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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Oct 30. 2022

신의 선물, 가난

세 자매의 집구석은 어쩐지 낯설지가 않았다. 막내 동생 인혜의 생일날 저녁. 깜짝 파티를 준비한 두 언니는 싱크대 앞 바닥에 숨어 앉았다. 동생이 오길 기다리며 나눈 두 언니의 대화도 나는 이해 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생일날 친구들을 초대했는데 엄마가 삶은 달걀 위에 촛불을 켜 주었단다. 그 때 맏이 인주는 처음으로 자신의 집이 평범한 어느 가정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종영한 <작은 아씨들>이라는 드라마 이야기다.     


평범하지 않다는 것. 남과 다르다는 것. 자신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대면한 어린 인주는,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보냈을까. 생일 초를 끌 때 바람 빠진 풍선처럼 풀려버린 그녀의 눈동자가, 나는 한동안 잊히지 않았다. 어쩐지 낯설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인주의 눈을 닮은 어느 소녀를 안다. 오랜 시간 깊은 못에 숨겨 놓았던 그녀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 올랐다. 


1998년 가을이 짙은 어느 날. 그날 그녀는 유난히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다. 보통 1교시를 마치고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반쯤 먹는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남은 밥을 먹는다. 그러다 가끔 미술 선생님께 들켜서 벌을 받기도 했지만, 벌 받는 그 시간도 그녀는 참 즐거웠다. 공부 빼고 모든 게 재미있던 시절이다.     

 

점심시간에 남은 도시락을 먹어 치우고 나면, 다음 코스는 운동장이다. 축구 경기를 하는 남학생들을 몰래 훔쳐보는 맛은 열여섯 살 소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별미였다. 운동장으로 막 나가려는 순간, 누군가 교실에 찾아왔다. 그녀는 순간 직감했다. 자신의 영혼이 위태로워질 위기를 예감했다. 그녀를 부른 그는 교무과장님이자, 같은 반 친구의 아버지였다.      


그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섰다. 창가 쪽 벽면을 모두 채울 만한 커다란 책상 앞에 그가 앉았다. 안 그래도 또래보다 작았던 그녀는 권위가 넘쳐 흐르는 그 책상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그는 말했다. ‘너 같은 얘들 때문에 학교가 안 돌아가’ 3분기 학비 125,000원을 미납 중이었던 소녀를 그토록 오랜 시간 괴롭혔던 말이다. 그는 말과 표정으로, 때론 거친 숨으로, 그녀에게 가난과 수치를 가르쳐 주었다. 자신의 삶은 지금 운동장에서 웃고 있는 반 친구들과 다르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이다.     


세상에는 지독한 가난을 극복하고 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생일날 케이크를 살 수 없었던 인주와 학비가 없어 교무실에 불려간 소녀의 이야기는, 어쩌면 누구나 가슴 속에 하나쯤 가지고 있는 평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들의 삶은 특별하다. 왜냐하면, 여전히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왕 솔로몬은 그의 저서에서 누리는 것은 신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어른이 된 인주는 여전히 가난하지만, 동생의 생일 케이크를 살 수 있어서 행복했다. 어린 소녀가 대면한 가난은 혹독했지만, 그녀는 지금 공과금을 밀리지 않고 낼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 지독한 결핍은 그녀들에게 수치가 아니라 만족을, 그리고 삶을 누리는 기쁨을 가르쳐 주었다.     


측량할 수 없는 재산을 가졌고, 천 명이 넘는 아내를 두었던 솔로몬에게는 만족이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부자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인주와 어린 소녀는 가난했지만, 그 어떤 부요보다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마음껏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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