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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경 Oct 04. 2024

자갈 30톤을 손수 옮기겠다고?

08. 우공이산, 자갈 나르기

  

  

  강자갈 15톤이 작은 둔덕을 만들며, 집 앞 공터에 소복이 쌓였다. 이 주 뒤, 동량의 강자갈이 한 번 더 배송된다. 동글 매끈 귀여운 강자갈도 15톤 치 모여 한데 쌓여있으니, 귀여운 감은 사라지고 육중한 무게감이 그 자리를 꿰찬다. 그래도 생각보다 해볼 만한 것 같은데? 일단 일을 저질러 놓고 부리는 허세로 적절한지는 모르겠다만, 재밌겠다 싶었다.


  집 앞마당, 중정, 옆 뜰을 강자갈로 채울 예정이다. 건축을 마무리하며 빈 땅에 마사토만 깔아 둔 상태여서, 잡초가 무성하게 올라오거나 토사가 유실되는 일을 방지하려면 잔디나 자갈을 깔아주어야 한다. 미관상으로나 관리상으로나 우리에겐 자갈이 나았다. 잘게 깨뜨려 모퉁이가 뾰족한 파쇄석보다 강물에 오랜 세월 다듬어져 동글동글해진 강자갈이 좋았다. 봄이나 가을 햇볕에 따끈따끈 데워진 자갈 위를 맨발로 걸으면 참 좋겠다 싶어서.


  어쩌다가 30톤의 강자갈을 짝과 나 둘이, 이고 지고 옮겨 직접 깔 생각을 했는지. 돌이켜 생각해 봐도 아주 맹랑하다. 그렇지만 이 사달이 난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홍천집 앞마당과 진입로는 무릎 높이의 단차가 있어 차량이 들어설 수 없고, 중정은 담벼락이 막아서고 있다. 강자갈을 옮기려면, 자갈을 1톤씩 큰 마대에 나눠 담고, 포장된 마대는 크레인으로 적재적소에 운반해야 한다. 마대를 싸는 건 모두 사람 몫이다. 마대 한 자루를 싸는 데만 대략 13만 원이 든다. 장비도 장비지만 인건비도 만만찮다. 건축 막바지에 자금은 여유가 없고, 대신 체력은 자신 있었다. 사실 그 시즌에 우리는 한창 클라이밍에 빠져있었고, 나는 3대 운동(중량 스쾃/데드리프트/벤치프레스)을 배우고 있었다. 아낄 필요가 있는 주머니 사정과 차오르는 체력적 자신감(허세). 그러니 그럴 만도.


  마치 우공이산처럼 우리도 자갈이 만든 작은 산을 야금야금 옮겨보자 했다. 얼마나 땀을 빼야 할지,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는 해봐야 알기에 장비부터 갖추기로 한다. 짝은 공사장에서 흙과 모래를 옮기는 질통이 딱 맞다며, 개당 8천 원에 세 개를 구입했다. 질통은 책가방처럼 등 뒤로 메는 형태로, 입구가 뚫려 있다. 어깨끈 두 개와 함께 앞으로 당겨 잡을 수 있는 노끈 손잡이가 하나 있는데, 이는 절개된 바닥 면을 여닫는 데 쓰인다. 자갈을 싣고 옮길 때는 손잡이를 팽팽하게 당긴 채 유지하고, 원하는 위치에서 잡은 힘을 느슨하게 풀면 자갈이 와르르 쏟아진다.

 

  이제 질통을 둘러메고 앉을 수 있는 용도의 탁자가 필요하다. 7살까지 과수원 소녀로 살았던 깜냥 덕에 과일 나르는 플라스틱 상자를 네 개 구입했다. 필요에 따라 상자 세 칸, 네 칸을 적절히 택해 쌓아 올리면 높이가 적당하다. 개당 4천 원가량. 이후 조경 시 식물을 나르는 데도, 호미나 모종삽을 보관하는 정리함으로도 요긴하게 쓰일 듯하다. 자갈을 퍼담을 삽은 미리 구입해 둔 터라 이제 레디, 액션이다.






