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충환 Feb 14. 2021

뒤바뀐 '피해자'와 '가해자'

버닝썬, 숨겨진 이야기 #2.


 뜨겁고 끈적한 액체가 얼굴을 타고 흐른다.  


 '뭐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얼굴이 어떤 상태인지 알 것 같다. 남자의 오른쪽 옆구리가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현기증이 나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통증보다 참기 힘든 수치심이 남자의 온몸을 휘감았다.

 

 역삼동 한복판, 특급호텔 앞이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불금'의 가장 핫한 시간이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 남자는 휘청거리며 서있었다. 

 반항 조차 할 수 없었던,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4번째 주먹질이 얼굴에 꽂힌 직후, 아스팔트가 남자를 향해 벌떡 일어섰다.


 조금 전까지 그는 호텔 클럽의 손님이었다. 남자는 비참함이 치밀어 올라 머리가 쭈뼛 섰다. 분노와 억울함을 주체못하고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남자가 정신을 차려보니 때린 놈들은 전부 클럽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남자는 그들의 얼굴은 또렷이 기억했다.

 

 '어디 갔어? 찾아야 한다!'


 남자는 클럽 안으로 때린 놈들을 찾으러 들어가려 했다. 얼굴에 흐르는 피를 손으로 대충 문질러 닦고, 하얀 철제문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이내 검은 옷의 가드들이 남자를 막아섰다. 남자는 클럽 문고리에 손도 대지 못했다.   


 '이건 특수 폭행이다. 신고부터 하자. 근처 지구대에서 출동하면 금방이다'  


 ‘어디 다시 나와서 더 때려봐라’   


 남자는 보란 듯이 정문에 세워진 쓰레기통을 대차게 걷어찼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레기 더미가 나뒹굴었다. 정제되지 않은 욕설이 그의 입에서 마구 튀어나왔다. 그놈들을 불러내기 위한 도발이었다. 조금 전까지 그놈들의 샌드백 이었지만, 오기가 생겼다.  

 그 순간, 멀리 경찰차 경광등이 번쩍이며 다가오는게 보였다. 갑자기 없던 힘 마저 생겼다. 남자는 더 큰 소리로 도발을 했다.


 "어디 방금 전처럼 다시 나와서 더 때려보란 말이야!"


 그러나 남자를 때린 놈들은 끝내 클럽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견고히 쌓은 성벽 안으로 들어가 숨어버린 그들의 비겁함에 남자는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출동한 경찰관들이 남자에게 다가왔다. 남자는 흥분을 채 가라앉히지 못하고, 경찰관에게 조금 전 당한 상황을 격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경찰관들은 도통 남자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미 경찰관들은 남자를 취객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분노가 갑자기 경찰에게로 옮겨졌다. 


  '뭐야 이 사람들! 내 얼굴 안 보여? 내가 신고했다고!'


 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다리를 걸어 남자를 넘어뜨렸다. 3명의 경찰관이 남자의 몸 위로 올라와 제압했다.       


 '맞은 건 나인데?'

 '내가 피해자다!'


 남자의 정신이 아득해져갔다..


                                                                                          *피해자의 시각에서 당시 사건을 재구성

 



 강남 최고의 클럽 앞에서 벌어진 사건. 사장은 연예인이었다.

 첫 보도가 나간 뒤, 인터넷이 발칵 뒤집혔다. 클럽과 경찰에 대한 여론의 질타와 함께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김상교 씨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고, 경찰관을 오히려 넘어뜨리며 폭행했다는 반대의 기사들이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구할 수 없었던 2개의 영상이 다른 언론사를 통해 공개됐다.

 하나는 버닝썬이 가지고 있었던 클럽 정문 바로 위 CCTV. 1) 또 하나는 당시 출동한 경찰관의 몸에 달려 있던 바디캠 영상이었다.


 바디캠은 경찰이 출동 현장의 영상을 증거로 남기기 위해 몸에 부착하는 카메라다. 사실 바디캠은 원칙적으로 외부 유출이 금지돼 있다. 당시 이 영상이 어떻게 외부로 유출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바디캠 영상을 찬찬히 살펴봤다. 렌즈는 김상교 씨를 향해 있었다. 얼핏 봐서는 취객을 제압하는 경찰의 공무집행 장면으로 보였다. 그런데 바디캠은 CCTV와는 달리 ‘음성’이 들어간다. 카메라에는 당시 현장의 소리들이 고스란히 녹음돼 있었다.


 쓰러진 김상교 씨 위를 경찰관이 올라타 제압하며 이렇게 외쳤다.


 “고소할 거지?”


 경찰관의 말이 내 귀에 들어온 순간,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 누구한테 하는 말이지?’  

 

 현장에 있던 클럽 직원에게 던진 말이었다. ‘반말’이다. 상식적이지가 않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현장의 클럽 직원에게 반말로,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고소를 유도하고 있었다. 더욱 황당한 건, 신고자는 바로 그들 밑에 깔려 있던 ‘폭행 피해자’ 다.


 현행범이면 미란다 원칙 2)을 고지하면 된다. 주폭자 3)라면 경찰서로 데려가 안정시킨 후 조사를 하면 된다. 더욱이 그곳은 폭행 사건이 발생한 현장이다.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다짜고짜 신고자를 바닥에 눕혀 제압하고는, 클럽 직원에게 반말로 “고소할 꺼지?”라고 물었다.

 

 나는 십수 년의 기자 생활 동안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현장에서 반말을 던지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출동한 경찰은 폭행 장면이 담긴 클럽 CCTV를 찾아보지 않았다. 때린 사람을 찾으려 클럽에 들어가 보지도 않았다. 나중에야 나는 경찰복장을 한 경찰관이 클럽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클럽 측이 극도로 꺼린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강남이다!’




 버닝썬 정문 위에 달려 있던 CCTV.

 김상교 씨가 경찰을 공격한 증거라며 어느 인터넷 언론사가 영상을 공개했다. 물론 영상의 출처는 버닝썬이다.

 영상 속에는 출동한 경찰관들을 향해 김상교 씨가 무언가를 격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앞에 있던 경찰관 목덜미를 잡아끌면서 같이 넘어진다. 매체는 이를 근거로 '김 씨가 비정상 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공격했다.


 우리는 해당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돌려가며 분석했다.

 김상교 씨가 앞에 있던 경찰관의 목덜미를 잡기 직전, 뒤에 서 있던 경찰관이 그를 잡아당기는 모습이 포착됐다. 중심을 잃은 김상교 씨가 넘어지지 않으려고 앞에 있던 경찰관을 붙잡고 함께 넘어진 것이다.

 그런데, 영상에는 쓰러진 김상교 씨의 뒤통수를 경찰관이 발로 차는 모습까지도 담겨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바닥에 누워있던 청년은 집단 폭행의 피해자다.  


 며칠 뒤,

 해당 언론사가 공개했던 영상은 포털에서 사라졌다.





1)  버닝썬 클럽 정문 바로 위에 붙어 있는 CCTV다. 해당 영업장의 소유기 때문에 우리는 버닝썬 측의 CCTV는 제공받지 못했다.


2)  경찰이나 검찰이 범죄 용의자를 연행할 때 그 이유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이 있음을 미리 알려 주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3) 충북경찰청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폭력과 협박을 가하는 사회적 위해범을 말한다. 가정이나 마을 내, 골목길 등에서 자주 일어나며 심할 경우에는 관공서나 지구대 등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