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미감이 통하는 건축설계사무소를 찾아서
화룡점정이라는 고사성어를 좋아한다. 근사한 용 그림에 눈을 그려 넣자, 그림은 진짜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이야기. 다 된 밥에 재 뿌리기가 아닌, 다 된 밥에 뜸을 들이듯 그 수준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한 점. 클라이맥스에 이르다. 정점에 도달하다. 절정으로 끌어올리다. 모두, 한 점이 만드는 마술이다.
건축설계와 시공팀을 찾을 때, 화룡점정을 실현해 줄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랐다.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던 집을 현실로 데려와 근사하게 표현해 줄 수 있는 곳이기를. 바라는 바를 아무리 소상히 말한다 해도, 같은 요구사항을 듣고도 건축설계사가 그리는 공간 밑그림은 제각각일 테다. 그렇기에 더욱이 편안하고 아름다운 공간의 화룡점정, 그 한 점에 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곳이기를 바랐다.
바라는 이상에 다가가기 위해 집요한 검색과 발로 뛰기를 서슴지 않는 짝은 건축설계사무소를 결정할 때는 의외로 그 절차가 단순했다. 건축설계사무소를 이곳저곳 알아보고 비교 분석하지 않았다. 대신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우리의 미감에 맞는 집을 발견하고 감상하기에 골몰했다. 22년 1월부터 9월 사이, 땅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후로 반년을 줄곧 이상적인 집의 구조와 형태에 관한 시야를 넓히는 정보를 촘촘히 쌓아갔다. 짝은 꾸준하게 성실히, 나는 필이 꽂힐 때 후루룩 왕창. 각자 따로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마음에 든 건물 디자인이 비슷했다. 이제 우리 것으로 맛깔나게 버무릴 단계다!
그해 9월, 집 앞 오래된 호프집에 마주 앉아 은행구이를 먹다 말고 조각낸 꼬치로 집의 형태를 만들어보곤 했다. 이건 어때? 저건 어때? 아니 아니, 이런 모양 말이야. 설명하다 생각과 표현 사이에 오차가 생길 때는 휴지에 그림을 그려가며 소통했다. 맞아 맞아, 딱 이거야. 그렇게 우리 둘만의 공감대를 먼저 갖추었다.
건축설계사무소는 단번에 결정했다. 더 알아볼 것도 없이 이곳이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튜브에서 ‘집짓기'를 검색하다 우리와 감성이 비슷한 콘텐츠를 발견했고, 영상 중에 지나가듯 찍힌 건축설계사무소 정보를 짝이 예리한 눈썰미로 놓치지 않았고, 알고 보니 벌써 한참 전에 마음에 들어 기억해 둔 집 중 하나가 해당 건축사무소 대표님의 집이었고, 나머지 저장해 둔 몇 건축물들 또한 이곳에서 설계하고 건축한 집이었다. 게다가 건축설계와 시공을 함께 하는 회사라는 점도 큰 이점으로 다가왔다.
미팅을 위해 사무소를 찾을 때 마침 사옥이 완공되어 그곳에서 미팅하게 된 게 결정타였다. 우리는 ‘다 좋은데 딱 이거 아쉽다.’ 말고 ‘다 좋은데 진짜 단연코 이게 최고다. 이 부분이 멋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이런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과연 이곳이 우리의 꿈을 눈앞에 근사하게 그려줄 수 있는 곳인지 재차 확인하기 위해 말했다.
“가령, 타일 격자를 잘 맞춰 시공하다가 콘센트 주변 마감할 때 비뚤어지는 경우 있죠. 대강 짜깁기한 것처럼요. 그러면 다른 곳 아무리 잘해놔도, 딱 어긋난 데만 눈이 가요. 저희는 그런 부분이 참 중요해요.”
“알죠. 중요하고 말고요. 그런 거 저부터 못 보고 지나갑니다. 하하.”
이미 어떤 건축물을 어떻게 그려냈는지 사례를 보아 알고 있었기에, 작디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는 섬세한 곳인지, 미감이 통하는지, 결이 맞는지가 관건이었다. 건축사무소의 새로 지은 사옥은 건물 외관부터 인테리어까지 편안함을 느낄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기에, 이미 마음이 반 이상 기운 상태였다. 계약 도장을 꺼내게 만든 방아쇠는 역시 작은 디테일에서 촉발되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나는 짝에게 말했다. “세면대 수전(수도꼭지) 봤어?”
뒤이어 화장실에 다녀온 짝은 나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표님께 말했다. “대표님, 이거예요. 이렇게 해주세요!”
화룡점정은 세면대 수전이었다. 정교하고 깔끔한 디자인과 실용적인 부분(얕은 깊인데 물이 튀지 않아 좋았다.) 모두 갖춘 아주 마음에 드는 멋진 수전이었다. 더불어 파란 가을 하늘이 보이는 천창에서 빛이 쏟아졌다. 통창의 마감은 거슬리는 것 하나 없었다. 나무로 제작된 문과 콘크리트 벽체의 조화가 편안함을 주었다. 한 끗 차이로 아쉬울 수 있는 요소들이 서로 어우러지며 멋이 살았다.
우리는 그길로 계약했고, 설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이 8할이라면 살짝 두려운 마음 2할이다. 첫 임장을 나설 때 느꼈던 떨림과 비슷한 간지러움이 몸 곳곳을 타고 흘렀다. 아직 모르는 미지의 행복과 숨바꼭질을 하다 빼꼼 나온 옷자락을 발견한 것처럼 두근댔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계약금을 보내며,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가 되면서도 정신 바짝 차리고 잘 해내야겠다는 다짐이 섰다. 단단한 마음으로 의기투합하여 짝과 손바닥을 마주쳤다. 22년 9월 중순이었다.
24년 10월, 홍천집에서 첫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서쪽 창으로 마주 보이는 산 이름을 이틀 전 이웃을 통해 알게 되었다. 머지않아 단풍이 들 모습을 기다리는 동시에 곧 저물 초록을 조금은 더 봐두려 서성이느라 눈이 바쁘다. 2년 전에는 빈터였고, 작년 가을에는 철근 골조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지금은 탄탄한 집이 우리를 감싸고 안과 바깥을 이어 준다. 이곳에서 다 된 밥에 재 뿌리지 않고 맛깔나게 뜸을 들이는 건 우리 몫이다. 어쩌면 우리 집의 설계는 지금부터일지도 모르겠다. 시간과 손길이 쌓일수록 멋을 더하는 집이 되도록, 한 점 한 점을 소중하게 찍어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어제 오후에는 길고양이가 앞마당에 다녀갔다. 혹시 몰라 미리 사둔 고양이 사료를 내어주니, 양껏 먹고 나무 그늘에서 웅크리고 졸다가 유유자적 떠났다. 찾아오고 떠나고, 반기고 보내는 일이 반복되겠구나. 꼭 사계절 같을 마음의 풍경에 미리 설레면서도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