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생과 친구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학창 시절 함께 학교에 다닌 사이는 동기생(同期生)이고, 그중 마음을 터놓고 절친하게 지낸 사이가 친구다. 가까이 두고 오래 사귄 벗을 친구라고 한다. 나이만 같다고 친구라고 하기에는 세상 모든 동갑내기를 친구로 삼아야 하니 무리가 있다. 그 시절 잠깐 어울렸더라도 고등학교 졸업 후 오랜 세월 동안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 한번 없이 지낸 사이에 친구 운운하기는 어색하다. 학교를 같이 다녔다고 다 친구가 아니다. 그저 학교 동기로 해두는 것이 좋다. 친구와 동기생은 그렇게 구분해도 괜찮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십 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고등학교 동기생 중 한 명이 졸업 동기들의 근황을 하나둘씩 모아 동창회 모임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동기들의 연락처를 알게 된 나는 만나고 싶었던 몇몇 친구들과 모임을 따로 가졌다. 전체 공지를 올리지 않고 소수의 인원만 따로 모인 것을 알고, 처음 모임을 만들었던 친구가 많이 섭섭해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 친구도 여러 사건을 겪은 뒤 친구와 동기생은 구분해야 한다는 내 말이 이해된다며 동의했다. 그 후 지금은 나의 가장 큰 우군이 되었다.
나에게는 동갑이지만 서로 존칭을 쓰며 지내는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내가 경기도 광명으로 처음 이사 갔을 때 만난 지인인데, 지금까지 십 년 넘게 서로 존칭을 사용하고 있다. 다른 한 명은 내가 다니는 복싱장 관장님인데, 처음에 몇 번 말을 놓자고 해서 정중히 거절했더니 다음부터 자연스레 서로가 존칭을 쓰며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
존칭을 쓰면 서로 존중하게 되고, 존중하니 어렵게 대하고, 어려우니 조심하게 되고, 조심하니 실수할 일이 줄어든다. 실수할 일이 줄어들면 서운할 일도 줄어드니 관계가 오래간다. 동갑내기끼리 가장 많이 싸우고 서로 실수하는 일이 많다. 위아래로 나이 차이가 나면 오히려 실수를 덜 한다. 동갑내기가 서로 실수를 많이 하는 이유는 상대와 나의 경험치가 같거나 비슷하다고 착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니 상대를 존중하기보다는 얕잡아본다. 상대를 좋아하는 것과 수준을 비슷하게 보고 얕잡아 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같은 세월을 살아왔어도 그 경험치와 사고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격차는 더 심해진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이라도 많다면 인생 선배라는 생각으로 존중 겸해서 어느 정도 인정하고 들어가겠고, 조금 어리다면 그쪽에서 나에게 그렇게 대할 테니 조금 대접받고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동갑은 그것이 참 힘들고도 어렵다. 비슷한 세월을 살아왔으니 수준도 비슷할 거라는 생각으로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고, 학창 시절 동기가 아닌 사회에서 만난 사이일수록 정도는 조금 덜하겠지만 어릴 때 만난 사이일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하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절이 제일 심한 시기다.
학교를 졸업하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서로 사회생활을 하다가 다시 만난 친구에게 반갑다고 쌍욕을 한다면 누구도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졸업 후 시간이 흘러 이제는 사회의 일원이고, 한 가정의 가장이고, 누군가의 부모가 되었다. 졸업 후 서로 연락도 없었고,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학창 시절 동기였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대한다면 상대의 인성을 의심해볼 여지가 충분하다. 친근하게 대하는 것과 함부로 대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친밀한 사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사람은 사소한 것으로 감정 상하고, 감정이 상하면 자연스레 멀어지고 안 보게 된다. 한번 멀어진 마음은 다시 가까이하려 노력해도 이전처럼 가까워지기가 무척 힘들다. 학창 시절에야 안 보고 살려고 해도 매일 학교에서 볼 수밖에 없었지만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후에는 생활반경이 다르니 얼마든지 안 보고 살 수 있다. 굳이 편하지 않은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 나갈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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