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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Oct 30. 2022

내가 삶을 쓰는 이유

 다독을 욕심내던 한때가 있었다. 어릴 때는 책과 담을 쌓고 살았던 터라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를 반복했던 이유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삶은 여전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기로 했다. 가지고 있던 모든 책을 다니던 교회에 기증했다. 양이 많아서 옮기는데 꽤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서른 중반쯤, 평생이었던 나의 세계가 무너졌다. 깊은 상실을 겪었다. 새로운 세상으로 걸음을 옮겨야만 하는데 그 한 걸음을 떼기가, 그토록 두려웠다.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척이나 난감했다. 다시 살아갈 우물 밖의 세상을 배워야 했다. 그래서 다시 책을 들었다. 하지만 책은 세상이 아닌‘나’를 가르치고 싶었나 보다. 내가 모르고 있는 진정한 나를.     


나는 세상을 배우려는 고된 씨름을 내려놓았다. 오로지 나를 만나는 시간을 보냈다. 부끄러운 감정의 민낯을 들키는 날이 있었다.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글을 만나면 위로도 받았다. 날카로운 직언이 달려들 때는, 뼈를 두들겨 맞은 것 같이, 며칠씩 앓아눕기도 했다. 그렇게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어둠이 서리 내린 것 같은 세상에 빛이 보였다. 삶의 질서가 생겼다. 내가 보이면, 내가 살아갈 세상이 보인다. 

    

삶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터는 내면이다. 그곳에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전쟁을 일으키는 적은 나의 민낯이다. 자신을 대면한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이다.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모습이 설령, 내가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는 사람을 닮았을지라도.   

  

다르게 산다는 의미가 다른 환경에서 살고, 다른 일을 하며,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토록 상대적인 시선을 가지고 비교하며 한때를 살았나 보다. 나는 이제 무엇이 되기보다는, 나를 더 깊이 알고 싶다. 나와 더 친밀하게 사귀고 싶다. 다르게 산다는 것은 진정한 나로 산다는 의미라는 걸, 이제는 안다.     


오늘도 나와 당신은 내 안에 사는 나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괜찮다. 한숨, 두 숨, 천천히 숨 쉬면 된다. 살다 보면 우연히 만난 작은 행복들을 발견한다. 그 찰나와 같은 시간은 다시 나를 일으킨다. 또 살아가게 하고, 그렇게 살아진다.      


아마도 나를 알아가는 이 치열한 전생은 평생 살아도 끝이 없을 것 같다. 이런 삶의 여정들을 쓰고 싶다. 그 고된 싸움을 하다가 잠시 지칠 때, 누군가의 한숨에 작은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 나는 이제, 이렇게 살고 싶다. 아마도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어서 그렇게 부단히 애를 쓰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잘 살기 위한 몸부림. 그 민낯의 삶을 써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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