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제이콥스 데이지 오 쏘 프레쉬
톤다운된 과일향
햇빛 아래 한줄기 그늘같은 상큼달달 속 머스크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 탕웨이- 그녀가 출연한 영화 중 <색,계>란 작품이 있어요. 2007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영화상을 받은 이 작품은 그녀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주었죠. 1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영화 속 장면이 있어요.
탕웨이가 남녀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난 밤, 다 함께 버스에 올라탔어요. 다들 뒷좌석으로 우르르 몰려가는데 탕웨이만 혼자 앞쪽 한 좌석에 앉아요. 그러더니 창문을 쓱 열어요. 머리를 휘날리며 바람을 맞는 그녀의 우수에 찬 옆모습이 쫜!하고 나오고 그걸 바라보던 뒷좌석 남자 친구 한 명이 그녀 곁으로 다가가는… 제가 이걸 보고 든 생각은 ‘감독이 분명 남자일 것이다’ 였어요.
여자로서 이해할 수 없는 남자들의 여자 취향 중의 하나가 다소 우울하고 어딘가 사연 있어 보이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점이에요. 전 맺힌 거 하나 없이 한없이 밝고 맑은 여자를 좋아하거든요. 속에 뭔가 감추고 있는 듯한 우울한 스타일은 딱 질색. 제가 젤 싫어하는 유형의 여자가 사연 있어 보이는 여인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마크 제이콥스의 향수들의 공통된 특징이 그렇습니다. 전반적으로 차분한 감성이 기저에 깔려 있어요. 시종일관 꽃향이거나 마냥 과일향이 아니라는 말씀. 밝아도 마냥 밝지 않은, 상큼해도 마냥 상큼하지 않은,
여럿이 있을 땐 더할나위 없이 재밌고 텐션있던 애가 혼자 있거나 할 때 언뜻 언뜻 드리워지는 무표정이랄까, 혹은 생각에 잠긴 듯한 고요한 느낌 같은- 그런 걸 알아차린 남자들에겐 애틋하면서도 신비한 매력을- 그런 것까진 모르는 남자들에겐 뭔가 다채로운 느낌을 주는 여자. 아니 향수입니다. 마크 제이콥스 오쏘 프레쉬는.
데이지 드림, 키스, 소르베, 트윙클, 포에버 등등 마크 제이콥스의 데이지 시리즈는 많고 많지만 그중 젤 인기 많은 건 데이지 드림과 요 데이지 오 쏘 프레쉬입니다. 데이지 오 쏘 프레쉬는 데이지 향수에 과일향이 첨가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데이지 향수보다 좀 더 달달하고 상큼해요.
탑노트 : 라즈베리, 자몽, 배
미들노트 : 와일드로즈, 바이올렛, 애플블라썸
베이스노트 : 플럼, 머스크, 시더우드
첫향은 바람에 날려오는 자몽향입니다. 자몽을 코에다 직접 대고 맡은 향이 아니라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오는 자몽향. 좀 더 간접적인 과일향이라는 얘기. 시간이 지나면 그 바람에 꽃향이 같이 섞여옵니다. 신선하면서도 상큼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 꽃향과 과일향이 한데 어우러진 향기입니다. 이런 향기 속에 햇빛 속 한줄기 그늘처럼 언뜻 언뜻 머스크가 비쳐 상큼달달한 향기를 톤다운 시킵니다. 색으로 따지자면 명도는 높은데 채도가 좀 있는, 누디한 핑크나 코랄 정도
지수는 아이돌 멤버 중에서도 좀 다른 느낌이에요. 대부분의 걸그룹 멤버들처럼 앳되고 상큼발랄하지만 차분한 분위기도 갖고 있어요. 마냥 귀여운 소녀들과는 달리 촉촉한 눈망울엔 뭔가 사연이 담뿍 담겨 있어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게 만드는 마스크의 소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