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 못지않은 몸챙김(바디풀니스) #몸에게 다정해지기
메인사진 by Ben White on Unsplash
만나는 내담자들에게 묻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지난 한 주 먹는 건 어땠어요?"
"잠은요?"
식사와 수면을 모두 관통하는 주체는 "몸"입니다.
몸은 심리 상태의 많은 부분을 알려줍니다.
저는 특히 상담이 식사 시간과 겹치는 때라면 밥을 먹고 왔는지, 끝나고 먹을 건지, 어떻게 어떤 종류의 식사를 하는지 질문합니다. 학원과 학원 시간 사이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해치우듯 먹는 청소년, 자기 계발 때문에 점심시간에 샌드위치 하나 먹고 근처 영어학원 회화반에 등록한 회사원, 가족들이 출근과 등교를 하고 난 뒤 오전 10시 즈음 여유로운 시간인 듯 아닌 듯 커피 한 잔 홀짝 들이키는 주부. 먹는 음식의 종류와 시간, 앞뒤 상황에 각자의 다양한 일상과 노고가 묻어있습니다.
우울을 겪는 사람들은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합니다. 불안과 초조를 느낀다면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중간에 계속 깨지요. 몸이 가장 이완하는 시간이어야 할 잠을 스트레스가 방해하는 것입니다. 혹은 너무 많이 자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대처하기도 합니다. 마치 곰이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심리적으로 동면을 취해서 스트레스로부터 도망가겠다는 몸의 외침입니다. 이래 저래 잠의 균형이 깨지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것입니다.
스트레스 상황이 한꺼번에 일어나거나, 오래 지속되는데 마음을 돌볼 만한 여력과 자원이 충분치 않을 때 문제가 생깁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스트레스에 휩쓸려 자신을 잊고 스스로를 돌보는 능력을 버리기 쉽습니다. 자기 진정(self-soothing)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정적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오히려 몸을 혹사합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힘들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몸을 해칩니다.
스트레스 상황을 처리하려고 몸을 혹사하는 행동은 이렇게 나타납니다.
폭식
과식
과음
카페인 들이붓기
지나친 운동
지나친 흡연
끼니 거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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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백을 하자면, 대학생 때 시험 스트레스로 기숙사 룸메이트와 삼일에 한 번씩 매운 떡볶이를 시켜먹었습니다. 먹고 나서 속 쓰리다며 후회했지만 며칠 지나면 다시 '00 떡볶이 콜?'을 외쳤죠. 밤새는 날이면 DA**라는 비싼 초콜릿 한 판을 사 와서 10분 안에 해치운 적도 다반사였습니다. 먹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험 압박으로 느껴지는 긴장을 풀고 싶어서 그저 '드링킹' 했습니다. 그렇다고 긴장이 덜해졌냐 하면 별로였습니다. 맵고 달고 짠 음식이 입을 강타하는 짧은 순간에서만 위로를 받았습니다.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는데 감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몸만 더 고생할 때 그 전략이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게 필요합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몸을 혹사시키지 않고 순간을 잘 대처할 수 있다면, 우리는 바로 그 방법을 썼을 것입니다. 스트레스원을 바꿀 수 없지만 그에 대처하는 자신이 평정심을 잃지 않는 법을 말입니다.
마음챙김, 다른 말로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는 이제 너무 유명해져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한 그 마음챙김이요. 순간순간 호흡에 집중하며 내게 일어나는 현상을 판단하지 않고 그저 알아차린다는 단순한 원리를 따릅니다.
몸에도 비판단적이고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습니다. 내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따뜻한 주의를 기울여 순간순간 알아채는 것, 바로 바디풀니스(Bodyfulness)입니다. 제가 만들어 낸 용어가 아니고 정신과 의사인 문요한 작가님이 <이제 몸을 챙깁니다>라는 책에서 소개한 개념입니다. 심리적 고통이 몸을 상하게 내버려 두는 일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쉽게 말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바디풀니스를 발견하고는 참 반가웠습니다. 스트레스원을 바꿀 수 없지만 몸에 따뜻한 시선을 주고 순간순간의 감각을 알아차림으로써 몸을 돌볼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마음도 돌볼 수 있습니다.
몸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순간의 감각을 알아차린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고민에 대한 제 나름의 답입니다.
스스로 몸을 돌보지 못했던 순간과 그 결과를 충분히 느끼는 것입니다. 내가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는데, 무엇을 얻었고 잃었는지 헤아려 보는 일입니다.
아주 좋은 예가 생각났습니다. 얼마 전, 새벽까지 글을 쓰느라 잠을 자지 않고 저녁 커피를 마셨습니다. 아이가 아파서 스케줄이 꼬이기도 했고, 오랜만에 시간이 난 김에 써버리자! 하면서요. 그런데 전 한밤중에 집중하는 일을 하면 다음 날 바로 타격이 옵니다. 저에게도 선택은 있었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쓰는 옵션이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다음날 몽롱하고 모든 게 귀찮은 상태로 한나절을 보냈습니다. 그때, 저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잘 느껴봐. 이 축 처지고 기운 없는 헤롱한 상태를. 이게 니가 어제 들이부은 커피의 결과야."
저는 그 날 하루 작정하고 제가 얼마나 몽롱한 상태로 지내는지, 얼마나 기분이 나쁜지 느끼기로 했습니다. 꽤 괜찮은 방법이었습니다. 이후부터는 저녁에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마다 멈칫하며 더 물어봤으니까요. '너 진짜 이거 마실 거야?'
우리는 몸을 노예처럼 다루는 데에 익숙합니다. 노예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자기 의견은 피력할 수 없습니다. 주는 대로 먹고, 재우는 대로 자고, 노동시키는 만큼 일합니다. 몸을 노예가 아닌 다정한 친구처럼 대해주면 몸을 이용해서 스트레스를 풀 생각이 줄어들 것입니다. 여러분의 발을 한 번 살펴보신 적 있나요? 양말을 벗고 생김새며, 색이며, 거칠거칠한 정도까지 찬찬히 살펴보신 적 말이에요. 저는 손을 한 번 보았습니다. 첫 아이 출산 후 지병처럼 달고 다니는 주부습진으로 군데군데 하얗게 일어난 손을요. 그리고 말했습니다.
'고생했다. 내가 그동안 너한테 한 번도 수고했다고 말해준 적이 없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부정적 감정을 몸을 혹사하며 푸는 것은 사실 자해의 일종입니다. 그러니 부정적 감정으로 힘들 때에는 감정을 느끼고 수용해서 내게서 떠나가도록 하세요. 제가 예전에 쓴 '감정 쓰레기통' 이야기가 도움이 될까 싶어 올립니다.
그거 아시나요?
양 팔을 서로 엇갈려 스스로를 안는 자세를 취하고 나를 쓰다듬으면서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고생했어.'라고 말하면, 몸이 대답한다는 것을요. 힘들었다면 눈물로, 피곤했다면 축 처지는 무거운 감각으로, 아팠다면 어딘가 쑤시는 통증으로요.
오늘, 몸에 다정하게 말 걸어주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