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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경 Sep 30. 2024

가능의 영역을 탕진하라!

07. 낭만 없이는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벌써 3년도 더 된 일이다. 직장 후배에게 꿈꾸는 삶을 말하고서 ‘아이고 선배님, 언제까지 낭만을 좇아 살 겁니까?’라는 농 섞인 말을 들었다. 며칠 동안 몇 번을 더 곱씹어본 말. 더 명확하게, 낭만 없이는 못 살겠다는 마음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낭만.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사전적 의미에서 내가 무게를 두는 부분은 서두에 있다. 현실에 매이지 않는다는 말이 생활에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하고 싶고, 바라고, 어딘가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에 무게를 더하는 무수한 그것.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명백히 내가 가진 것이 현실이다. 이에 매이지 않는 태도에 마음이 기운다.


  현실이 나를 얽맨다고 생각하면 차갑고 무거운 쇠사슬 같지만, 나를 지지하는 발판으로 여긴다면 현실은 되려 발걸음에 탄력을 더하는 양분이 되어줄지 모른다. 나는 낭만이 현실의 잠재력을 깨워준다고 굳게 믿는다. 아무도 모르고 나만이 아는 현실과 낭만. 그 사이에서 걷고 뛰고 날아 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나에게 내어준 숙제였다.


  퇴사를 앞둔 마지막 해에 아이들과 보낸 시간은 두고두고 참 귀하다. 처음 초등교사로 발령받아 만난 아이들과의 추억도 풋풋하지만, 마지막 해에 우리가 그린 이야기는 색다르게 깊다. 낭만을 좇아, 그러니까 내 인생의 숙제를 풀러 교직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던 해. 그 시기야말로 교사로서 맞는 낭만 전성기였다.




 


  소문난 음치인 나는 노래로 아이들을 두 번 울렸다. 교직 첫해에 한 번, 마지막 해에 한 번. 짐작하겠지만 못 불러서 울린 것, 반은 정답이다. 첫해 발령은 2012년 9월, 담임교사가 두 번 바뀐 채로 2학기를 맞이한 교실 붕괴 직전의 6학년 학급의 담임이었다. 선생님에 대한 기대는 진즉 사라지고, 초등학교 마지막 해의 끈끈한 추억도 반토막 난 아이들이었다.


  수업 중에 책상에 발을 올리고 있는 아이, 싫어하는 교사에게 욕하는 아이, 지난 담임교사의 말을 녹음해 오라며 녹음기를 챙겨 보낸 학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동료 교사로부터 전해 들었다. 첫 발령의 설렘보다 감당해야 할 무게에 조금 겁이 났지만, 그래도 아이는 아이였고, 부모는 부모였다. 더군다나 나는 몰라서 용감한 신규 교사였다! 다 큰 척 해도 풋내나는 아이들과 이제는 학급이 안정되길 바라는 부모들과 어설프지만 기합이 잔뜩 든 담임의 묘한 에너지가 한 데 모여, 다행히 그해 6학년 2학기는 무탈하게 흘러갔다.


  학급이 안정을 찾은 것과는 별개로 6학년 음악 시간은 듣던 대로 저기압이었다. 놀 때면 각자의 데시벨로 마음껏 떠들어대던 아이들이 음악 시간만 되면 입을 꾹 닫기에 곤란했다. 음악이 우리를 얼마나 즐겁게 하는데, 팔짱 끼고 입 닫고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어떡해. 나는 신규 교사의 패기로 적막을 깨고 솔선수범 우렁차게 노래를 불렀다. 이런 나도 부르는데, 너희가 가만있으면 되겠느냐 하면서.


  거침없이 하이킥의 서민정 노래 실력에 견줄만했던 나의 노래는 심드렁했던 아이들의 웃음벨을 눌렀고, 반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한 아이는 웃다가 배를 부여잡고 꺼이꺼이 하더니 급기야 울어버렸다. 그날 이후 우리 반 복도에는 흥겨운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들은 담임을 곧잘 닮아 서로 더 웃기려고 해서 문제일 때도 있었지만, 명랑하고 무해한 목소리를 듣는 게 낙이었던 시간들이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았다. 특히 자신 없는 노래는 더욱 그러했다. 학창 시절 모기보다 작은 목소리로 가창 시험을 몇 번이나 다시 치르고, 합창할 때면 어설픈 립싱크를 하며 옆 친구와 선생님에게 들통날 것을 걱정했다. 다른 이에게 부끄러워 목소리를 감추는 일이 스스로에게는 더 부끄러웠다. 아이들은 나처럼 부끄러움에 갇히기보다 시도하는 데서 오는 자유로움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부족함을 딛고 서는 작고 단단한 용기도 함께. 웅장한 마음에 비해 가볍게, 한 편의 시트콤처럼 배꼽 빠질 듯 웃다 울었던 우리였지만 말이다.






