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이유는
첫번째보다 몇배는 더 힘들었던 두번째 마라톤을 마치고, 나는 뉴욕마라톤 메달을 두개나 가진 사람이 되었다.
작년에 비해 개인적인 악재가 많았던 해라서 준비과정이 정말 힘들었고, 기권할까도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이번 마라톤을 포기하면 다시는 마라톤에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을것같아 강행했다. 올해 내가 마라톤을 못 뛸 이유는 내년에도 후년에도… 언제나 나를 따라다닐 것이기에. 넘고싶었다 이 벽을.
마라톤 100명이 뛰면 100개의 드라마가 생기고, 두번 뛰면 두번 다 사연이 빼곡하게 생기는 법. 이번에도 눈물 콧물 쏙 빼는 코스 경험담을 장황하게 쓰다가 저만치 치워버렸다.
기,승,전 까지는 아주 눈물겹게 스토리 전개가 되었는데, 그래서 어쨌다고요?? 기가막힌 ”결“이 없는것이다.
이렇게 피땀눈물 쏟아가며 42.195km를 뛰었으면 뭔가 대단한 한방을 날릴 마지막 문장이 나와야 하는데, 없다 그런거 전혀.
마라톤이라는 거리에 처음 도전했던 작년,
대회를 마치고 비 러너인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기분이 어때?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아?”
그런데 의외로 나는 그 물음에 답하지 못하고 어물쩍 넘어가야만 했다. 나도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달라진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마라톤 한번 뛴다고 인생 달라지는거 하나 없더라
여전히 속썩이는 것들은 속썩이고, 스트레스도 여전하고, 안 풀리는 일은 여전히 안 풀리고 그냥 그렇다.
풀코스 한번 뛰었으니 하프같은건 껌인가 하면 또 그것도 아니고,
의외로 지병도 그대로 있다…
아니 마라톤 같은거 한번 뛰었으면
한겨울에 냉수로 목욕해도 감기도 안 걸리는 몸으로 완전히 새로 태어나야되는거 아닌가?
마라톤을 완주할 정도의 정신력이면 내일 당장 사업을 시작해서 테슬라같은 기업으로 성장시킬만큼의 역량이 신내림처럼 나한테 팍 내려와 꽃혀야되는거 아닌가?
아니더라…
여전히 나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안 먹으면 배가 고프고,
싫은소리 들으면 싫고,
살기위해 해결해야할 문제들은 여전히 그대로 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톤을 뛴다.
나는 아마도 내년에도 마라톤을 뛸 것이다.
내 인생에 달라지는게 하나 없어도 말이다.
왜냐하면 마라톤이란 것은
내 인생이 너무 고달프고 힘들때, 내 앞에 놓인 벽을 깨트릴 단 하나의 도구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나 자신임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는 42.195km의 여정이기 때문에.
마라톤 한번 뛴다고 인생이 저절로 바뀌는건 아니더라도,
꼭 바꿔야 할 어느 순간이 내게 온다면
그 열쇠는 다른 어떤것도 아닌 나 자신임을
그리고 나는 그게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음을
스스로 잊지 않고 새기기 위한 26.2마일의 고통임을 알기에.
그리고 나는 또 다시
출발선으로 갈 것이다.
마라톤은 바로 여기
피니쉬라인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