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좋은 것투성이인 공간도 적응이 필요해.
홍천의 변두리 작은 마을에 살고 있다. 홍천읍내에서 서쪽으로 13km가량 떨어진 마을에 들어서려면, 홍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하나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면 우람한 산봉우리가 보이고 스무 채가 안 되는 집들이 아기자기 놓여있다. 경사면을 따라 난 구불구불한 길의 좌우, 위아래로 네모 세모 사다리꼴의 집들이 듬성듬성 놓여있어서, 집과 집 사이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다. 마을 어귀에 서서 남동쪽으로 고개를 치켜들면 회색 콘크리트 건물의 오른쪽 귀퉁이가 보인다. 커다란 참나무 두 그루가 손바닥보다 큰 무성한 잎들을 부채처럼 펼쳐 들고 홍천집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준다.
지난주 홍천집에서 혼자 하루를 묵었다. 상경하여 1인 가구로 자취한 세월이 언뜻 합해도 10년은 거뜬히 넘어서는데, 본인 집에서 혼자 머문 일이 뭐 대수라고 글로 쓰는지 스스로도 의아하다. 그러나 연고 없는 작은 마을에서, 창도 마당도 밖을 향해 시원하게 트여있는 새집에서의 생활은 생각과 달랐다. 좋은 것투성이인 공간에서도 적응은 필요했다.
케케묵은 장롱면허 소유자인 나는 늘 짝과 함께 홍천을 오갔다. 1박 2일, 3박 4일, 당일치기.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오갔다. 짝의 일이 시간상으로 유연하여 별다른 불편을 못 느꼈기에 여태 짝의 덕을 보고 있다. 여름의 절반 이상을 홍천집에서 보내며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여겼을 때, 며칠을 혼자 묵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렇게 혼자 남았다. 짝은 서울의 사무실로 떠나고, 나는 남아서 가사를 정리하고 글을 쓸 작정이었다.
해가 밝은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커튼을 걷지 못했다. 그렇게도 애정하는 풍경을 앞에 두고 눈을 감아버린 격이다. 집을 둘러싼 자연을 잔뜩 들여오고자 앞뒤로 크게 낸 통창의 용도가 무색하게 커튼으로 밖에서 안을 꼭꼭 감췄다. 울타리를 따로 두지 않아서 혹여나 낯선 사람이 찾아올까 괜히 두려운 탓이다. 낯선 사람이라해도 몇 안 되는 마을 이웃일 테고 건축 초반에 인사를 드리며 안면을 텄음에도,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여는 일이 무섭게 다가왔다. 혼자 있는 걸 들키기 싫었다.
리넨 커튼에 물든 햇살로 갈증을 달래며 온통 흰 풍경만이 가득한 커다란 밀실에서 하루를 꼬박 보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이곳에서는 해가 지는 동시에 밤이 된다. 밤이라고 하기보다 어둠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완벽한 검은 장막이 잠든 마을을 뒤덮는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래도 무서움을 떨치기 어려웠다. 벌레 우는 소리, 바람 소리, 멀리서 들리는 자동차 엔진소리. 정체 모를 둔탁한 소리까지 어둠 사이로 점점 선명하게 들려오기에 환기를 위해 열어둔 작은 창마저 걸어 잠갔다.
밤에 들리는 소리는 분명 낮과 똑같은 풍경에서 오는 것일 텐데, 그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불편한 상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취향을 가득 담아 마음에 꼭 드는 집을 지었는데, 혼자라는 사실과 어둠이라는 시간이 낯설고 두려운 감각을 몰고 왔다. 두려움은 심리적인 것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생각과 안개처럼 서서히 시야를 가리는 상상. 그 둘이 불화를 일으키는 바람에 그날 밤은 잠을 된통 설쳤다.
오늘은 커튼도 활짝, 창도 활짝 열어둔 채로 글을 쓰고 있다. 이번주는 사흘을 연달아 묵어 볼 생각으로 짝은 서울집, 나는 홍천집에서 보낸지 이틀째 되는 날 아침이다. 큰 마음을 먹고 달리기를 하고 온 후다. 큰마음까지 먹어야 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어쨌거나 나는 큰마음을 먹어야 했다. 산꼭대기에 과수원 살던 어린 소녀는 혼자서도 그늘진 산길을 잘 헤집고 다녔는데, 언제 이렇게 겁이 많아진 걸까? 이런 나야말로 낯설다.