  여름이 한창인 7월, 읍 차 읍 차 촤르르르르 소리가 반복된다. 짝과 나는 각각 질통을 메는 역할과 자갈을 퍼담는 역할, 즉, 돌날러와 삽질러로 나눠 자갈 운반을 시작했다. 스스로 놀이라고 최면을 건 노동을! 짝은 질통 가득, 나는 5분의 3 정도 채워 날랐다. 내 무게 이상은 든 것 같다. 각 스무 번씩 했을까? 와, 이거 제대로 운동 되네. 복압 잡고 고관절 접었다 펴면 중량 스쾃인데? 근데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힘이 남아 계속하려는 짝을 만류하며 새참을 먹자 꼬신다. 작은 둔덕이라고 얕잡아본 강자갈은 연신 퍼내는 삽질에도 꿈쩍하지 않는 걸 보니, 멀리 보이는 큰 산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여태 했는데 그대로네?


  둘이서는 계절이 바뀌도록 못다 옮기겠다 싶어 지원군을 불렀, 아니 모셨다. 짝의 귀한 직원 표와 대학 동창 권이 그 주인공이다. 직원에게 사적인 일을 도와달라고 하기 망설여졌지만, 사실 이 자갈 나르기를 넘치는 의욕과 체력으로 거진 다 해낼 수 있게 밀어붙인 사람이 바로 표다. (어쩜 짝은 본인과 똑 닮은 직원을 만났는지.) 몸이 근질근질하여 얼른 돌 나르고 싶다고 말해준 표와 언제 가면 되냐며 흔쾌히 도와주러 온 권에게 두고두고 고맙다. 물론 감사의 마음을 담은 일당과 몸보신을 위한 백숙을 대접했지만, 그걸로는 모자란다.


  땡볕에 돌을 나를 수 없으니 새벽 다섯 시부터 작업하자며, 표와 권은 전날 밤에 홍천집으로 와 하루를 묵었다. 새벽녘 우리를 깨운 건 알람이 아닌 세찬 비바람과 천둥소리였다. 북에서 남으로 거칠게 긁으며 쏟아지는 비바람으로 한 치 앞을 보기 어려웠다. 가볍게 비가 내려주면 덜 더워 좋겠다고 했더니, 이렇게 퍼부을 줄이야. 이왕 이렇게 된 거 푹 자고 비 그치면 시작하자며 체력을 비축했다.


  오전 8시, 비는 잦아들었지만 구름은 여전히 하늘을 덮고 있다. 이 정도면 일하기 아주 좋지. 표와 권과 짝과 나는 준비 운동을 한바탕 하고서, 작업복 차림새로 두툼한 30톤 강자갈 둔덕 앞에 섰다. 읍 차 읍 차 촤르르르르. 간단히 시범을 보이고, 역할 분담을 했다. 둘 돌날러, 둘 삽질러. 지친다 싶을 때 선수 교체. 보슬보슬 내리는 비와 자욱한 물안개 덕분에 평소보다 시원했다. 그렇게 한 시간 반가량을 쉬지 않고 지속하니, 어느덧 강자갈이 중정을 가득 메웠다.


  노동할 때 새참은 필수다. 잠깐 쉬어가는 시간에 새참을 준비했다. 요리의 ‘요’자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던 나는 홍천집에서 요리의 ‘ㅇ’을 겨우 그리고 있다. 그 서툰 솜씨로 새참 준비를 하니, 통밀 샌드위치 하나 만드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짝과 표와 권은 퍼 나른 자갈을 평평하게 고르고, 시원하게 물을 뿌려 흙 묻은 돌을 고루 씻었다. 드문드문 드는 해에 깨끗해진 강자갈은 반짝반짝 윤이 났다. 마음 가득 흐르는 뿌듯함과 고마움만큼 샌드위치 속도 듬뿍 넣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한 시간 걸려 만든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십 분도 채 안 되어 맛깔나게 먹어 치우고 본격적으로 앞마당 작업에 돌입했다. 앞마당은 중정의 2.5배 되는 크기다. 이제 지구력 싸움이다!



