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BCG라고 부르는 불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을 때도 아팠지만 실수로 맞은 자리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오지게 아팠던 기억이 난다. 한동네 사는 또래 친구들 모두 같은 날 그 주사를 맞았다. 모두가 주사 맞은 자리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꽤 몸을 사리는 중이었다.
동네에 이름이 같은 친구가 있었다. 참 많이 싸웠던 기억이 난다. 싸움의 원인은 늘 달랐지만, 시작은 같았다. 항상 친구가 먼저 토라져서 가버린다. 어느 순간에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늘 그녀가 화를 내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자주 억울했던 기억이 있다.
그날도 그랬다. 그래서 나도 화가 났다. 주먹을 불끈 쥐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덤비길래 처음엔 말로 때렸다. 기름 부은 불꽃처럼 화가 치밀었던 친구의 손이 날라 왔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유도 모르고 한 대를 맞았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그 작은 체구에 있는 힘을 실어 나도 주먹을 날렸다. 그렇게 공평하게 한 대가 오면 한 대를 보내고, 두 대가 오면 두 대를 보냈다. 솔직히 공평하진 않았다. 받은 그것보다 조금 더 세게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그녀가 불주사 맞은 어깨를 공격했다. ‘네 이년. ’최후의 한 방을 제대로 날리고 결국, 그녀를 울려서 집으로 보냈다. 차마 똑같이 그 어깨를 건드릴 순 없었다. 어린 마음에 불주사 자리를 건드리는 건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친구들은 서로의 흉터를 봐주며 주사 맞은 자리를 지켜주었단 말이다. 그녀의 마지막 한 방은 용서받지 못 할 짓이었다. 맞아서 아픈 것보다 우리가 친구로서 끝까지 지켜야만 했던 믿음과 의리가 깨진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아린 마음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서 힘없이 엄마 품에 안겼다.
하루는 20년 지기 친구이자 동생의 부인이 된 올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바탕 웃고 난 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가만히 생각해봐.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났다면, 분명히 걔가 화내는 이유가 네게 있을 거야. 덩치도 쪼끄만 게 항상 깐족깐족 거리니까 약이 올랐던 건 아닐까?’
먼저 화내는 사람이 있고 그 화를 당하는 사람이 있다. 당한 사람은 당해서 억울하다. 화를 낸 사람은 분명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를 냈다는 이유로 질타를 받는다. 그래서 그도 억울하긴 마찬가지이다. 관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철없는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항상 억울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쩌면 정말 억울한 건 그 친구였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라고는 고작 8년을 살아본 게 전부인 어린애였다.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기에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겠다. 그 원인을 진작 알았다면, 그때 그 친구를 잘 달래줄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말과 손으로 응징하지 않았을 텐데.
불주사를 맞은 자리에서 열이 나는 것 같다. 마흔이라는 인생을 사는 지금, 혹시 나는 여전히 그때 그 미숙한 어린아이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