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경 Sep 09. 2024

나의 쓸모를 찾습니다.

01.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보내는 색다른 일상



  집 지을 때 10년은 늙는다고들 하지만 ‘그렇다더라’ 하는 여느 말들처럼 우리와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짝의 고향은 부산, 나의 고향은 상주. 꿈을 꾸고 먹고살기 위해 서울살이한 지 둘 다 십수 년이 지났다. 서울 광진구의 네모난 오피스텔에 전세로 살고 있던 우리가 홍천 북방면의 둥근 산언저리에 집을 짓게 된 것은 더 자주, 더 깊이 행복하기 위한 방향을 따라 내린 결정이었다. 1년 8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함께 땅을 구하고 결이 맞는 건축설계사무소를 찾고 설계와 건축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돌이켜보니, 꽤 잘한 선택인 것 같다.


  환경과 건축이야 아쉬움 없이 취향을 반영하였기에 두말할 것 없이 만족스럽지만 함께 일군 프로젝트로 우리의 팀워크가 좋아진 것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가만히 있어도 사랑 호르몬이 샘솟던 연애 초반에도 ‘우리, 일은 같이하지 말자.’, ‘너랑 일은 같이 못 하겠다.’라고 단언했었다. 둘 다 예민한 구석이 있는 데다 특정 부분에 관해서는 한 고집하는 탓에, 함께 일하면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하다며 우스갯소리로 나누던 말이다. 집 짓는 과정에서 다툼은 드물고 상호 보완되는 점은 많았기에 이제는 ‘너랑 함께라면 어떤 일이라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말만 해. 어떤 일 해볼까?’라고 말하곤 한다. 새로운 보금자리에 찾아온 첫봄인 셈이다.


  집짓기 과정에서 현장을 오가며 주기적으로 자연 품에 안긴 덕분일까. 서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진 것 말이다. 아님, 한데 묶인 돈이 있어서일까? 하하. 그런 면도 있을 수 있겠지만, 서로에게 언짢은 순간이 와도 금세 누그러지는 마법은 단연코 자연의 덕이 훨씬 더 클 테다. 홍천을 오가며 마음에 들어선 산수화가 벌써 열댓 폭은 되리라. 자연을 마주하고 있으면 간혹 툭 불거져 고개를 내미는 미운 마음도 쑥 들어간다. 나는 작아지고 빈자리에는 이내 풍경이 들어선다. 감사한 마음과 함께 행복도 여유를 머금고 자라난다. 자연 가까이 사는 부모님이 나더러 자주 겸손하라 말씀하시는 이유도 이래서일까 감히 헤아려 본다.  




  건축의 완성은 조경이라던데, 무얼 어디에 심을지 하나하나 직접 정하고 가꾸고 싶은 욕심에 앞마당과 중정을 두 달째 휑하니 비워두었다. 뭐든 내 손을 거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짝과 나 둘 다 그러하다.) 그 성격대로 사느라 고생을 사서 한다 싶을 때가 있지만, 고생보다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편이 마음에 이롭다. 그런데 조경을 떠나 안전 측면에서도 서둘러 식물을 심어야 하는 위치가 있었다.


  절토면*에 잔디를 심는 일이다. 우천 시 경사진 절토면의 흙이 유실되지 않으려면 식물이 뿌리내려 주어야 하기에, 그 자리에 잔디가 자리 잡도록 해야 했다. 규모가 큰 일인 데다 장마가 오기 전에 확실히 해두고 싶어, 올해 5월 전문 업체를 통해 조치했다. 가파른 절토면에 코아 네트**를 덮고, 그 위에 거름과 잔디 씨앗을 뿌렸다. 흡사 똥차와 비슷한 생김새의 물탱크가 달린 트럭이 동원되었는데, 성인 남자 양손으로 감싸기에도 굵은 호스로 거뭇하고 되직한 액체를 뿌려댔다. 거름 냄새가 지독했다. 작업은 반나절이 걸렸고, 후작업은 우리의 몫이었다. 씨앗의 발아율을 높이려면 최소 일주일 간격으로 물을 줘야 했다. 초록이 짙어지며 주변 공기가 후끈 달궈지기 시작한 초여름이었다.

 * 절토면 : 땅을 파거나 깎아서 만들어진 면으로 땅의 높낮이가 급격하게 변하는 경사면을 말한다.

 ** 코아 네트 : 코코넛 껍질의 섬유질을 추출하여 만든 ‘코코넛 섬유(Coir)’로 만든 망을 의미한다.


  일은 즐거웠다. 서울에서 각자 맡은 일이 바쁜 와중에 틈틈이 물을 뿌리러 홍천에 오가는 일이 밀린 숙제 같았지만, 막상 해보니 놀이처럼 느껴졌다. 첫날에는 건축 소장님이 현장에 남겨둔 검고 투박한 호스로 신나게 물을 뿌렸다. 코아 네트와 흙이 물에 젖으면서 재래식 화장실 냄새를 연상케 하는 거름 냄새가 공기 중으로 풀썩풀썩 흩어졌다. 쿰쿰하다 못해 콧등을 찌릿하게 만드는 냄새와 새파란 하늘에 둥실 떠 있는 흰 뭉게구름이 주는 여름의 청량감을 동시에 맛보며 두 시간 내리 일을 했다. 우리를 구석구석 비추던 햇볕과 반복되는 움직임으로 이마부터 송골송골 흐르기 시작한 땀방울이 등 뒤까지 흠뻑 젖게 했지만, 뭐가 그리 재밌는지 우리는 일하는 내내 시시덕거렸다.


