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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경 Sep 23. 2024

넘흐옙흐넹이 쏘아올린 공

05. 청약통장 해지해 주세요!


  농협은행 밈은 작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한 편의점에서 외국인 손님이 ‘농협은행'을 ‘너무 예쁘네'와 비슷하게, 즉 ‘넘흐옙흐넹’과 같이 발음하는 바람에 생긴 밈이다. 외국인이 계산하다 말고 ‘넘흐옙흐넹, 알아?’라고 고백해 온다면 나라도 당황하는 척 내심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풉, 보는 눈은 있어서….’ 곧이어 그가 농협은행 위치를 묻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정말로 당황하여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머쓱한 표정을 지었겠지만 말이다.


  농협은행은 ‘넘흐옙흐넹' 에피소드로 십 대, 이십 대 친구들에게 재미있는 플러팅 요소가 되었다. 이 상황은 지방 소도시 상주에서 열아홉 살까지 살았던 내게는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평화롭지만 따분한 시골의 심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농협은행이 MZ세대에게 가장 핫한 밈이 되어 숏폼에서 유행하고 있다니! 농협은 농민들을 위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기에 상주뿐 아니라 논과 밭이 많은 지방 소도시에는 농협은행이 대다수 지역 주민의 주거래은행을 도맡고 있다. 밤에도 빛이 지지 않는 도시와는 달리 해가 지면 거리에는 정직한 어둠이 내려앉고, 해가 뜨면 성실한 생활이 시작되는 시골 라이프. 도시는 빠르게 변화하고 도파민을 자극하는 재미가 끊임없이 주어지지만, 시골은 몇 년 전이 어제 같고 몇 년 후도 오늘과 비슷할 것만 같은 느린 풍경이다.


  그래도 나는 나의 시골, 상주의 여백을 좋아한다. 농협은행과도 알게 모르게 모종의 정이 들었는지, 농협은행이 이 언어유희를 적극 받아들여 ‘모두가 예뻐지는 은행, 넘흐옙은행’이라는 카피로 광고를 제작하기에 이르렀을 때 괜히, 흐뭇했다. 시기적절하게 만든 광고 영상이 천만 조회수를 넘기며 다소 고루하고 전통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끈 도전에 옛 친구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박수를 보낸다. 농협은행~ 넘흐옙흐넹!


  그러나 어떤 시절에, 나는 너무 못났었다. 농협은행은 ‘넘흐옙흐넹'보다 ‘넘흐몬난넹'에 가까운 부끄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돈의 흐름은 개인의 역사를 추적하기에 상당히 정직한 지표 중 하나가 되어준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가족 경제와 늘 함께 한 농협은행은 철없고 경제관념 없던 딸내미의 추태를 손바닥 보듯 빤히 알고 있을 테다. 그렇다. 나는 초중고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에게 손을 벌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대학 시절 엄마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받아 염치없게도 돈에 관한 진지한 고민 하나 없이 청춘을 즐겼다. 지금 돌이켜보면 즐겼다기보다 낭비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청춘과 돈뿐 아니라 엄마의 사랑까지 낭비했으니, 여러모로 헤픈 시기였다. 이십 대 중반에는 번듯한 직장을 얻어 급여를 다달이 받으며 일 년에 한두 번은 엄마에게 용돈을 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환급처럼 엄마에게 급전을 받았다. 생활비를 대책 없이 써버린 탓이다. 엄마에게 웃음을 드리고 한숨도 드리고, 대견한 딸이 되었다가 한심한 딸도 되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엄마의 짙은 한숨과 마지못해 돈을 입금해 주던 엄마의 모질지 못한 마음은 그 시절 마이너스 통장에 선명하게 찍혀있을 것이다. 넘흐못난 내 모습과 함께.

  

  가난하지 않아도 되었을 엄마는 가난했다. 지 앞가림하기도 서툴렀던 세 남매와 수입과 지출의 변동 폭이 큰 아버지의 밥벌이. 벌어도 벌어도 쫓기듯 가난을 체감해야 했던 그 시절,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렇게 엄마의 빚에 빚을 지는 시기가 길어지는 만큼 그녀의 얼굴엔 그늘이, 나의 마음엔 죄책감이 짙게 쌓여만 갔다. 이 악습관을 끊은 건 스물여섯이 되던 해부터다. 개과천선하여 허리띠를 졸라매고 경제 공부를 하고 돈을 합리적으로 쓴 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훨씬 변변찮은 방법으로 엄마 손과 멀어지기를 택했다.


