낚시를 하는 도중 동해 앞바다에 참치가 보일 때가 왕왕 있다. 우리나라 연안에서 참치 낚시를 하는 날이 곧 올 듯하다.

 

 각설하고, 나는 방어를 먹기 위해 잡는다. 파이팅 넘치는 사투 끝에 잡아내는 쾌감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방어 회를 먹기 위함이다. 배와 등을 가르고 통째로 포를 떴다. 철분이 많은 등살은 붉은 기가 감돌고, 기름기 충만한 뱃살은 하얀 지방층이 촘촘히 아로새겨져 마블 무늬를 만들어 낸다. 고추냉이만 살짝 올려 입속에 넣으면 살살 녹아 버린다. 가히 예술이다.

 칼이 들어가면 서걱서걱 소리가 날 정도로 탱탱한 육질이지만, 겨울 방어는 지방이 많아 회를 썰때 칼 옆면에 기름이 묻어나 흐를 정도다.  

뱃살과 중뱃살 등살을 한꺼번에 담았다
방어 해체쇼는 보는 맛이 있어서, 나는 사람들과 함께 먹을 때 전 과정을 다 보여준다


 방어랑 비슷하게 생긴 '부시리'라는 녀석이 있다. 생긴 건 방어랑 거의 흡사하다. 아가미와 꼬리 쪽 모양으로 구분하는데 그렇게 자세한 얘기는 다루지 않겠다. 오로지 낚시와 맛에만 글을 집중하기 위해서다.  

 부시리는 방어보다 지방이 훨씬 없다. 그래서일까? 근육 속에 파고들어 사는 '사상충'도 별로 없다. 맛도 더 담백하다. 제주도 분들은 방어보다는 오히려 부시리를 더 좋아한다고 선장님들 한테 종종 전해 듣곤 했다. 방어는 먼바다에서 주로 잡히고, 부시리는 갯바위 가까에서도 잡힌다. 가끔 갯바위 돔 낚시를 하다가 부시리를 한 마리 걸기라도 하면 한바탕 땀을 쭉 빼야 한다. 제압하기가 여간해서 쉽지가 않다. 부시리는 크기가 크지 않아도 힘이 엄청 좋다. 개인적으로 부시리가 방어보다 힘이 더 좋은 거 같다. 사람으로 치면 복부 지방이 많은 사람과 근육이 많은 사람의 차이랄까?

 회를 썰어 놓고 봐도 방어와 부시리는 다르다. 붉은빛이 더 감도는 방어에 비해 부시리는 하얀빛이 더 감돈다. 고등어 같은 붉은 살 생선과 참돔 같은 흰 살 생선을 섞어 놓은 반반이랄까?

 고소하지만 느끼한 '방어' 그리고, 살살 녹는 고소함은 없지만 담백한 '부시리'다.

 

배에서 뜬 부시리 회. 살이 연분홍이다
배에서 갓 잡은 방어 회. 부시리보다는 살이 확실히 붉다


 오늘 같이 추운날 밤, 방어 아가미살을 꺼내 기름을 두른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려 본다.


 그다음은, 당신의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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