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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희 Feb 27. 2022

우울은 우리 친구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나는 한동안 상당히 우울했다. 20대 초중반을 우울과 함께 보내다가 강아지를 데려온 후로 많이 좋아졌다. 그래도 우울감은 수시로 덮친다. 작년에는 유독 심했다. 


철분제를 먹어도 회복되지 않는 빈혈 때문에 갈수록 심해지는 무기력증. 하기 싫은 일을 월급이 따박따박 나온다는 이유로 계속 했고. 엄마가 돌아가신 뒤 엄마처럼 죽게 될까봐 걱정이 커졌다. 당시는 우울감이 꽤 심했다. 너무 힘들어서 위로 받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까지 썼었다. 


< 모든 일에 의욕이 없어졌습니다.

 엄마가 50대 중반에 다낭신으로 간에 낭종이 너무 커져서

 배가 정말 너무 커진 상태로 마지막까지 괴로워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복부 불편감으로 바로 눕지 못해서 병실 침대를 세우고 앉은 상태로

 아프다고, 아프다고 저한테 계속 짜증을 내시다가

 진통제맞고 좀 잠잠해지셨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이게 제 트라우마가 된 거 같아요.

 마치 제 미래인양 느껴져서.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고,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간절합니다.

 50대에 죽는 건 괜찮은데,

 엄마 같은 외양으로, 엄마처럼 고통스러워하다가 죽고 싶진 않습니다.


 일 끝나고 집에 가면 거의 누워 있습니다.

 체력이 안 좋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몸에 무리가 갈까봐서요.

 사는 게, 무언가 다른 것을 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엄마처럼 되지 않는 데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거 같아서.

 혹시라도 체력이 소모될 만한 다른 일은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


 많은 분들이 따뜻한 댓글을 달아주셨고, 댓글을 읽으며 힘을 냈다. 댓글의 응원을 받아서 몸 관리도 더 신경 쓰고, 하기 싫은 일은 그만 뒀다. 댓글들은 내가 우울에서 행복으로 향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지금도 우울할 때는 그곳의 댓글을 읽는다. 

 다낭신뿐만 아니라 딱히 치료법이 없는 질병을 앓고 계신 많은 분이 미래를 생각하면 우울해질 것이다. 나도 그렇다. 10년 뒤를 생각하면, 곧바로 엄마가 그 나이 때 어땠던가를 떠올린다. 내가 올해 38, 10년 뒤면 48. 엄마가 48살 때는 이미 투석을 시작한지 몇 해가 흘렀었고, 배가 7, 8개월 임신부처럼 나와있었다. 내가 엄마의 증상보다 더하거나 덜할 거라고 생각하면 그 길로 우울의 늪으로 빠지는 거다. 


 미래를 생각하지 말자. 지금을 생각하자. 지금, 오늘 하루를 생각하자. 오늘 내 몸은 좋은 편이다. 하혈을 하지도 않고, 배가 아프지도 않다. 열도 나지 않고 무기력증 때문에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지경도 아니다. 집밖에서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고, 거실 창으로는 햇빛이 한가득 내리쬐고 있다. 저쪽 의자 위에는 하얀 고양이 둥실이가 코를 골면서 자고 있다. 현관에서 황색 강아지 강희가 코고는 소리가 방 안까지 들린다. 심심했는지 삼색 고양이 달이가 타박타박 발걸음 소리를 내며 방안으로 들어온다. 지금, 여기가 천국인데 왜 미래를 생각하는가. 


 나와 다른 환우분들도 분명 계실 것이다. 다낭신 따위 신경도 안 쓰고 열심히 커리어를 쌓고, 열정적으로 사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분께는 정말 멋있다고, 말해 드리고 싶다. 나는 슬프게도 멋진 축에는 들지 못한다. 분명 나처럼 멋진 축에 들지 못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런 분들은 나처럼, 우리처럼 우울을 벗삼아 불안한 미래보다 지금, 여기를 천국에 더 가깝게 만들고자 애쓰면서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살자. 그렇게 살아도 괜찮더라. 그렇게 사는 우리 집 하얀 고양이 둥실이, 황색 강아지 강희, 삼색 고양이 달이 모두 사랑스럽기 이를 데 없는 존재다. 우리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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