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이파리

지수님의 일기를 훔쳐보고 쓴

by 김가든
1


“회원님 몸에 힘을 빼세요! 계속 그렇게 몸에 힘을 주시면, 절대 물에 뜨지 못합니다!”


‘입이며 콧구멍이며 물이 들어와서 죽을 것 같은데, 힘을 어찌 빼냔 말이다.’


지난달부터 동네 체육센터에서 진행하는 수영교실에 다니고 있다. 회원이라고 해봐야 30~40대 아줌마부터 60대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라 나는 수영교실에서 항상 주목을 받는다. 오늘도 물에 뜨지 못하는 나를 보며 다들 학부모 모임이나 노인정에서 씹어 먹을 가십거리 하나씩 챙겨 갔을 것이다. 보통 한 달이면 물에 뜨는 것 정도는 배운다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물에 뜨지 못한다. 일단 물속에 들어가고 나면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데 그때부터 온몸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공기가 들어올 수 있는 구멍을 물 위로 올려 숨을 쉬어보려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발버둥 치면 칠 수 록 나는 온몸으로 물의 저항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항상 물에게 진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시작한 수영인데, 이렇게 물을 한껏 먹고 집으로 갈 때마다 헛배가 불러와 기분이 좋지 않다.


살짝 젖은 채로 나온 머리가 말라갈 때쯤 지하철역에 도착한다. 미처 다 말리지 못한 머리카락들은 이제 점점 쌀쌀 해지는 날씨 탓에 나의 온도를 앗아 가기도 하지만, 1교시 수업시간보다도 이른 시간에 오는 학교이기 때문에 매일 등교할 때마다 그리 붐비지 않고 조용한 학교를 볼 수 있다. 학교로 걸어가는 길에는 나란히 가로수가 심겨 있는데 이것은 분명 활엽수라 가을에는 빨간 단풍 옷을 입었다가 겨울이 오며 건조해지면 이상하게도 옷을 하나, 둘 벗어버린다. 추워진다면 추위를 막기 위한 이파리가 필요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애초에 내 생각으로 자연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곧 모든 이파리가 떨어져 앙상하게 가지들을 들어낸 나무들이 전투에 패배한 해골 병사처럼 학교로 걸어가는 길을 동행할 것이다.


2


교수님의 수업을 배경음악처럼 틀어 두고 공책 위에 글쓰기, 운동하기, 연애하기, 피아노 배우기, 여행 가기… , 하나씩 하고 싶은 일들을 나열해본다. 다이어트할 때 먹고 싶은 음식을 공책에 나열해 보는 예의 그것과 비슷하다. 지금 내가 할 수 없는 일들, 하지만 하고 싶은 일들을 공책 위에 그려 본다. 공책 위를 하고 싶은 일들이 하나씩 자리 잡을 때마다 해야 하는 일들이 나타나 자리를 빼앗는다. 해야 하는 일들이 하고 싶은 일들이 된다면 좋을 텐데. 하고 싶은 일들도 모두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들도 놓치고 싶지 않다. 그 둘은 치열하게 싸우며 서로를 공격하고 상처 입힌다. 그 과정에서 너덜너덜 해지는 것은 결국 장소를 제공해준 내 마음이다. 어느 것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은 가시나무를 꽉 쥐고 놓지 못하는 피가 흥건한 손바닥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렸다. 아침 등굣길에 생겼던, 낙엽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자연과학 코너에 가서 ‘식물의 이모저모 – 저자 이승권’ 책 한 권을 찾아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네이버나 유튜브에 검색하고 해결했을 일이지만, 도서관까지 온 것은 도서관에 오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제와 퀴즈 준비 때문에 길게 시간을 쓸 수는 없었다. 책을 읽고 알게 된 것은 나무가 이파리를 떨구는 것은 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파리는 광합성을 위해 존재하는데, 광합성에는 수분이 필요하다. 이파리가 많을수록 수분이 많이 필요한 것인데, 겨울로 가까워질수록 건조해지며 수분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나무는 이파리를 떨어트리는 것이다. 떨어트리지 않으면 감당하지 못하고 나무는 말라죽을 것이다. 나무는 살기 위해 이파리를 떨어트리고 있었다. 힘을 내기 위해서 나무는 힘을 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해골 병사들의 행진을 지켜봤다. 푸르렀던 지난 여름날을 뒤로하고 그림자처럼 색이 바랬다. 동네에서 가장 큰 단풍나무 앞에서는 사람들이 변해가는 색깔을 휴대전화에 담기 위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곤 한다. 오늘 도서관에서 본 책에 의하면 우리는 이파리의 영정사진을 찍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활발했던 엽록소들의 푸르름이 시간이 지나면 노랗게 빨갛게 변하고, 결국 수분을 읽고 떨어지기 때문이다. 저 나무의 이파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곧 모든 이파리들은 떨어지고 나무의 가지가 보일 것이다. 살기 위해 힘을 빼고 있는 그 나무의 가지가 보일 것이다. 노을이 지평선 너머로 떨어진다. 다시 오를 것이다.


3


‘힘을 빼자. 힘을 빼자. 힘을 빼자.’


물에 뜨기 위해서는 힘을 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살기 위해서 온몸의 힘을 주던 나의 헤엄이 오늘은 예전과 다르다.


“좋아요 지수님, 지금 아주 좋아요. 완전 힘을 빼고 앞으로 나가 봅시다. ”


"발이 놀고 있어요!! 힘차게 발장구를 쳐봅시다."


한 달 동안 물에 뜨는 것도 버거웠는데 오늘 내가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니 주변에서 탄성이 들려온다. 아마 내가 오늘 물에 뜨는 것을 두고 내기를 하는 아줌마들도 있었을 것이고, 따로 말은 안 했지만 내가 물을 먹으며 고생하는 꼴을 더 보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물에 떠있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내가 고친 거라고는 그저 몸에 힘을 빼는 것뿐인데, 나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물속에서는 힘을 빼야 나아갈 수 있다.


하루 밤 사이에 단풍나무의 이파리가 모두 떨어졌다. 단풍나무의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이파리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분명 단풍나무였다. 나의 삶에서 나는 단풍나무의 이파리처럼 나의 힘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지수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