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한마디에, 내 등골이 싸해지며 불길한 생각이 밀려왔다. 살얼음 판을 걷는 심정으로 버닝썬 보도를 이어가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취재의 시작점인 역삼 지구대 내부 CCTV를 후배가 확보했다. 그런데 영상 속 김상교 씨는 우리가 지금까지 본모습이 아니었다. 애초에 뒷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서 지구대 의자에 고통스럽게 누워 있는 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담겨 있었다.
경찰서 지구대 한쪽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 안절부절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고 있다. 무언가에 잔뜩 화가 나 보인다. 남자는 앉았다 일어서길 반복하더니, 격한 손짓으로 지구대 안 경찰관들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조금 전클럽에서 지구대까지 오는 순찰차 안에서 이 남자에게는 뒷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경찰은 지구대로 들어온 이후 남자의 수갑을 풀어줬다. 그런데 의자에 앉아 있던 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지구대 책상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남자는 책상 위에 있던 서류 종이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종이 위에 "카악 퉤" 하고 가래침을 뱉었다.
남자는종이를 거칠게 구긴 뒤 경찰관을 향해 냅다 집어던졌다.
“똘아이네!”
내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몽둥이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배신감과 실망감에 정신이 아찔했다.
'이게 뭐지? 이게 무슨 행동이지?'
혼란스러웠다. 도무지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안 됐다. 아무리 분하고 억울했다지만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었다. 명백한 공무집행 방해다. 경찰이 김상교 씨에게 뒷수갑을 채운채 지구대 의자에 묶어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행동 하나로, 경찰의 애초 진압이 과했다는 우리의 문제제기가 힘을 잃게 될게 뻔해 보였다. 김상교 씨의 행동은 분명히 잘못됐다.
‘우리가 불리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후배와 함께 지구대 CCTV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찬찬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모든 행위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김상교 씨는 지구대 입구부터 경찰관 2명에게 끌려 들어왔다. 그런데 사무실 입구에 들어오는 순간, 그는 무언가에 걸려 고꾸라지며 바닥에 얼굴이 처박혔다. 그에게는 뒷수갑이 채워진 상태였다.
그는 경찰관이 일부러 자신에게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가 확보한 영상에서는 각도상 경찰이 발을 거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서에 CCTV가 한 대만 있을까?’
알고 보니 지구대 안에는 모두 4대의 CCTV가 설치돼 있었다. 후배는 나머지 CCTV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김상교 씨를 통해 법원에 증거보전 신청1)을 했다. 경찰을 통해서는 영상을 직접 받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아온 경찰의 답변이 매우 놀라웠다
“CCTV 4대 중 2대가 깡통입니다”
모양만 CCTV라는 얘기다. 경찰서 지구대 천장에 붙어 있는 둥근 모양의 CCTV가 선이 끊겨 있는 껍데기뿐인 깡통 CCTV라는 것이다.
서울에서 가장 비싼 땅에 위치한 경찰 지구대. 게다가 강남경찰서 본서는 서울 31개 경찰서 가운데 가장 최신식 건물이다. 도대체 강남경찰서 지구대에 선이 다 끊어진 깡통 CCTV 2대는 왜 달아 놓은 것일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로부터 4대 중 나머지 1대는 김상교 씨가 거의 찍히지 않아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역삼지구대 CCTV 캡처 화면. 김상교 씨를 경찰관 여러 명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
끼워 맞춰야 할 퍼즐 조각은 아직 너무도 많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팩트 하나로 보도를 결심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폭행의 가해자'는 지구대에 한 번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가해자는 버닝썬의 이사였다.
버닝썬의 반격
버닝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클럽은 제보를 한 버닝썬 내부 직원들을 공격했다. 여지없이 가짜 뉴스가 활용됐다. '클럽에 불만을 품고 있던 직원'이라던지, '클럽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나간 직원'이라는 등 허위 사실을 흘리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들은 이를 여과 없이 기사화하기 시작했다.
