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계절 사이의 간극이 나는 참 좋다.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이 슬그머니 얼굴에 와닿았다.‘어머나, 바람 찬 것 좀 봐.’이번이 마흔 번째 가을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매년 찾아오는 찬바람에 호들갑을 떤다. 옆에 있는 엄마에게 물었다.‘엄마, 매년 오는 가을이잖아. 근데 찬바람이 불면 왜 매번 어머, 하고 놀라는 걸까?’해마다 더욱 깊어지는 눈웃음을 하며 그녀는 말했다.‘평생에 딱 한 번 부는 바람이니까.’
가을이 반가운 이유는 작년에 사귀었던 그 가을이 다시 찾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나간 것이 다시 온 거라고. 그래서 나를 아는 그 계절이, 다시 나를 찾아온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해마다 부는 바람이 어째서 그토록 낯설었는지.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오늘 맞는 바람은 오늘로 끝이라고. 내일 오는 바람은 오늘의 바람과 다른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 찰나 같은 시간에 나를 스쳐 갔던 바람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그 순간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도 말이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알았는지도 모른다. 지금 함께 보내는 이 순간도, 다시없을 시간이 될 거라는 사실을.
우리가 처음이라고 부르는 많은 이름들은, 특별한 의미를 만들어내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특별한 삶을 남기고 싶은 숨은 마음이‘처음’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첫사랑, 첫돌, 첫 월급, 첫 여행 등. 우리가 처음이라고 이름 지은 것들은 사실 계속 이어진다. 올해 생일도 처음이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도 처음 사랑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가 만나는 모든 순간들은 언제나 처음이다. 오늘 아침은 어제와 분명 다르고, 내일 다시 만나지 못할 시간이다. 매일 아침 정신을 깨우는 커피 한 잔도, 매일 맛과 향이 다르다. 갑자기 익숙한 오늘이 낯설게 느껴진다. 삶이 서툴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이번 생은, 처음이니까.
엄마의 일상은 지극히 단조롭고, 조용하다. 그런 그녀의 삶이 자주 내 가슴을 찌른다. 그런 삶에서 그녀는 매일 새롭게 사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이제 그녀의 삶을 아파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삶을,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방법으로 사는 여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