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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충환 Feb 07. 2021

쌍코피 흘리는 남자

버닝썬, 숨겨진 이야기 #1.


 이것은,

 아마도 약자와 약물에 관한 불편한 기록이 될 것이다.

 흥미로운 연예인 이야기는 없다.


 어쩌면,

 유흥가에서 마주칠 수 있는 흔한 광경.

 그것이 '버닝썬 게이트'의 시작이었다.

 



 CCTV는 클럽 정문을 비추고 있다.


 철제로 된 거대한 정문. 시뻘건 태양 문양이 철문 중앙에서 이글거렸다. 클럽에는 두 개의 문이 있다. 검은 문과 하얀 문. 검은 문에는 검은 태양이, 하얀 문에는 붉은 태양이 타오른다.

 두 개의 태양은 클럽 '버닝썬(Burning Sun)'을 상징했다.


 

 새벽 4시.

 알코올을 잔뜩 머금은 힙합이 철제문 틈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Post Malone의 'Rockstar'. 퇴폐적인 가사에 올라탄 몽환적 리듬이 심장 박동에 맞춰 쿵쿵댔다.

 잠시 뒤, 갑자기 음악소리가 커지며 하얀 철제문이 열렸다. 클럽 안에서 검은 슈트와 롱 패딩을 입은 사내 4명이 뛰쳐나왔다. 사내들은 우악스럽게 한 남자를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옷깃을 붙들린 남자는 호리호리했다. 그는 머리에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사내중 한 명이 남자의 왼쪽 오금을 냅다 걷어찼다. 남자는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졌다. 그 순간 어디선가 흰색 반팔 티셔츠를 입은 거구가 나타났다. 거구의 키는 185cm가 훌쩍 넘었다.


 뒤로 쓰러졌던 남자가 휘청거리며 겨우 일어선다.

 거구는 다짜고짜 돌덩이 같은 커다란 주먹을 남자의 왼쪽 광대뼈에 내리꽂았다. 다시 거구의 오른 주먹에 무게가 실렸다. 이번에는 남자의 명치를 향했다. 옆으로 빗나갔지만 남자의 옆구리에서 '으드득'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갈비뼈 3대가 으스러졌다.

 이미 피투성이가 된 남자의 얼굴에 주먹이 연거푸 내리 꽂혔다.

 이 정도 가격을 당하면 웬만한 사람은 다리가 풀려 서 있을 수 조차 없다. 남자는 주저앉을 법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검은 옷의 사내 2명이 남자의 뒤에서 두 팔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8차례. 샌드백처럼 얼굴과 몸을 얻어맞고 나서야 주변의 사내들이 거구를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영하의 .

 두꺼운 오리털 패딩을 입은 주변 사람들보다 달랑 하얀 티셔츠 하나 걸친 거구의 덩치가 더 커 보였다. 그는 분이 채 풀리지 않은 듯, 외마디 욕설을 내뱉고는 씩씩 거리며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크리스마스를 꼭 한 달 앞둔 새벽.

 검은 하늘에는 진눈깨비가 어지럽게 흩날렸다.

 



 2019년 초 겨울.


 경찰기자를 4년이나 했고, 수도 없이 경찰서를 들락 거렸던 나다. 하지만 역시 경찰서의 차가운 새벽 공기는 참으로 적응이 안 된다.   

 나는 ‘시경 캡’이다(2019년 당시). 사회부 경찰 기자들을 지휘 통솔하는 교관 역할을 한다. 캡틴의 줄임말로 '캡'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나는 서울시내 31개 경찰서들을 지휘하는 서울지방경찰청1)으로 출근을 한다. 경찰서는 이상하게도 몸을 파고드는 특유의 차갑고 시린 기운이 있다. 아무리 ‘캡’이라지만, 막내 경찰기자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날도 뼛속을 스며드는 시린 새벽 기운을 느끼며 경찰서 계단을 서둘러 올라갔다.    


 “캡, 보배드림2)에 황당한 글이 올라와 있는데요. 조회수가 무려 60만이 넘습니다.”


 아침 보고가 끝난 뒤, 후배인 이문현 기자가 상의를 하고 싶다며 내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몇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 남자는 잘생긴 얼굴이었다. 어디서 맞고 다닐 정도로 어벙벙 하게 생기지도 않았다. 그런데 남자의 코 밑에는 쌍코피가 터져 핏덩어리가 굳은채 범벅이 돼 있었다. 아랫입술은 여기저기가 부르터 있었다. 폭행 당시 튄 핏자국들이 그가 입고 있는 하얀 티셔츠를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후배는 이윽고 또 다른 영상도 보내왔다. 같은 남자였다. 영상 속 젊은이는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벤치 같은 의자에 누워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진과 영상이 찍힌 장소는 모두 경찰서 지구대였다.

 

 나는 후배가 보내온, 온라인에 올라온 글을 천천히 읽어 봤다. 매우 정제되지 않은 말들과, 상당히 거친 표현들이 배설처럼 내뱉어져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목구멍 밖으로 삐져나오는 욕설을 꿀꺽 되삼 키고는, 삼킨 분노를 손가락으로 토해내 키보드를 눌러 댔을 당사자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글은 경찰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었다. 클럽에서 집단 폭행을 당해서 신고했는데, 출동한 경찰이 오히려 자기를 폭행했다는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이야기였다.


 믿기지가 않았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있을 수가 있는 일인가..'


 이 친구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보도를 하기 위해서는 입증돼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클럽에서의 폭행은 그렇다 치자. 경찰이 그를 폭행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 한단 말인가.. 정황적으로는 설명이 된다 하더라도 추후에 공격당할게 뻔했다.


 '소송전을 각오하고 붙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는 게임.'


 경찰 공권력에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공무 집행의 정당성을 우리가 무너뜨려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 자칫 어설프게 공격했다가는 되돌아올 반격에 치명상을 입고 회생 불가가 될 수 있다. 섣불리 취재에 들어가기가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얻는 것보다는 잃을 것이 많아 보이는 취재였다.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억울했으면 남자의 자존심을 버리고 쌍코피를 흘리고 있는 자기 얼굴을 대중에 공개했을까.. 오죽하면 그렇게 까지 하면서 그 분통함을 호소했을까.. 동정과 함께 본능적 궁금함이 일었다.

 게다가 내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한건 그가 경찰서 안에서 찍은 영상이었다. 고통스러워하며 지구대 의자에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해당 영상을 찍은 사람은 바로 이 젊은이의 어머니였다. 촬영 당시 이 친구의 갈비뼈는 3대가 부러져 있었다.

 세상 어떤 상황이길래 경찰서 의자에 손이 뒤로 묶인 채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을 어머니가 휴대폰 영상으로 찍는단 말인가..?    


 후배는 곧바로 남자를 만나러 갔다.

 

커뮤니티에 올린 사진. 핏자국이 적나라해 불가피하게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클럽 버닝썬 앞 구타 장면 CCTV 화면 캡처



1) 서울특별시를 관할하는 지방경찰청이다. 청장은 치안정감이고, 2만 명이 넘는 경찰관이 서울지방경찰청 소속으로 근무한다. 경찰청 본청 산하에는 전국에 모두 18개의 각 지방경찰청이 있다.


2)  중고차 인터넷 쇼핑몰인데, 자동차 커뮤니티로 더 유명하다. 자동차 덕후들의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회원수가 워낙 많아서 한 달에 약 백만 명가량이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원들의 약 90%가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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