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담 Oct 19. 2023

달리기 하더니 날씬해졌네? 의 오류

달리기와 다이어트

달리기 하더니 살 많이 빠졌네!
나도 달리기를 해야 할까 봐!!


요즘 나를 보는 사람들마다 하는 말이다. 내가 봐도 살이 많이 빠지긴 빠졌다. 눈으로 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6개월 만에 9kg(20파운드)이나 빠졌다. 물론 이걸 "빠졌다"라고 안이하게 말하면 안 된다. 15파운드를 빼기 위해 독하게 다이어트를 했기 때문.



15파운드까지는 약 3개월에 걸쳐 다이어트를 강행해서 뺐다. 지난겨울에 급격히 살이 찌면서 평소 130파운드 정도였던 몸무게가 140파운드를 찍었다. 이래서야 마라톤은 출발도 하기 전에 관절염으로 병원신세를 지겠다 싶을 만큼 몸이 무거우니 살을 먼저 빼야 했다. 마라톤은 당일날 42.195km를 뛰는 것도 뛰는 거지만, 16주에 걸친 훈련 기간 중 일주일에 40km 이상씩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발목과 무릎이 작살나기 전에 살을 작살내자는 각오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달리기 하면 살은 저절로 빠지는 거 아닌가요?

놀랍게도 나는 달리기를 3년 동안 했는데, 3년 동안 꾸준히 살이 쪘다 ;; 하지만 이에 대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체지방은 줄고 근육이 늘어서 그런 거다"라는 달콤한 말을 해주었기 때문에 그거에 꼴딱 속았다. 물론 어느 정도는 체지방이 줄었겠지만 달리기는 생각만큼 근육이 느는 운동이 아니다. 



그래도 느는 사람은 늘 것이다. 나는 평생을 운동을 안 했으니 근육량이 0에 가까워서 그나마 달리기라도 (초반엔 10분 뛰는 게 고작이었지만) 하면 안 하는 것보다는 백 번 천 번 나았다.

하지만!

나는 운동은 하지 않았지만 가사노동과 육아를 전투적으로 해온 사람이라서 생각보다 그렇게 근육이 아예 없는 순살은 아니었던 것이다 ㅠㅠ 

그런데 달리기를 했답시고 피곤하다고 하루종일 누워있고, '달리기는 탄수화물이 연료랬어' 하며 고봉밥을 먹고 과자도 먹고, 달리기는 30분 했는데 이만한 크림빵을 앉은자리에서 순삭하고 피자도 먹고 그랬으니.... 



이게 바로 한우에 마블링 만드는 비법이 아니던가!! 운동과 폭식을 반복해 살진 송아지를 만드는 바로 그것!!!



그렇게 나는 운동을 하면 할수록 건강한 돼지로 거듭나고 있었다. 




다이어트는 식이



여기서 문제. 다음 중 누가 더 살이 빠질 확률이 더 높을까요?

1. 운동은 하나도 안 하고 건강하게 저칼로리로 먹는 사람

2. 운동을 미친 듯이 하고 음식은 정크푸드로 폭식하는 사람



안타깝게도 정답은 1번이다. 아무리 그래도 운동량이 먹는 양보다 많으면 당연히 살이 빠지는 거 아닌가? 무슨 말을 저렇게 해. 싶겠지만

놀랍게도 현대사회의 음식은 너무나도 최첨단 초호화 고칼로리로 진화해 버려서 운동량 > 식사량을 만들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생각보다 운동의 칼로리 소모량이 적다는 것도 문제다.




마라톤 풀코스 한번 뛰면 살이 얼마나 빠질까?



마라톤 풀코스라고 하면 정말이지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지난주에 32km를 처음으로 뛰어보니 더더욱 그 아득함이 뼛속까지 스며온다. 그럼 차로 가도 한참은 가야 되는 이 거리를 두 발로 뛰어서 완주하면 살은 얼마나 빠질까?



많은 러너들의 경험에 의하면 마라톤 완주 후 3일 후에 약 3kg이 훅 빠진다고 한다. 

오!! 그러면 마라톤 3번만 뛰면 10kg는 그냥 훅 빠지겠다는 계산이 나오지만, 아니올시다. 

마라톤 완주 후에 빠지는 3kg은 달리면서 쌓인 노폐물과 파괴된 신체조직이 빠져나간 분량이고 정상적인 리커버리를 해주면 어느 정도 돌아온다. 아마도 1kg 정도는 돌아오지 않고 순수하게 체지방이 빠질 수도 있다. 어니까지나 "수도"있다.




왜냐,

달리기의 칼로리 소모는 개개인의 근육량과 체격조건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대략적으로 1마일에 100칼로리로 계산하면 얼추 맞는다. 마라톤 42.195km는 마일로 환산하면 26.2마일. 칼로리 소모량은 2620 되겠다. 




그럼 체지방 1kg을 소모하는데 필요한 운동량은? 

이것도 개인차가 있지만 통상적으로 7700 칼로리라고 한다. 

마라톤 풀코스를 한번 뛰어도, 7700의 절반도 소모하지 못하니 다이어트에 있어서 운동이라는 게 얼마나 보잘것이 없단 말인가. 

게다가 마라톤을 맹물만 마시면서 뛰는 사람은 없고 아무리 못해도 100칼로리짜리 젤을 6개 정도는 먹을 테니 2620에서 600은 다시 빼야 된다.



