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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경 Sep 16. 2024

어떻게 살래? 어떻게 구할래?

03. 집 짓는 일은 땅을 구하는 일부터!

  삶과 내가 주고받은 문답이 얼기설기 엮여 뻗어나가는 모습. 인생의 얼굴을 그려 보자면 아마 그런 모습이 아닐까. 내 삶은 질문과 대답의 연속인 셈이다. 어디로 뻗어나가는지는 몰라도 삶이 내어주는 질문에 나름의 답을 하며 뚜벅뚜벅, 삐뚤빼뚤, 살금살금, 룰루랄라 걷고 있다. 가끔 무응답도 답이어서, 제자리를 머뭇머뭇 맴돌 때도 있지만 말이다.


  내 인생 삼분의 이 가량은 흐릿하다. 질문의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인 것처럼 귀퉁이에 빗겨 서서 흘려보낸 순간들이 많아서 그런 듯싶다. 타인의 정답을 받아 쓰거나 해답지의 도움을 받아 푼 문제는 머리에 오래 남지 않는 것처럼 그냥저냥 무탈하게 휩쓸려 흐른 날들은 마음에 머물지 않는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나쁘지 않았지만, 실은 어디에도 깊이 마음 두지 못하고 푹 빠져 좋아한 무엇도 없었던 거다. 얼마 살지도 않았으면서 어렸을 적 많은 날이 기억나지 않는다.


  케케묵은 물음표를 다시 꺼내어 답할 수는 없으니, 이제라도 내 앞에 던져진 물음표들을 확실히 잡아채 답하려 한다. 느낌표든, 마침표든, 쉼표든, 줄임표든 나의 마음과 나의 머리로 답해보겠다고. 서른 언저리에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 탓에 곧 죽어도 고집대로 살아보고 싶단다. 그렇게 10년 가까운 초등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결혼의 의미를 따져 물으며 결혼식을 하지 않고, 아파트 투자 대신 행복을 위한 집을 짓기로 했다. 다행인 건 철없고 대책 없고 고집은 있는 나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쿵짝이 잘 맞는 짝 덕분에 이인삼각 달리기 하듯 호흡 맞춰 인생의 문제를 풀고 있다.






  2022년 2월, 우리는 처음으로 땅 답사를 떠났다. 어디서 살 것이냐는 질문의 답을 찾아서.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 방향으로 누구도 부추기지 않기에 더 무거웠던 엉덩이를 일으켜 집 지을 땅을 찾아 떠난 날의 기억이 아직 새것처럼 싱그럽다.


  우리 둘은 동그란 눈사람 같았다. 2월이어도 겨울인 데다 자연 가까이 붙은 땅을 구할 예정이어서 평소보다 두툼한 양말과 솜바지에 패딩을 껴입었다. 야물게 옷을 차려입고 손바닥만 한 빨간 수첩과 펜 하나 달랑 챙겨서 내비게이션에 홍천군의 한 부동산을 입력했다. 차로 한 시간 반가량 달리면서 빠뜨린 준비 사항은 없는지 거듭 확인했다. 직접 땅을 보러 다닌 경험일랑 없고 유튜브와 책을 통해 얻은 얕은 지식뿐인지라 혹여나 눈 뜨고 코 베일까 싶어 긴장했다. 초짜 티를 내지 말자며 단단히 채비했지만 초짜 티는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니, 부동산 사장님들이 보시기에 참 귀여운 초짜 부부였을 것이다.


  초짜는 초짜답게 꿈에 부풀어 설렜다. 큰 나무가 울창한 산 가까이였으면 좋겠다. 마을 중에서는 윗집이어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집이 없었으면 좋겠다. 집 뒤로는 국유림이면 좋겠다. 이웃집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거나 높이차가 있어 사생활이 보호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시야가 탁 트이고 아침 해보다는 오후 해가 길게 비추었으면 좋겠다. 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남서향이면 딱 좋겠지. 계곡이나 강도 가까웠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런 땅을 찾아요!


  원하는 땅의 조건을 하나하나 말하자 부동산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어허, 명당자리를 찾네. 그런 땅은 십 년 찾아도 없어. 좋은 땅은 묘터거나 이미 누가 살고 있지.’ 하며 조건의 일부만 충족한 땅을 보여주었다. 한 번은 올라가면 내려올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험한 산길을 가야 나오는 숲 속 땅이었다. 울창한 나무 사이를 비집고 집을 지으려면 최소한 스무 그루는 벌목해야만 했다. 또 어떤 땅은 마을 중에서 가장 윗집이긴 하나, 앞으로 훤한 들판이 펼쳐져 저 멀리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매서운 바람처럼 윙윙 울려 퍼졌다.


