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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Aug 10. 2022

«우리들의 블루스»,영옥에게

애쓰지 않아도, 치유의 시간은 온다

한없이 가여웠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의 차가운 인생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다. 그녀는 정말 몰랐을까? 상처를 덜 받기 위해 했던 선택들이 오히려 또 다른 상처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사랑받는 법을. 상처를 치료하는 법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성이 찰 때까지 울어도 되고,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기뻐해도 된다는 사실을. 그녀에겐, 아무도 없었다.


영옥.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배우 한지민이 연기한 드라마 속 여주인공 이야기다. 처음 본 그녀의 모습은 예뻤다. 해맑게 웃는 그녀는 에메랄드를 품은 것만 같았다. 그녀의 활기는 영롱한 제주의 푸른 바다를 닮았다. 드라마의 전개가 진행될수록 나는 그것이 그늘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희. 그녀의 다운증후군 쌍둥이 언니의 등장은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영옥의 가면이 벗겨지고 민낯이 드러난 순간이다. 그녀에게 영희의 존재는 가혹한 숙명이며, 애증이다. 영희가 받는 불편한 시선은 그녀 자신의 몫이 되었다. 그녀가 영희를 숨기고 싶었던 이유다. 나는 가족을 숨기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누군가는 상처를 대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도 한다. 나는 사실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지나간 상처를 모조리 꺼내서 대면하다가 심장이 너덜너덜해질 것 만 같다. 그렇다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고 살다가 곯아 터지면 어쩌나.


자연에는 섭리라는 게 있다. 자연계를 다스리는 원리와 원칙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은 안다. 필 때와 질 때를. 그리고 올 때와 갈 때를. 모든 순서를 자연스럽게 대면하고 맞이한다. 이 질서가 자연을 지킨다. 사람의 인생도 그래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인생은 자연을 많이 닮았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슬픔이 차오르는 때가 있다면, 기뻐할 때도 있다. 상처받은 세월이 있다면 반드시 치유받을 때도 있다. 그때를 다 알 수는 없지만, 한 계절이 오고 가는 것처럼 치유의 시간은 온다. 이것이 내가 아는 삶의 질서다.


계절에는 간극이 있다. 이 시간은 한 계절과 다른 계절 사이에서 변화를 감지하고 적응하는 과도기 같다. 그래서 불안정하다. 겨울과 봄 사이처럼 혼란하다. 겨울옷을 입어야 할지, 봄옷을 입어야 할지, 나는 이 시기 되면 아침마다 이런 혼란을 겪는다. 하지만, 이 시기를 지나면 분명히 다음 계절이 온다.


인생도 그렇다. 상처 입은 과거와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온전함을 입기까지 그 사이의 간극이 존재한다. 그 시간 속에 있을 때 곯아 터진 상처를 대면한다. 마치 출구 없는 미로 같다. 참으로 외로운 시간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모두가 잠든 시간,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도 고독하다는 사실을.


영옥과 나, 그리고 당신의 삶에 치유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그 고독의 시간을 잘 견뎌왔다. 상처를 대면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자. 내가 애쓰지 않아도 마주할 시간은 올 테니까. 그때 피하지 말고 마주하자. 자연을 닮은 우리는 분명 그 고독을 이기고 태양처럼 떠오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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