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너에게
①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람의 일이 곧 모든 일이라는 뜻으로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써야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뜻이다. 이때 사용하는 인사(人事)는 관리나 직원의 임용, 해임, 평가 따위와 관계되는 행정적인 일을 말한다. 만사(萬事)는 ‘여러 가지 온갖 일’을 뜻한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보통의 경우 정치나 회사에서 사람을 등용할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어느 조직에서나 사람을 잘 등용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2024년 대한민국 각 부처의 요직에 어떤 인사가 이루어졌는지 유심히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② 같은 한자를 사용하지만, 우리가 평소 자주 하는 ‘안녕하세요’ 같은 인사(人事)는 다른 의미의 인사다. 여기서 말하는 인사는 누군가를 마주 대하거나 헤어질 때 예를 표하는 말이나 행동을 뜻하는데,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또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인사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수고하세요’ 등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 또한 처음 언급한 인사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지금부터 언급하는 ‘인사’는 두 번째 의미의 인사다. 집에서 가정교육을 하며 부모가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인사다. 흔히들 인사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말하며 자녀교육을 한다. 밖에서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거나 인성이 올바르게 형성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람을 만나면 기본적으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사다.
사람들은 누구나 대접받는 것을 좋아한다. 인사를 먼저 하는 것은 상대를 대접해주는 일이기도 하지만 내 인격이 먼저 드높아지는 것이다. 내가 인사를 먼저 하는 것은 결코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다. 외국에서는 지나가다 눈만 마주쳐도 눈인사를 나누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면 ‘하이’, ‘헬로우’라고 말을 건네며 친근함을 표시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이 마주치면 째려보거나 시비를 건다. 뉴스에 종종 나오는 묻지 마 폭행 사건을 보면 대부분 상대가 먼저 째려봤다며 그 이유를 댄다. 물론 문화차이가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상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눈인사를 하거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상대가 째려본 것도 아니고 그냥 쳐다봤을 뿐인데 그걸로 시비를 거는 일은 최소한 없어야 한다. 보라고 있는 눈인데 쳐다본다고 시비를 거니 눈을 감고 다닐 수도 없고 답답한 노릇이다. 시비하려고 쳐다보는 것과 그냥 쳐다보는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야지 그걸 눈이라고 달고 다니는 걸 보면 딱한 마음이 든다. 눈싸움에 이겼다고 우쭐댈 필요도 없고, 눈싸움에 졌다고 의기소침할 필요도 전혀 없다. 괜히 사소한 일에 목숨 걸고 덤빌 필요가 없다.
내가 20대 시절 20개국 배낭여행을 다닐 때 인도, 네팔을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다. 서남아시아에 속한 인도나 네팔에 가면 독특한 문화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쳐다본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빤히 쳐다본다. 가끔은 여러 사람이 주위를 둘러싼 채 아무 말도 없이 계속해서 쳐다본다. 너무 오랫동안 빤히 쳐다보니 정말 민망할 지경이다. 사실은 그냥 쳐다보는 게 아니라 ‘무표정하게 째려본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쳐다보는 이유는 하나다. 외국인이라 그냥 신기해서 호기심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쳐다보면 처음에는 어색함을 피하려고 “나마스떼”라고 말하고 웃으며 인사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무표정하게 계속해서 쳐다볼 뿐이다. 그럴 때는 필자도 한 사람을 응시하고 계속해서 쳐다본다. 5분, 10분이 지나면 흥미가 사라졌는지 군중들은 하나둘 흩어진다. 나에게 ‘저런 미친놈’이라는 눈빛을 보내며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이 힐끔거리며 흩어진다. 이런 짓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다 보면 그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도 어느 정도 면역이 된다. 이것도 시간이 남아돌 때 같이 놀려고 하는 행동이지 이동하고 있거나 바쁠 때도 계속해서 쳐다보면 짜증이 나는 경우도 있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는 그것이 인사였는지도 모른다. 웃으며 기분 좋게 ‘나마스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인사 정도도 못 할 만큼 내성적이라 그저 쳐다보기만 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마음속으로 ‘안녕. 어디서 왔니? 여긴 왜 왔니?’ 정도의 인사를 건넸을지도 모른다.
인사는 하라고 있는 것이다. 인사는 돈도 들지 않고. 시간도 적게 들고. 먼저 해도 기분 좋고 받아도 기분이 좋다. 인사를 먼저 한다고 해서 내가 기 싸움에서 지는 것이 아니다. 먼저 본 사람이 그냥 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며 인사에 인색한 사람을 많이 만난다. 열 번 봐도 항상 내가 먼저 인사하고, 내가 먼저 인사를 해도 ‘네’라고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스쳐 지나간다. 돌아보면 뒤통수도 참 예의 없이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내가 뭐가 아쉬워서’라고 생각하며 나도 인사를 안 하게 된다. 그렇게 점점 서로 인사할 일이 줄어들고 점점 각박한 사회가 되어간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공원을 산책하다가 예쁜 개를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들어 자연스레 웃으며 쪼그리고 앉아 개의 족보부터 캔다. 온종일 집에 갇혀있다가 주인이 퇴근하고 난 후 그렇게 기다리던 산책을 하려고 나왔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먼저 인사를 하며 가던 발걸음을 멈춰 세우니 똥오줌도 싸고 마음껏 뛰어놀고 싶은 개 처지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 개의 심정이 어떨지 부디 헤아려주길 바란다. 그 마음의 백 분의 일 정도 마음을 가지고 만나는 사람끼리 서로 반갑게 인사해보자. 자주 만나는 사이에 인사도 하지 않고 지내면 개보다 못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좀 더 온정이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으면 이왕에 하는 인사를 무표정으로 하지 말고 웃으면서 하면 된다. 그렇게 인사하면 하는 사람도 기분 좋고 받는 사람도 기분 좋다. 열 번 만나면 열 번을 웃으며 인사해보자. 상대가 나를 어떻게 느끼는지는 생각하지 말고 그냥 사람을 만나면 예의상 하는 걸로 생각하고 한번 실천해보자. 시간이 지나면 나도 바뀌고 상대도 바뀐다. 인사가 가지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그래서 ① 인사가 만사이기도 하지만 ② 인사가 만사이기도 하다. 먼저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에게 침 뱉을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