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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Jun 08. 2023

커피 유출 사건

양쌤의 another story 48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

 볼 것도 없이 아메리카노인데 메뉴판을 올려다봤다. 여름이 막 시작됐지만 아침저녁은 시원한 그런 날이면 '아아'냐 '뜨아'냐를 짜장면이냐 짬뽕이냐처럼 고민하게 된다.

"아메리카노 아이스 하나 뜨거운 거 하나요 "

 도서관에서 아침 일찍 티타임을 가지기로 한 지인의 커피까지 두 잔을 캐리어에 담았다. 캐리어를 조수석 의자에 올려놓을까 하다가 이미 짐이 한 가득 차지했고, 평평한 게 나을 듯싶어 의자 아래에 두었다.


 아침에는 잠긴 목을 푸느라 운전하며 노래 부를 때가 많은데 마침 라디오에서 요즘에 꽂힌 마일리 사이러스의 'Flowers'가 흘러나왔다.

 "I can love me better. I can love me better baby."

 금빛 드레스를 입고 전 남편 보란 듯이 멋지게 춤을 추던 뮤직 비디오 속의 그녀를 떠올리며 아침부터 과하게 흥이 나기 시작했다. 앗싸~ 어깨가 들썩이려는 걸 꽉 붙들며 좌회전 신호 대기 하느라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아악! 아아와 뜨아가 짠 것처럼 캐리어째 바닥을 향하여 철퍼덕 배치기를 했다.

 '저렇게 홀랑 넘어간다고?'

 얼른 손을 뻗어 세우려고 했는데 이 놈의 안전벨트. 그 와중에 가제트 형사의 만능 팔이 생각난 건 거의 멀쩡하게 수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전벨트를 풀며 손을 뻗으려는데 앞차가 벌써 좌회전을 하며 사라져 가고 있었다. 룸미러로 흘깃 보니 뒤로 차가 줄줄이 붙었다. 아 진짜! 뒤차의 경적소리가 들리기 전에 다시 안전벨트를 하고 서둘러 좌회전을 하는데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캐리어를 반쯤 탈출해서는 부채꼴 모양으로 커피를 뿜어냈다.

 '하아 참 도리도리 자알~ 한다.'


 시속 30km 단속 카메라 때문에 앞차들은 설설 기어가고 뒤차들은 졸졸 따라오고 갓길엔 주차한 차들이 가득했다. 삼성동 카페에서 입도 안 댄 망고빙수를 엎고 T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엎은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테이크 아웃 컵뚜껑의 동그란 구멍으로 얄밉게 꿀렁...꿀렁... 나오는 커피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그저~ 속만 태우고 있지~

 번거로워도 가방을 다 내리고 커피를 의자에 올렸어야 했어.

 아니지, 그럼 더 큰 난리가 났으려나.

 왜 커피 캐리어를 가로로 놔서 관성의 법칙을 커피가 온몸으로 실현하는 꼴을 보느냐고.

 도서관은 9시에 시작하는데 도서관 매점은 왜 9시 30분에 시작해서 들고갈 짐도 많은데 커피를 외부에서 사가게 하냔 말이지.


 언덕배기에 있는 도서관을 향한 오르막길 전에 마지막 수습의 기회를 놓칠 수 없어 필사적으로 일렬주차를 시도했다. 체감상으로는 거의 반은 쏟은 줄 알았는데 뜨아는 거의 피해가 없었고 아아도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았다. 그에 비해 깔판은 제대로 모닝커피 맛을 본 모양을 하고 있었다. 트렁크에 남편이 넣어둔 차 닦던 수건으로 꾹꾹 눌러 닦았다. 이렇게만 해도 되는 건가...

 

 그날 밤,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마누라 차의 내부청소를 해주는 남편에게 커피 유출 사건을 얘기했다. 뒷수습 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서... 그런데 말하기 무섭게 얼른 시선을 TV에 고정하고는 알아서 하란다. 알아서 하라고? 네, 알아서 할게요.

 더이상은 뭘 안 해도 될 것 같아. 자국이야 남았지만 커피 방향제보다 훨씬 좋은 냄새가 나거든. 좀 찜찜하기야 하지만, 라떼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지 뭐.

 

 조만간에 조수석에 꼭 남편을 태우고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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