어젯밤 거실에서 운동을 하다가 창문을 불규칙적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연거푸 들리자, 가뜩이나 운동해서 심박수가 올라간 심장이 속도를 올려 내달렸다. 투드둑, 톡, 토독, 툭. 뭘까. 사람은 아니겠지만 짐승인가? 그러기엔 소린가 작은데, 바람에 열매가 날아와 부닥친 걸까? 바람이 그리 강하게 부는 것 같지 않은데. 곤충인가? 그런데 곤충이 왜 저렇게 큰 소리를? 문을 열어 빛이라곤 없는 깜깜한 밖을 내다볼 엄두는 안 나고, 그렇다고 불을 켜서 실체를 확인하는 것도 겁이 나 안방으로 냅다 줄행랑을 쳤다. 하하. 겁쟁이의 상상에 아무나 공감해 주었으면 한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부터 확인했다. 죽은 듯 조용한 매미가 앞쪽 창 방충망에 한 마리, 뒤창에도 한 마리 붙어있었다. 바닥에는 한 마리가 힘없이 나동그라진 채로 죽어있었다. 아, 매미였구나. 곧 시월인데 웬 매미*가 창문에 부닥쳤을까? 나의 안위만 생각하느라 매미가 허무하게 창에 부딪혀 떨어지는 건, 알려고도 하지 않았네. 스스로 부끄럽고 안타까워 오늘은 꼭 용기를 내기로 했다.
집 밖으로 나가 마을 한 바퀴 돌기. 처음 땅을 발견하고 집을 짓는 1년 6개월 동안 무척 좋아한(좋아한다고 착각한) 마을과 풍경이다. 혼자 바라보는 것과 그 안에 속해서 생활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나 정말이지, 이곳을 하나도 모르는구나. 무거운 철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제야 상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맑은 정신이 손끝 발끝으로 전해져 금세 활기가 돌았다. 눈코입을 사로잡는 자연의 내음. 한숨 깊이 들이마시고 내쉰 다음, 한적하고 낯선 마을 길을 꼬불꼬불 지나, 홍천 강변으로 곧장 달려 나갔다.
문을 열기 전, 마을 사람들과 무방비 상태로 맞닥뜨리게 될 일을 지레 겁먹고 러닝 벨트가 있음에도 손에 핸드폰을 쥐고 뛸 심산이었다. 신발 끈을 동여매고 문 밖으로 나온 후, 앞선 상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일깨워주듯 찬란한 자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러닝 벨트에 넣었다. 주먹을 가볍게 쥐고 팔다리를 앞뒤로 흔들며 마을 길을 내려가는 내내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나뭇잎 새로 불어오는 바람, 바람의 찬 기운을 데워주는 햇살, 규칙 없이 마을 이곳저곳에 핀 야생화들, 기다란 톱으로 웃자란 나뭇가지를 전지 중인 처음 보는 이웃 아저씨, 나무들 사이로 들리는 누군가의 코 푸는 소리, 위잉위잉 풀 깎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새소리. 귀 기울여 본다.
그 모든 걸 온몸으로 스치며 달렸다. 홍천강변에 이르렀을 때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가벼운 것 같았다. 숨도 잘 드나들었다. 홍천강을 건너 돌아가는 다리에서 남동쪽으로 고개를 들어 우리 집을 바라보았다. 돌아갈 집이 여기, 산에 폭 안긴 이 마을에 있구나. 오롯이 혼자, 멀리 집을 바라보는 마음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게 분명했다. 마음이 열린 만큼 홍천집 문도 열 수 있었다. 그렇게 커튼도 활짝, 문도 활짝 연 채로 글을 쓴다.
글을 쓰다 마당을 내다보니, 얼마 전 심어둔 야생화인 금꿩의다리 잎사귀에 노란빛이 어른거리기에 색이 노랗게 변한 잎은 솎아주고 물도 흠뻑 주었다. 나온 김에 집 밖을 한 바퀴 돌며 손이 필요한 곳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볕이 잘 드는 마당 한 편에 앉아 해를 쬔다.
식물마다 살기 좋은(살게 하는) 환경이 있듯, 나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찾아 헤매며 구축한 지금의 환경이다. 서울과 홍천을 오가는 삶이 내게는 묘한 균형감을 준다. 대도시의 트렌디함과 소도시의 변두리 작은 마을의 여백을 한 손씩 잡고 걷는 기분이랄까. 홍천집에서 홀로 맞는 생활이 익숙해지고 노련해질 즈음, 더 큰 만족감을 느끼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사진: 김진철
* 늦털매미는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우화를 시작하여 성충이 된다. 밤에는 가급적 거실 불을 어둡게 해두어야겠다.
아경 "이틀 후 퇴고 중인 오늘 아침, 짝과 함께 조깅하며 늘 이른 시간 정원을 가꾸는 이웃집 어르신께 목례로 인사를 드렸어요. 어르신도 풀을 깎다 말고 우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셨죠. 겁쟁이 졸업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