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효율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무슨 일을 하든 가장 효율적으로, 버리거나 포기하는 부분을 최소화하고, 내 선에서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아이와 관련한 결정에서 효율을 따지다가 크게 후회를 할 뻔했다(사실 이미 크게 후회를 했다).
아이가 5세 되던 해에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였다. 몇 군데의 영어유치원이나 놀이학교 상담을 받아 보고, 집 근처 유치원도 두세 군데 돌아보았다. 하지만 규모가 클수록 바이러스의 위험은 커질 것 같았고, 무엇보다 낮잠 시간을 꼭 필요로 하는 아이의 생활 패턴을 고려했을 때 어린이 집을 1년 더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아이는 집 앞 어린이집에서 실컷 놀면서 5세를 보냈다.
회사 동료들의 아이들이 어느 학원을 다닌다는 둥, 상사의 아이들은 몇 살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녔다는 둥 들리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아이가 편안하고 행복해한다면 5세까지는 그 생활을 즐겨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5세 겨울이 되었을 때, 나는 아이와, 나와, 아이를 돌봐주시는 친정어머니께 가장 효율적인 교육 기관이 어디일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특히 다른 아이들보다 1년 늦게 유치원에 들어가는 것이니, 짧은 시간에 같은 효율을 낼 수 있는 곳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부 영어유치원은 프로그램은 좋았지만 너무 일찍 끝나거나 코로나로 인한 휴원이 많아 친정어머니께 부담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영어교육에 몰두함으로써 국어교육이 소홀해지거나 놓치는 부분이 생기는 것은 원치 않았다. 일반유치원의 누리과정이 아닐지라도 국어교육 시간을 충분히 가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영어도 노출이 많을수록 좋은 과목이니 원어민 교사와 즐겁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이면 좋을 것 같았고, 취학 전 필수 교육이 교육 과정 중에 있으면 워킹맘으로서 나의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한 반은 소수로 이루어져 아이가 좀 더 세심한 케어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랐고, 미술이나 체육 시간도 충분해서 아이가 즐겁게 생활하기를 바랐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는 내가 원한 대부분의 조건을 만족시킨 놀이학교에 입학했다. 멋진 교복을 입고 등원하는 모습을 보면, 돈이 얼마가 되었든, 내 벌이를 다 가져다 바친다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아이는 놀이학교에 가기 싫어했다. 짜증이 늘었고 어플에 업로드되는 사진 속 아이의 얼굴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한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가 책을 들고 읽고 있는 사진, 아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영어 단어와 그림을 연결하며 알파벳을 그리고 있는 사진, 숫자 세기도 어려워하는 아이가 덧셈을 하고 있는 사진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눈치와 코치로 버티고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많이 울기 시작했다. 코가 막혀서 짜증이 난다고, 몸이 간지럽다고 울기 시작해서 그치지 않았다. 발을 구르고 몸을 긁고 소리를 치고, 한참을 달래야 가까스로 그치거나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이를 달래다 지쳐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고 마음을 이야기해 보라고 다그치자,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자기도 모르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냥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다고.
일 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 얼굴이 생각난다. 원망스러운 눈빛, 화가 가득한 그 얼굴과 눈빛, 표정이 나를 각성하게 한 듯 잠시간 머리가 멍했다. 그리고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는 아이의 말이 가슴에 맺혔다.
몇 번의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나는 결정을 했다. 다행히 어린이집을 함께 다녔던 친구들이 있는 유치원에 자리가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에 만들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아이는 차차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제 곧 학교에 가는 지금은 한글도 잘 읽고 여전히 책도 좋아하고, 영어도 파닉스를 조금씩 하면서 천천히 배워나가고 있다. 아이는 그냥 잘 자란다.
놀이학교는 별로다, 6세 때 영어유치원이나 놀이학교를 보내면 안 된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아이의 교육과정을 선택함에 있어 ‘효율’을 최우선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좀 더 자고 쉬게 하고 싶으면서도, 한글이나 영어 중 무엇도 포기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초등 준비나 선행을 하고 싶으면서도, 아이가 행복하게 노는 모습을 많이 보고 싶어 하는 말도 안 되는 바람을 갖지 말았어야 했다. 모두에게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최우선에 두고 몇 가지는 포기하면서 아이에게 방향을 잡아줄 수 있어야 했다.
부모가 되고, 정답도 오답도 없는 많은 선택지 속에서 숱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지만, 그 결정이 아이에게 최선이라는 자신은 늘 없다. 내가 심도 있게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오만함도 버리는 중이다. 육아(育兒)와 육아(育我)를 동시에 하는 엄마가 나만은 아니기를.
* 6세 때 영어유치원이나 놀이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은, 분반이 되어있는지를 미리 확인하거나(전년도부터 교육을 시작한 아이들과 통합해서 수업을 받는다면 적응이 어려울 수 있어요), 미리 집에서 학습지 등으로 교육을 시켜 두는 등의 준비를 하는 게 좋습니다. 또한 아이가 그러한 환경에 얼마나 민감한지, 남들은 알고 나만 모르는 것 같은 상황이 왔을 때 개의치 않는 성격인지 아니면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지 등을 고려하여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우리 아이 같은 상황에서도 잘 적응하여 기관을 졸업하는 친구들도 많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