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VER YOUNG

영원히 늙지 않을 나의 노래, 나의 청춘

by 필모어 살롱

#1 화양연화

청춘이 뭔데. 청춘이 뭐 이래. 인생에서 가장 서툴고, 불안하고, 예민고, 비겁하고, 서툴고, 무모하고, 교만하고, 수줍고, 순진했던 스무살.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진짜구나 느끼며 조용히 침잠하던 시절, 내게 ‘이십 대는 가장 찬란히 빛나는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말은 수치스러울 정도로 어울리지 않았다. 다른 청춘들과 달리 내 청춘은 왜 이리 아프고 어렵기만 해. 병원에서는 좀처럼 이십 대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어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것과 몸의 고통보다도 이 세상에 나는 왜 태어났고,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더 괴로워 긴긴 밤을 지새곤 했다.

결국 더 잘하고 싶고, 내 쓸모를 세상에 증명하고 싶어 무리해서 ‘스펙’을 쌓았다. 핸디캡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건강한 사람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니까. 스물 네 시간이 모자라도록 움직였다. 다중 전공, 서바이벌 프로그램, 대학생 마케터, 기자단을 하면서 1년의 기억이 아예 사라질 만큼 미래의 나에게서 시간과 체력을 꾸어 와 내 것처럼 썼다. 그리고는 물이 말라버린 우물처럼 더이상 끌어 쓸 것이 없을 때 미국으로 인턴십을 가장한 도피를 떠났다.


#2 내가 더 행복해지길 바래 매일 같은 내 바램

미국 생활이 편안하고 행복해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게 되었을 무렵, 나와 비슷한 청춘을 보게 되었다. 한 데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이 경쟁 기획사로 배틀하러 원정을 떠났을 때, 잠깐 등장했던 경쟁 기획사의 연습생. 땡땡이 무늬 옷을 입고도 그 옷이 보이지 않을만큼 맑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카혼을 두드리며 노래하던 소년. 간혹 그가 데뷔하는지 검색을 해보곤 했다. 이상하게 잊히지 않던 그가 문득 떠오르면 검색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데뷔를 하고 해가 바뀌어도 그는 여전히 미지의 가능성으로 남아있었다. 2015년 9월, 한국에 돌아와 학교도 졸업하고 온 힘을 다해 잘 하려고 애를 쓰던 시기에 드디어 그의 목소리도 세상에 공개되었다. 내가 대신 꿈을 이룬 것처럼 가슴이 벅차 뮤직비디오를 몇 번에 걸쳐 나눠서 보고, 사진을 찾아보았는데 이게 웬걸! 왜 나의 카혼 보이가 없을까 당황해 사진을 확대해보니 그 사이에 카혼이 아닌 기타를 들고 있던 카혼 보이. 노래만 하다 타악기를 배우고, 다시 기타를 배워야 했던 것이 많이 어려웠을텐데… 나와 전혀 상관없는 타인이지만 또래로서 왠지 자랑스럽고 더 응원하게 되었다. 잘하고 좋아한다고 확신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닌 전혀 다른 것에 도전할 때의 두려움과 연습의 지난함, 나 스스로의 의심과 싸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수없이 퇴짜맞은 후에 통과됐다던 데뷔곡을 아끼고 아끼며 들었다. 첫 앨범의 마지막 곡은 마치 거울에 남은 지문처럼 내 마음에 그의 목소리를 남겼고, 오래도록 나의 소원이 되었다. ‘언젠가 우리 만난다면… 내가 다시 사람 많은 곳이 두렵지 않고, 버틸 수 있을 만큼 건강해지면, 내가 잘하고 싶어 애를 쓰고 있는 이 일을 그가 작곡을 배우고 기타를 배웠 듯이 잘 하게 된다면, 그 때 꼭 공연장에서 듣고 싶다고. 그러니 나도, 너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나자고’ 그는 영원히 모를 약속을 했다.


#3 Oh, You are my day

그의 팀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는 않았지만 음악 좀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언제나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 후 한 해 동안 매달 신곡 두 곡과 콘서트를 여는 도전을 했고, 아직까지도 사랑받는 찬란한 곡들을 많이 만들고 불렀다. 그 해에 나는 그들이 정말 유명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루의 시작과 끝에 그들의 노래를 들었다. 아직도 나는 잘하고 싶어서 애를 쓰던, 불안하고 조바심 나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잠재우려 꾹꾹 눌러 출근길 발걸음을 떼고, 퇴근길 밤하늘을 보며 그네를 타던 그 때의 내가 듣던 그들의 노래가 생생하다. 우연히 마주한 방송에서의 그의 모습도 나와 비슷해 보였다. 우리의 청춘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우리는 이 청춘의 끝에 만날 수 있을까.