  우리가 원하는 땅은 정말 묘터거나 누군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땅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아직 못 찾았을 뿐! 운 좋게도 땅을 보러 간 첫날 막바지에 원하던 조건에 맞는 땅을 소개받았다. 다른 군내의 부동산과는 달리 외딴곳에 떨어진 이름마저 원주민 부동산이었다. ‘어, 가만있어봐. 딱 여기 있네. 지금 보러 가지!’ 하는 말에 시들했던 기대감이 빼꼼 솟아올랐다. 땅 위에 발 딛고 서니 찬 공기에 코가 뻥, 눈앞 풍경에 가슴도 뻥 뚫렸다. 멀리 산봉우리가 만든 우람한 물결과 그 아래로는 힘차게 굽이치는 강이 보였다. 이 땅에서 펼쳐질 생활을 서둘러 미리 보고 싶게 했다. 딱 여기다 싶었다.


  단박에 계약하고 싶은 마음을 눌렀다. 혹여나 들뜬 마음으로 놓친 문제가 있을지, 더 근사한 땅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신중히 알아보고 싶었다. 봄이 오기 전 한 달을 바지런 떨며 발품을 팔았다. 보고 또 봐도 그 땅이 우리 땅이었고, 마음에 결심이 선 건 3월 초였다. 매도인과의 정식 계약 전에 도로 문제로 해결해야 할 사항이 몇 있어서 계약일은 5월 둘째 주로 정하였는데, 부동산 사장님이 애써준 덕에 까다로운 도로 승낙 서류 준비도 걱정 없이 잘 해결되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계약일 하루 전 파투가 났다. 매도인의 단순 변심이었다. 갑자기 매도인이 땅을 팔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마을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주민들은 얼른 땅이 팔려서 마을에서 그의 지분이 빠지기를 기다린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이왕이면 땅 주인의 미담을 많이 들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영문도 모른 채 계약이 일방적으로 어그러지자 아쉬움이 남았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해보자 싶어 우리 사정과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고, 깔끔하게 반송되었다.


반송된 편지. 오히려 다행이다.



  이제 어떻게 할래? 인생은 다시금 묻는다. 꼭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얄미운 미소를 지으면서. 뭐 어때. 다시 찾으면 되지. 급할 거 뭐 있어서! 나는 찬찬히 다시 알아보자고 했다. 짝도 그러했다. 오히려 다행인지 모른다며, 그렇게 원하는 땅의 조건을 재정비하고 숨을 골랐다. 혼자서는 차선책이 무엇일지 곰곰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짝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 왔다. 이 땅 어떠냐며 화면 너머로 주변 풍경을 비추는데, 딱 원하는 조건의 땅이었다. 날씨 덕인지 기분 탓인지 직전에 놓친 땅보다 훨씬 더 좋아 보였다. 심지어 그 땅과는 차로 3분 거리였다. 어떻게 이런 땅이 숨어있었고, 어떻게 찾아냈을까? 부동산을 찾아간 게 아니라, 각종 온라인 토지 정보 사이트와 위성지도를 샅샅이 뒤져 빈 토지를 발견하고는 바로 달려온 거란다. 다시 한번 짝에게 반하는 순간이면서도 약간의 부러움이 일었다. 차선을 생각한 스스로가 아쉬웠다. 짝은 그 자리에 가만히 눈을 감고 서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나무가 바람에 일렁이는 소리를 들었고, 그 길로 부동산에 주소를 주고 땅 주인을 찾았다. 마음씨 좋은 땅 주인을 만나 토지 매입 후 막힘없이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지도로 땅을 찾아 나선 짝. 간절하면 창의력이 샘솟나 보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다. 나 혼자 땅을 구했다면 지금의 땅을 찾을 수 있었을까 싶다. 원하는 것을 못 찾으면 깔끔히 포기하거나 대안을 잘 찾는 나와는 달리, 원하는 게 있으면 끝까지 찾거나 없으면 만들어내는 짝이다. 같은 질문에 바라는 방향은 같지만 생각지 못한 답을 내놓는 짝. 한 팀으로서 그의 선택과 뒤따라오는 결과를 관찰할 수 있는 건 복이다. 오래 곁에 붙어있지 않고서는 배우기 어려운 삶의 태도를 생생하게 배운다. 집요함과 추진력. 내 인생에 어떻게든 데려가고 싶은 요소들이다.

  

  요즘은 기억이 선명하고 마음의 여운이 남아 기록하고 싶은 일들이 여럿 있다. 내가 내 두 발로 걷고 있는 것일까. 조금은 그런 듯하여 기쁘다. 그러나 인생의 문제에 쉽게 답을 내리는 일이 잦아진다면, 스스로 물으려 한다. 정말 그게 너의 답이야? 관성을 나다운 거라 착각하며 뻔한 답을 줄곧 해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땅을 구하러 다닐 때처럼 내 인생에 다가올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서야지. 마지막에 가서 포기하거나 쉽게 대안을 찾으려 하거든, 다시 물어야지. 네가 원하는 게 정말 이거야? 진짜 원한다면 어떻게 할래? 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스스로 물으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상으로만 둥둥 떠다니던 꿈들이 조금씩 손끝에 만져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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