  또다시 급전이 필요한 어느 날, 쭈글쭈글한 마음으로 직장 근처 농협은행을 방문했고 7년간 묵혀둔 청약저축 통장을 해지했다. 그마저도 일부는 엄마가 나의 미래를 위해 넣어준 돈이었다. 헛똑똑이인 나와 다르게 똘똘하고 야무져 보이던 은행 창구 직원은 정말 청약을 해지해도 괜찮겠냐고 재차 물었다. 정말 괜찮을지는 나도 몰랐다. 잇새로 ‘스읍’하고 바람 새는 소리를 삼키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직원의 태도에 주눅이 들었다. ‘내 집 마련의 첫걸음이 청약통장이라는데, 진짜 괜찮을까?’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러나 걷다 힘들 때면 엄마에게 업어달라 투정 부리던 어린아이처럼 또다시 그녀에게 기대는 것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대체 뭘 고민해? 미래의 나야, 눈 질끈 감아라. “네, 해지해 주세요!!!”


  청약통장을 해지한 것이 최선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대로는 집 장만은 고사하고 빚만 지게 되겠구나 싶었기에, 사실 미련이랄 것도 없었다. 급한 불을 끄고 남은 돈으로 조금씩 여유 자금을 마련하는 연습을 했다. 체계적이지 않지만 절박하게.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손에 물 마를 일 없고 돈 모일 일 없던 엄마의 빚을 갚는 데 가장 먼저 필요한 조치는 나의 경제적 독립이었을 것이다. 어찌어찌 학자금도 갚고 여윳돈으로 저축과 투자도 하게 되었다.


  이제는 서울살이 돈 많이 들어 괜찮냐는 염려 섞인 엄마의 말에 “걱정하지 말아요. 나 돈 있어~! 엄마야말로 필요한 거 없어?” 한다. 철부지 딸내미가 아주 조금 봐줄 만한 철부지가 된 지금, 엄마는 부자다. 오랜만에 통화하면 돈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새로 넣은 적금의 이자를 자랑한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경쾌한 엄마의 목소리와 야무진 자랑이 마음에 남은 빚을(결코 갚을 수 있는 빚이 아님에도) 조금은 감해주는 기분이다.


  청약통장을 해지하던 당시, 막연한 불안감에 ‘작아지던 나’를 만났다. 그러나 그 곁에는 ‘자라나는 나’도 있었다. ‘꼭 그래야만 해?’ 청개구리 버전의 내가 고개를 내밀었다고 해야 할까? ‘정해진 정답지를 벗어나면 큰일 날 것처럼 말리는 이유가 뭐야? 다르게 살 수도 있잖아.’, ‘과연 청약을 통해 아파트에 살고 싶은 거야? 아니면 청약으로 투자하고 싶은 거야?’, ‘어떤 집에서 살고 싶어? 네가 그리는 삶의 청사진은 어떤 모습이야? ’ 카드값 막으려 무턱대고 청약통장을 해지한 것치고는 진지하게 무게 잡고 집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이건 참 두고두고 다행이다.




  서른일곱의 나는 집을 지어서 내 집 마련을 했다. 엄밀히 말하면 짝과 함께 지은 집이니, 우리 집이다. 집 짓기를 시작한 건,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였다. 부동산 시장도 격변기를 맞게 되었고, 30·40세대를 중심으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며 부동산 투자 열풍이 불었다. 집을 짓는 데 청약통장은 필요 없었다. 대신 일정 부분 대출이 필요했다. 열심히 번 돈과 에너지를 한데 모아 집 짓기에 투자한 우리는 현재, 세상 하나뿐인 집에서 안식과 응원을 얻고 있다.


  ‘이런 집에 살고 싶어.’에서 ‘아, 이러려고 집을 지었지.’로 이어지는 감탄은 삶의 한 조각을 ‘반짝’하고 선명하게 만든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집, 선호하는 편리는 다 다를 테지만 나의 경우, 현대인의 대중적인 수요와 편리를 반영하여 지어진 아파트보다 사는 사람의 취향과 생활양식을 고스란히 담은 공간을 동경해 왔기에 지금, 이 순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삶이 하나의 정답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캔버스 위에 각자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에 가깝다면, 미래를 어느 정도 대비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미래에 지나치게 속박될 필요도 없다는 게 나의 개똥철학이다. 다른 이들이 권하는 좋은 미래와 내가 좋아할 미래는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작아진 마음으로 대책 없이 청약저축을 해지하던 날이 캔버스 위에 실수로 엉뚱하게 떨어진 한 방울의 물감이라면, 그 한 점으로부터 원하는 삶에 대해 고찰하게 된 것은 운 좋게 방향을 전환하며 찍힌 한 점이다. 내 집 마련에 대한 사회적 불안 속에서 집 짓기를 택한 것은 앞선 두 점을 주체적으로 이은 한 획이 아니었을까. 꿈보다 해몽이지만,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보다 기대가 차오른 지금이라서 호기롭게 말해보는 거다. 앞으로는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까? 지금이라면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나, 너무 예쁘다고!


PS. 노년에는 생활의 편리를 위해 도심의 아파트에 살 생각도 있으며, 그때는 정말 필요할지 몰라 몇 년 전 청약통장을 다시 만들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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