때때로 기사와 영상으로 지켜본 그의 청춘 또한 만만치 않게 호된 청춘이었다. 내가 삶과 엎치락뒤치락 고군분투할 때 그 역시 크고 작은 어려움을 이기고 스스로를 지켜내려 많은 애를 쓰고 있었다. 흙이 뜨거운 불에 구워질 때 흘러내리지 않고, 깨지지 않고 견뎌내면 아름답고 견고한 도자기가 되듯이 우리는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삶의 가마가 내뿜는 불길을 극복해내는 중이었다. 훗날 나의 이십 대를 떠올리면 마치 전쟁터를 함께 누빈 전우처럼 그들이 떠오르겠다는 생각을 흘리듯이 하면서 하루 또 하루 걸었다.

그렇게 강산도 변한다는 십 년이 흘렀다.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심보선 <청춘>


#4 언제가 끝일지 모르는 지금이 Best Part

작년 어느 화창한 봄날, 이 시를 읽고 깨달았다. ‘부족하고 서툴어서 괴롭고 도망치고만 싶었던 나의 이십 대가 그래야만 했구나, 덕분에 화양연화였구나. 그리고, 이제 우리 만날 때가 된 것 같아.’ 체조경기장의 숨막히는 스탠딩 석에서도 숨을 잘 쉬고, 달리 아픈 곳도 없이 꽤 잘 버티는 내가 대견함과 동시에 공연장의 공기로 전달되는 소리의 파동이 꿈결 같기만 했다. 이렇게 찬란하게 빛나는 봄날에 우리 청춘의 한 챕터를 마침내 넘겼구나. 달고 쓴 세상의 맛을 보며 제법 어른답게 성장해낸 2024년의 12월, 우리는 새로운 챕터의 시작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데뷔 10년을 목전에 둔 그는 그동안의 부침과 아픔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밴드로서는 처음으로 고척돔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고, 나는 태어나서 가장 건강한 상태로 하고 싶은 일들로 돈을 벌며 고척돔에 관객으로 가게 되었다.

첫 곡은 9년을 꼬박 언젠가 우리 만난다면 꼭 듣고 싶다 소원하던 그 곡. 뭐든 너무 과하면 오히려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게 되는데 그 노래를 들으며 심장만 울렁거릴 뿐 아무 소리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애를 쓰며 버티고 성장해서 삼십 대가 되어 드디어 만났다는 것이 그저 감사하고 벅차기만 할 뿐이었다. 매일 오늘의 나를 살아가며 내일의 내가 웃을 수 있도록 열심히 스스로를 달구고 제련해서 일궈낸 청춘. 이 정도면 우리의 이십 대는 화양연화라 부를 만 하지 않을까. 앞으로도 서로를 응원하며 각자의 삶에 더 멋진 챕터를 채워가자는, 그는 모를 약속을 다시 한 번 하며 함께 하는 시간을 만끽했다.

꿈을 꾸고 이뤄가는 한 끝이 없을 청춘을 아프고 기쁘게 노래해왔을 그. 그의 밤에 무지개를 띄워 오늘의 꿈을 꿀 위로를 건네고, 내일이 되어주고 싶던 그 때의 나는 시나브로 그 때의 꿈을 이룬 것 같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전혀 모르지만,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이상한 사이다. 나조차도 사실은 그의 얼굴과 이름만 알 뿐이고 지나가다 마주치면 알아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차갑고 살아가기 버거운 세상에서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알 필요도 없이, 또 서로에게 바라는 것 없이 마르지 않고 다하지 않을 응원과 사랑을 주는 안전지대같은 사이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우리의 내일은 여전히 아프고 어렵겠지만, 이 다음 꿈을 그리고 이루면서 이제는 달콤한 눈물같은 청춘을 음미할 수 있을테니 아마도 우린 행복할테지. 영원히.


그 시절을 각자의 자리에서 버텨온, 영원히 늙지 않을 나의 노래, 나의 청춘.

마음에 흩날리던 빗방울, 눈송이, 꽃잎.. 혹은 꿈, 희망, 눈물.

우리의 Forever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