버닝썬 보도를 한 MBC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내부의 문제점을 세상에 알린 ‘메신저’를 공격한 것이다. 메신저의 신뢰성에 흠집을 내 추가 보도를 막기 위한 전형적인 수법이다. 비겁했다.
버닝썬 집단 폭행과 마약 사건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던 건 숨은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버닝썬 전직 직원이자 불과 20살의 젊은이였다. 이 친구는 버닝썬 측으로부터 수많은 압박에 시달렸다. 윗선에서 ‘제보자가 누군지 말해라. 아니면 네가 죽는다’ ‘살고 싶으면 제보자가 누군지 알아 와라’라는 둥 그는 끊임없이 협박을 당했다.
우리는 버닝썬 측이 이 제보자에게 카카오톡으로 협박한 사실도 확보했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제보자 보호가 우선이었다. 그래서 그를 보도에 노출시키지 않기로 했다.
그는 시간이 한참 지나 버닝썬 사건이 마무리될 때 즈음,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용기를 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이번 상황에 제가 나선 것에 대해 후회는 단 하나도 없다. 그들이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마약과 폭행, 성폭력을 장난처럼 다루는 게 인간으로서 꼴 보기 싫었다. ‘다 걸려서 한번 혼 좀 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도 있었다”
“지금은 제가 알고 있던 사실이 어느 정도 증명되면서 속이 후련하고 잘한 것 같다”
(CBS 인터뷰 일부 발췌)
사건이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경찰의 반박도 시작됐다.
전 언론사를 상대로 경찰의 입장이 담긴 보도자료를 뿌렸다. 서장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었다. 보도자료는 공격적이기까지 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반박을 하지 않으면 인정을 하는 셈. 1천 명 가까이 되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경찰관이 소속돼 있는 강남경찰서다. 조직을 위해서도 직원들을 위해 강하게 대응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경찰의 보도자료 마지막에 적혀 있는 이상한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보도를 청구할 예정’이라고 적혀있었다. 대개의 경우 보도가 잘못됐으면 그냥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보도를 청구한다. 하지만 모든 언론사에 배포하는 보도 자료에 언론중재위에 제소를 하겠다고 굳이 적시했다.
일종의 언론에 대한 압박의 메시지다. 더 이상 보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추가 보도를 할 경우 소송을 각오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쉽게 말해 언론을 향한 간접 협박인 셈이다.
보통 비판 기사의 대상이 됐던 기업이나 정부 기관, 종교, 이익 단체 등이 해당 언론사가 추가 보도를 하지 못하도록 위축시키기 위해 써왔던 전형적인 수법이다.
우리는 보도를 계속 이어갔고, 결론적으로 당시 경찰의 언론중재위 제소는 없었다.
경찰은 출입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열었다. MBC 보도에 대한 해명을 하는 것과 동시에 사건에 대해 기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런데 경찰 브리핑에서 나는 아주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경찰은 김상교 씨 폭행 사건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면서, 별개로 김상교 씨가 클럽에서 성추행을 해 고소를 당했다는 걸 브리핑 장에서 밝혔다. 수사기관의 명백한 피의 사실 공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이상한 폭행 사건.
본질을 피해 가면서, 성추행이라는 다른 사건을 부각했다. 여론의 관심을 돌려 흐름을 바꾸려는 전략이다. 그리고 많은 언론들은 이를 검증 없이 그대로 보도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김상교 씨를 성추행으로 고소한 여성은 바로 버닝썬의 직원이었다.
그녀는 중국인이었고, 마약 사범이었다.
한국 이름은, ‘애나’
그녀는 앞으로 전개될 버닝썬 마약 사건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애나가 경찰에 제출한 고소장 일부 발췌
1)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증거를 확보해 놓지 않으면 소송에서 증거로 이용할 수 없는 염려가 있는 경우 이에 대비하기 위해 미리 그 증거를 확보해 두기 위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