별칭 '한 시간 샌드위치'(좌), 중정 돌날러 1인(우)



  반복되는 일은 서서히 체계를 갖춰갔다. 각자의 체격과 움직임에 맞게 선호하는, 즉 같은 시간 일해도 덜 힘든 역할이 생겼다. 표와 권은 편한 자세를 찾으니 삽질에 요령이 생기고 속도가 붙는다고 했다. 짝은 둘 다 비슷하다 했고, 나는 돌날러가 지속할 만했다. 삽을 꽂는 자갈 둔덕의 위치에 맞게 지지하는 상자의 높낮이를 조절했고, 돌날러가 깊이 앉아야 할 때는 삽질러가 ‘헛, 둘, 가즈아!’ 박자 맞춰 질통을 경쾌하게 밀어 올려 주었다. 앞마당의 무릎 높이 턱 앞에는 큰 돌 몇 개를 쌓아 계단을 만드니 자갈을 지고 오르기 안성맞춤이다. 한 번씩 자갈 둔덕을 발로 밟아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려 주면 자갈 사이가 느슨해져 삽질하기 수월했다.


  단순히 몸을 쓰는 반복 작업이라고 생각했는데, 몸을 요리조리 쓰면서 머리도 쌩쌩 돌아간다. 이렇게 해보면 어때? 저렇게 해보면 어때? 이렇게 하니 덜 힘들어. 저렇게 하면 효율이 높네. 몸과 머리가 계속 작동하는 동안, 혈액이 고속도로를 타고 전신으로 쭉쭉 퍼져나가는 듯했다. 평소 두 시간이면 헐떡대며 나동그라졌을 일인데, 반복에 가속도가 붙은 데다 넷이 함께 사기를 북돋우니 5시간이 지나도 할만한 일이 되었다. 땀으로 흥건해진 서로를 보며, 모종의 고양감을 느꼈다.


  오후 2시가 되자 구름이 걷히고 볕이 들었다. 앞마당도 3분의 2가량 채워졌다. 삽질러들은 앞마당의 남은 분량을 보더니 30분 더 하고 마무리하자 했다. 수분 보충을 위해 틈틈이 물을 마시고, 냉장고 냉수보다 더 차가운 지하수로 중간중간 등목을 했다. 시원하, 으춰춰춰춰. 호들갑 떨며 등목하는 아이들을 보며, 청춘은 바로 지금이라며 부푼 마음으로 쾌청해진 하늘을 올려다본 스스로가 재밌었다. ‘30분 더’에 ‘딱 30분만 더’를 얹어 우리는 3시에 모든 일을 마쳤다.


  한 솥 바글바글 끓여낸 백숙과 닭볶음탕을 앞에 두고, 푹 익은 닭과 흡사한 우리 넷은 그제야 나른하게 무장해제 됐다. 말없이 허겁지겁 닭을 뜯는데, 표는 새벽 5시부터 시작했으면 남은 7톤? 그것도 모두 다 했을 텐데 아쉽단다. 지긋지긋한 체력이다. 그나저나 우리 넷, 정말 멋진 팀이었다! 꿈쩍하지 않던 덩치 큰 산이 신나게 퍼먹고 남은 케이크처럼 납작해진 걸 보면 탄성을 지를 수밖에. THX!   




아경  "마당 자갈을 몇 톤까지 직접 나를 수 있나? 셀프로 할 수 있는 영역인가? 궁금할 때, ‘이렇게도 했어요.’라고 귀띔해 주기 위해 썼어요. 우리처럼 손수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자금보다 체력이 여유 있다면) 가능해요. 건물 경계에 턱이 있는 게 아니라면 외발 손수레를 이용해도 한결 수월할 것 같네요. 운동 전중후가 모두 중요하듯, 노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안전과 건강을 가장 우선시 해주세요. 정원 셀프 자갈 나르기. 질통, 과일 상자, 삽. 그리고 건강한 몸과 마음. 요렇게 준비하시면 됩니다!"







이랬던(좌) 자갈 둔덕이 이렇게(우) 되었다.



이후 몇 팀이 홍천집에 놀러 왔다가 자갈 나르기를 도와주었다. 정말 정말 고맙다.



사진 김진철 | 중정 풍경. 앞으로 나무도 한 그루 들어설 예정이다. 강자갈 덕에 볕이 들면 더 아늑해지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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