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모어 살롱 Feb 07. 2021

너무 못생겼잖아!!!

"왜 다른 여자가 너한테 굳이 안 물어봐도 되는 걸 이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물어보는데 들어주고 있어? 적당히 끊으면 되잖아!!"

"미안해... 끊으려고 계속하는데 언제 말을 끊어야 할지 몰라서.."

"적당히 끊고 냉정하게 상관할 일만 상관하는 사람이 그건 왜 말을 못 해! 그 사람은 너랑 내가 만나는 걸 모르니까 관심 있으면 그럴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을 네가 차단해줘야지, 왜 괜히 쌍방한테 오히려 악영향인 쓸데없는 배려를 해."

"미안해 다음부터는 진짜 잘할게, 울지 마아."

"네가 그렇게 행동하니까 속상하잖아!! 나 세수할 거야.. 근데 나 너무 못생겼잖아!!!!! 엉엉엉"





너와 내가 함께 한 시간들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쉽지 않았지만 어렵다고 말하기 무색하게 유쾌하고 웃긴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불안과 걱정을 달고 사는 내게 안정을 달라고 토로하다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던 나는 세수하러 가서 거울을 보고 우는 내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 더 크게 엉엉 울어버렸다. 너는 그런 내가 우 위로해주지도, 웃지도 못하며 내 등을 쓸어주었다. 우린 항상 그랬다. 너와 함께 있는 장면들은 로맨틱 코미디라기보단 시트콤 같다. 우리만 알고 있는 수많은 낄낄 포인트. 


척하면 척, 쿵하면 짝. 찰떡궁합인 부분도 많지만 아직도 삐그덕거리는 부분도 많다. 아직도 서로에 대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알아가는 중이니까. 서로에게 예쁘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지만 삶은 변화무쌍하고 최악의 상황이 오면 나의 최악의 모습도 보여주게 된다. 마치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러 못생겼는데 그 모습을 보고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던 그때처럼. 


내가 사랑하는 너는 겉모습과 속이 아주 다르다. 사람 좋게 허허 웃으면서도 무심하고 무덤덤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동요하지 않는 곰같이 두꺼운 신경 줄을 가지고 남 일에 상관하지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는 무신경하고 냉담한 건 너의 겉모습. 그리고 아무리 곤란해도 말을 못 하고 쩔쩔매며 식은땀만 흘리고 말을 하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일을 할 때 너무 긴장해서 그 일이 끝날 때까지는 다른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못하는, 기민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눈치껏 센스 있게 행동하면서 조용히 빠르게 움직이는, 마음이 너무 여리고 혼자 꾹꾹 욕조에 큰 풍선을 눌러 담듯이 스스로를 억압하고 마음을 누르면서도 힘든지도 모르는 건 너의 말랑말랑한 속. 

여자 치고도 감정이 매우 둔하고 투박한 나의 감정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고 내가 참 감성적이어서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다고, 섬세하다고 칭찬해주며 버거워하기도 하는 너는 내게는 참 알 수 없는 생물체다.


표현이 서툴고 투박하고 거친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패턴과 정 반대로 행동하기로 했고, 네 앞에서는 너도 표현이 어려워 떨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어 속에 있는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부족하고 때로는 표현이 모나서 너도 상처 받았던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모나고 덜 깎인 부분도, 모자란 부분도 하나씩 발견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늘어가고 손발을 맞추어 간다. 


어른인 척 하지만 네 안에 숨어있는 어린 너는 누군가 네게 사랑을 쏟아주고, 관심을 보여주며, 상처 받은 속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주길 원했지만, 아무도 네게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 봐서는, 어지간히 깊이 보지 않고는 보이지 않게 네가 감추고 있었으니까. 


내가 처음 안아주던 순간 어린 시절 부모님이 안아주신 이후로는 처음 누군가가 너를 안아준 일이 없었다며 마음이 따뜻해지고 좋다고 환하게 웃던 네 얼굴이 생각난다. 좋을 때는 누구나 좋다. 하지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은 가장 안 좋은 상황일 때 볼 수 있다. 가장 못나고 초라하고 비참하기까지 한 모습. 그 모습까지도 보여줄 수 있고, 이해해줄 수 있으며, 나아가 보듬어 안아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나의 가장 못생기게 울던 모습과 아파서 끙끙대며 울부짖던 모습까지도 네게 보여주게 되었고, 너는 그 모습을 끌어안아 위로해주고 토닥여주었으니, 이제 나도 너의 가장 못생긴 모습도 한 번쯤은 안아줄 수 있다고 장난쳐야지. 나보다도 가끔은 새침하고 예민한 공주님 같은 너에게. 


가장 진부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은 '사랑해'일 것이다. 처음 '사랑해'라는 노래 제목을 보고 뻔한 사랑을 속삭이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노래를 듣고 가사를 보면서 왜 사랑을 노래하는데 처절하기까지 한 감정이 느껴질까 스물네 살의 나는 의아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랑은 설레고 달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전혀 다른 우주와 같았던 서로에게 하나씩 익숙해지고 알아가면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우주가 되어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하루 서로의 우주의 기온과 대기, 육지와 바다, 수많은 생물들을 발견하며 놀라고 든든하고 실망하고 화도 나고 설렌다. 솔직한 바람은 화려하지 않고 그저 자리를 지켜내는 것이라던 노랫말은 우리의 바람이 되었다. 그래서 노래의 마지막 가사를 우리가 서로에게 그대로 말할 수 있길, 그 모든 어둠을 지나 밝은 빛에 당도할 수 있길 바라며 노래를 듣는다. 


그 모든 기쁨과 눈물 수많은 밤이 지나고 
그대 곁에 여전히 머물러 웃으며 하는 말
그댈 사랑해 







가득한 웃음이 나에게 번져와

하고 싶은 그 말은 잠시 멈춰

노력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으면

말로 담을 수 없는 맘이 넘쳐나

어떻게 난 이렇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해 또다시 난 그대 곁에

지친 맘을 누이고 작은 빛을 비추어

차갑게 시들어가는 꿈 그대로 물들어가면 그저 한걸음 다가가


솔직한 바램은 화려하지 않아

그저 조용히 자릴 지켜내고

비워내려 할수록 마음은 깊어가

끝도 없는 그대 모습을 채워가

어떻게 난 오늘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해 또다시 난 그대 곁에

지친 맘을 누이고 작은 빛을 비추어

차갑게 시들어가는 꿈 그대로 물들어가면 한걸음 다가가 그대 손을 잡고

떨리는 내 맘도 느낄 수 있게


그 모든 기쁨과 눈물 수많은 밤이 지나고

그대 곁에 여전히 머물러 웃으며 하는 말

그댈 사랑해 


-신혜성 <사랑해>




아래 영상에서 5번째 곡(15:28부터)

https://youtu.be/CZQl3JMGbrQ

매거진의 이전글 또 다른 우주가 왔다. 네가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