  교직 마지막 해인 2021년, 5학년 담임이 되었다. 매해 돌아오던 새 학기인데도 마지막이라는 선이 그어지니, 하루하루가 더 특별했다. 아쉬움 없게 현재를 살뜰히 가꾸며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해를 채우고 싶었다. 노래로 아이들을 울린 두 번째는 그해 연말, 학급 쫑파티 날이었다.


  비록 노래 실력은 별 볼 일 없지만, 언젠가는 목소리에 나를 실어 누군가의 마음에 노래로 가 닿는 것. 그것은 나의 낭만이었다. 새로운 모험을 앞둔 건 이직을 결심한 나뿐 아니라 곧 새 학년이 될 아이들도 마찬가지라서 노래로 위로와 응원을 전하고 싶었다. 선곡은 어반자카파의 ‘수고했어, 오늘도’. 쫑파티를 3개월 앞두고 틈틈이 노래를 연습했다. 내 목소리 하나 마음대로 연주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분해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했다.


  그날의 나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자리를 마주한 작은 무대에서 노래했다. 립싱크하며 자신을 부끄러워하던 어린 나도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봤을 테다. 나와 눈 맞추던 아이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고개를 파묻고 펑펑 우는 아이를 보고는 더 다정하게 응원의 마음을 노래했다.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우리, 바라는 바를 다음으로 미뤄두지 말고 시도해 보자며 작고 귀한 도전을 나눴었다. 건강을 꿈꾸며 각자 정한 목표로 아침 달리기를 하고, 생각이 자라나는 서로를 그리며 용기 내 발표하고, 편 가르기보다 소외된 친구를 챙기고, 못해도 즐기자며 서로를 격려했다. 언젠가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던 나는 우리 일상을 웹툰으로 그려 학급 홈페이지에 연재했다. 생일이면 아이에게 맞게 골라둔 책 속 문장을 선물로 읽어주었는데, 두 손 모아 받는 시늉을 하는 아이도, 다이어리에 또박또박 받아 적는 아이도, 헤어질 때 본인이 고른 문장을 책갈피로 선물해 준 아이도 있었다. 물론 크고 작은 갈등과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웃으며 만나고 웃으며 헤어지는 날들이 힘이 되어 거뜬했다.


  종업식이 다가오자, 체육 전담 선생님이 찾아왔다. “귤쌤, 5학년 2반 운영 어떻게 하셨어요? 사실 학년 초에는 선생님이 그렇게 친절해서 아이들 질서가 잡히려나? 너무 고생하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학년말이 될수록 2반 분위기가 가장 좋고, 아이들이 알아서 뭐든 척척 잘하는 거예요. 귤쌤 반은 무언가 다르다고 느꼈어요. 떠나신다니 아쉽지만, 선생님은 어디서 무얼 하든 잘하실 겁니다.” 열댓 살이 많은 선배 교사로부터 ‘그래, 네 걸음으로 걸어가. 그래도 괜찮아.’라는 응원을 받은 것만 같아 마음이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낭만이 넘실대던 교실. 세상 경험 두루 하고서, 눈이 맑고 지혜가 깊은 어른이 되어 아이들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10년 가까이 풋내기 선생님을 너그러이 받아준 매해의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떠나서 돌아보니 노래 실력만큼이나 부족함이 많았던 교직 생활이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나 역시 힘차게 자랄 수 있었던 건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교사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이었다.


  교직을 떠난 후, 내 열정에 불을 지폈던 직장 후배는 ‘선배님의 용기 있는 선택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라며 인사를 전해왔다. 시도하지 않고 꿈만 꿀 때는 부정의 목소리가 컸지만, 행동하며 꿈을 현실로 끌어당겼을 때는 응원과 격려의 목소리가 더 커진다. 내 안의 소리였을지도 모르겠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나가는 삶, 그것이 바로 내가 꿈꾸는 낭만이자 스스로에게 내어준 숙제다.


  낭만을 좇아, 가능의 영역을 탕진하자!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도입부




아경 

‘아, 살아있구나.’의 소리를 따라 걷고 있습니다.

팽다아르 제3의 축가에서 ‘불멸의 생을 열망하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탕진하라.’라는 구절을 몹시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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