일상생활에서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것 만으로 다이어트를 한다는 가정 하에, 한 달에 2Kg을 빼려면 한 달에 154마일(254km)을 뛰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루에 10km씩 뛰어도 일주일에 하루 빼고 매일 뛰어야 한다. "물론 아침에 10km 뛰었으니 조금은 더 먹어도 되겠지"의 유혹에 전혀 넘어가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2kg을 뺄 수 있다. 



익스트림 스포츠의 최고봉인 마라톤이 이지경이니, '먹을 거 다 먹으면서 살 빼는 법'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 거짓말인지를 알 수 있다.




그래도 러너들은 다 살 빠지던데?


오랜 기간 달리기를 해온 사람들은 체격을 딱 보면 알 수 있다. 러너 특유의 체형이 있다. 크게 부푼 근육은 없지만 몸이 단단한 느낌을 주고, 사지가 가느다란 것이 특징이다. 의외로 달리기는 다리운동이지만 팔에서도 살이 많이 빠지는 반면, 다리를 쓰는 것에 비해 겉으로 보이는 근육은 없다.



그렇다면 이런 암담한 칼로리 계산 결과에서 어떻게들 살이 빠진 것일까? 




달리기로 살 빼는 법을 검색하면 많이 나온다. 

그냥 달리기로는 안되고 인터벌을 해야 한다, 공복에 뛰어야 된다, 아니다 약간의 탄수화물이 없으면 체지방 분해가 안된다, 무산소 영역은 안된다, 아니다 애초에 걷기가 달리기보다 체지방 분해에는 효과적이다 등등 별별 소리가 다 나온다.



하지만 이 모든 내용을 종합해 봤을 때, 달리기로 살이 빠지는 메커니즘은 꾸준한 달리기로 인한 체질의 변화다.



유의미한 거리를, 꾸준히, 오랜 기간에 걸쳐 뛰다 보면 체질이 변한다.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전혀 체질의 변화를 느끼지 않는다면 유의미한 거리인지, 꾸준한지, 충분히 오랜 기간 달리기를 해왔는지를 점검해 봐야 된다. 내 경우엔 일주일에 3번씩(꾸준히), 3년 동안(오랜 기간) 했는데도 체질 변화가 크지 않았는데 거리가 부족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체질이 변한다는 것은 혈압과 당뇨가 정상수치로 돌아가고 수족냉증이 없어지는 등 뻔한 것들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가장 큰 특징은 입맛이 변하는 거였다. 나는 달콤한 디저트라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이었는데 놀랍게도 마라톤 훈련을 시작한 후 단것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 어쩌다 설탕이 과하게 들어간 디저트를 왕창 먹으면 소위 말하는 슈가쇼크가 와서 심장이 뛰고 속이 울렁거려 당장 달리기를 하고 싶어 진다.



마라톤 같은 특정한 목표를 두고 촘촘히 짜인 훈련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생활습관에도 영향을 미친다. 단적으로 토요일에는 장거리 훈련을 하기 때문에 술과 야식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금요일을 경건(?)하게 보내게 되는 효과가 있다. 마라톤 훈련 한 번에 16주, 금요일 폭식을 16번 피하게 되면 여기서 오는 칼로리 차이도 크다고 볼 수 있다. 

금요일 말고도 매일같이 피곤해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지기 일쑤니 야식을 먹을 틈이 없는 것도 한몫한다.



그러니 결국은

달리기를 해서 살이 빠졌다기보다는

달리기를 하면서 살 빠지는 체질과 생활습관을 갖게 되었다. 가 맞겠다.




그냥 달리기로는 안되고 인터벌을 해야 한다, 공복에 뛰어야 된다, 아니다 약간의 탄수화물이 없으면 체지방 분해가 안된다, 무산소 영역은 안된다 등등 인터넷에 나와있는 말도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기초 체력 없이 그냥 달리기도 아닌 인터벌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러너라면 누구나 공복에 뛸 것이고, 웬만큼의 거리를 뛰는 장거리 러너라면 탄수화물(젤)도 당연히 먹고 시작한다. 무산소 영역이 되지 않게 뛰어야 오래 뛸 수 있는 것도 상식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뛴다. 

결국은 달리기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의 모든 것이 다이어트에 직결된다.






달리기는 내가 한참 빠져있는 스포츠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참 좋은 취미다. 평생 갖고 갈 취미로 이만한 게 없다고 주변에도 권하고 다닌다. 

혼자라면 혼자서, 친구들과 함께하면 함께 할 수 있다. 스키처럼 특정한 계절에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전거처럼 고가의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등산처럼 산에 가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산이 있으면 산에서 뛰면 되고(트레일 러닝), 맨땅밖에 없으면 맨땅에서 뛰면 되고, 바닷가라면 풍경을 즐기면서 뛰면 된다. 



현대인의 평생의 숙제라는 다이어트에도 성공하고, 지갑 사정은 좀 너덜 해졌지만 평소에 입던 옷이 하나도 안 맞네~~ 하는 푸념 같은 말을 하는데 입꼬리는 활짝 올라가서 누가 봐도 꼴불견이지만 건강면에서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생겼다. 





달리기 하더니 살 많이 빠졌네!
나도 달리기 해야 할까 봐~~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에게

망설임 없이 권한다. 



맞아!

달리기 진짜 좋아. 달려~!

그리고 인생에서 한 번은 꼭 뉴욕 마라톤을 뛰어봐!!



평생 운동치 몸치로 살아온 여자의

인생 첫 마라톤 도전기 [인생에서 한 번은 뉴욕마라톤을 뛰자] 매거진에서 만나보세요 :)

https://brunch.co.kr/magazine/nycm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의 모든 감정을 한 번에 느끼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