  일상처럼 반복되던 일이 아니어서일까? 어떤 일상도 즐겨보기로 다짐한 마음이 효력을 발휘한 덕인가? 새로운 공간을 가꾸는 일에 들떠서일까? 복합적이겠지. 덕분에 이 새롭고 낯선 노동은 고되지 않았다. 분사기가 따로 없어서, 먼 곳에 물을 주려면 엄지와 검지로 호스 끄트머리를 꼬집듯이 쥐고 작은 틈새로 물줄기가 얇고도 강하게 뿜어지도록 해야 했다. 하늘을 향해 입을 반쯤 다문 호스로부터 쏘아 올린 물줄기는 반원을 그리며 목표 지점에 뿌려졌다. 쏴 아아. 후두두 두둑. 공중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는 경쾌하고 시원했다. 흩어지는 물방울 위로 번지는 옅은 무지개도 보았다. 힘을 합쳐 하나의 일에 몰두하다 보니 잡념이 사라진다.


  손아귀의 힘이 달릴 즈음, 비의 소중함을 생각했다. 얕은 물에는 금세 말라버리는 건조한 땅의 피부를 보며 이쯤 되어 비가 한번 시원하게 내려주면 참 좋겠는데 싶었다. 비가 할 일을 이렇게나마 흉내 내보는 중이구나. 자연 앞에서 작아진 나는 아늑한 느낌과 겸허한 마음을 한 번에 품는다. 멀리서 나뭇잎 사이를 흔들며 다가오는 바람 소리가 반갑고, 마침내 피부를 스칠 때는 어찌나 시원하고 달큼하던지. 자연의 일에 감탄하는 순간, ‘하…! ’하고 숨통이 트였다. 이러려고 여기 왔구나.


  쉬려고 전원에 집을 지었는데, 가만히 쉴 틈이 없다더라 하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렇게 전원생활을 포기하고 도시로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하던데, 적어도 나에겐 자연 가까이에서 몸을 움직이며 땀을 흘리는 일이 쉼처럼 다가온다. 이곳에서의 단순하고 명쾌한 나의 쓸모가 귀하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스프레이건이 없는 호스로 물 뿌리는 건 악력이 상당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날의 감상과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짝은 새 호스를 장만했다. ‘이 대신 잇몸으로!’라는 태도로 뚝딱뚝딱 무탈하게 살아온 나는 새로운 장비에 대한 필요도 잘 못 느끼는 데다, 구매도 서툴다. 그러나 짝을 만나 복지가 좋아졌다. 이게 다 생활의 편리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짝의 집요함 덕분이다. 사실 좋은 장비일지라도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 수 있겠지만, 한번 편리를 맛보고 난 후로는 그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두 번째 물 주기부터는 새로 장만한 호스를 썼다. 새 호스는 신세계였다. 일반 PVC 호스와는 달리 매직 호스로 불리며 물이 들어가면 길이가 늘어나서 먼 곳에도 분사가 용이하고, 사용 후 수압이 줄어들면 호스의 부피가 다시 줄어들어 정리와 수납이 편리했다. 분사 기능이 다양한 스프레이건이 달려 있어 넓게도, 좁게도, 부드럽게도, 강하게도 물을 뿌릴 수 있었다. 손아귀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와, 진짜 편하다. 내가 조금 더 할게.’, ‘그럼 내가 저 위에서부터 뿌릴게!’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덜 힘들이고 해내었다. 좋은 장비를 산다는 건, 앞서 일하며 고민한 이들의 지혜를 사는 것이기도 하겠구나.


  3개월 가까이 흐른 지금, 잔디는 잡초와 함께 허전했던 절토면을 무성한 초록으로 덮어주었다. 싱그러운 잎들 아래로 단단하게 흙을 붙들어준 뿌리 덕분에 장마도 무사히 지나갔다. 요즘은 마당의 부드러운 마사토 위에 동글동글한 강자갈을 까는 일로 분주하다. 잔디에 물 줄 때, 좋은 장비의 참맛을 제대로 느꼈기에 이번에는 처음부터 자갈 나르기에 필요한 최적의 장비를 미리 준비했다. 최적이지만 최소한으로. 도심의 촘촘한 편리에서 일부러 빗겨 난만큼, 내 몸이 기꺼이 땀 흘릴 구석은 남겨두는 게 미덕이겠다. (땀을 아주 열 바가지 넘게 흘린 이야기는 다음에...)  


  잘 갖춰지지 않아도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 나와, 이런 나를 몇 배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으로 안내하는 짝. 매사에 그래왔던 걸까? 있는 대로, 가진 대로 만족한다며 큰소리 떵떵 치지만 알고 보면 매번 누군가의 지혜에 기대 편리를 누려온 것 말이다. 당장 곁에 있는 짝뿐 아니라 나보다 먼저 살아간 이들, 함께 살고 있는 이들에게 나는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생각해 본다. 만족만으로 그치지 말고, 누군가의 편리를 위한 실용적인 지혜를 구하고 싶다. 그리하여 다른 이들의 지혜가 응축된 잘 만들어진 장비처럼, 나라는 존재도 세상에 이롭게 쓰이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새 보금자리에서 자갈 깔기와 더불어 해야 할 놀이가 또 하나 생겼다. 이곳에서 발견하게 될 나의 쓸모는 무엇일까?



새 호스와 시원한 물줄기
코아 네트에 거름과 함께 씨앗을 뿌린 지 2주가량 경과 후, 귀여운 새싹이 고개를 내밀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