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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Nov 17. 2023

인생에서 한 번은 뉴욕 마라톤을 뛰자 3 - 완주



출발,
스태튼 아일랜드 베라자노 브리지


당연한 거지만 베라자노 브리지는 다리이기 때문에 가운데가 볼록하게 올라가 있어서 초반은 급경사 오르막이다. 그리고 정말 많은 친구들과 달리기 선배들이 "초반에 흥분하면 망한다"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흥분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급경사 오르막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몸이 가볍고 자꾸만 속도가 났다. 

뉴욕시티 마라톤 코스는 초반 하프는 지형이 평이한데 비해 후반 하프가 정말 험하기 때문에 초반에 속도를 냈다가는 후반을 아예 뛰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기관지 천식도 있는 상태라서 이번에 목표했던 9분 30초/마일 속도를 포기하고 10분/마일 속도로 뛰기로 결심했는데 자꾸만 더 빨라진다. 특히나 다리를 절반 건넌 후 내리막이 시작된 시점에서는 8분 30초까지 속도가 올라가 버렸다. "먼 길 가는데 서두르면 안 된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속도를 조절해 브루클린으로 들어왔다. 





브루클린,
세계여행




브루클린으로 들어오면서부터는 엄청난 인파가 거리에서 맞이해 주었다. 나는 운동을 평생 안 해온 것뿐 아니라 스포츠 자체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으로서 남이 운동하는 걸 구경하는 게 재미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런데 막상 구경을 해보면 마라톤 구경만큼 재미있는 게 또 없다. 특정한 선수나 친구를 응원해도 실제로 코스에서 그 사람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몇 초 되지 않는데도 그게 그렇게 재밌다. 그냥 모르는 사람을 아무 조건 없이 응원하고 환호하고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주자가 되어 그 응원을 받는다. 살면서 이렇게 큰 환호를 받아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뜨겁게 맞이해 준다. 




특히 새로운 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웰컴 투 어디 어디"라는 팻말을 들고 환영해 준다. 스태튼 아일랜드를 출발해 내가 살고 있는 브루클린으로 들어왔을 때 "웰컴 투 브루클린"이라는 팻말을 보니 정말 반갑고 기뻤다. 물론 이것도 초반이니까 반갑고 기쁜데, 브루클린, 퀸즈를 지나 "웰컴 투 더 브롱스"라는 팻말까지 가면 왜 아직도 브롱스밖에 안 됐는가!! 싶어서 억장이 무너진다는 건 안 비밀....




사실 뉴욕의 5개 구를 다 통과한다고는 하지만 브루클린과 맨해튼이 압도적으로 길다. 브루클린은 남단인 베이릿지부터 북단 윌리엄스버그까지를 쭉 통과하는데 히스패닉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베이릿지에서는 스페인어로 된 사인을 들고 너도나도 바모스를 외쳐주었다. 그게 영어로 바뀌었다가 유대어로 된 사인이 눈에 띄는 윌리엄스버그까지, 세계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달렸다.




브루클린은 뉴욕에서 가장 지대가 낮고 평평한 구간이라서 정말 쉽게 뛰었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기운이 넘치기도 했고, 평소 내가 다니던 익숙한 길이라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7마일 지점에는 우리 런클럽의 응원단도 나와있어서 더더욱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브루클린을 통과했다. 초등학생인 내 딸과 친구들이 귀여운 사인까지 만들어 들고 나와 응원해 주었다. 



여기부터는 각기 다른 위치에서 출발한 다른 컬러 그룹이 하나의 코스로 합쳐지는 구간이라 같은 팀 유니폼을 입은 멤버들도 많이 보였다. 나와 같은 속도로 훈련했던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 둘 나를 제치고 앞으로 나가는 걸 보면서 천식만 아니었어도!! 하는 생각에 많이 억울했다.



"하프마라톤 두 번 뛰는 거 아니야. 풀 마라톤이라고" 했던 친구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속도를 너무 내지 않고 무사히 완주하는 것에 집중했다. 16주 마라톤 훈련을 마친 지금은 하프마라톤은 "내일 뛸까?" 하면 내일 뛸 수 있는 체력을 갖게 되었지만 하프마라톤을 두 번 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 마라톤이 아니던가. 게다가 나는 20마일(32km) 너머는 가본 적도 없다. 

20마일을 뛰던 날에 느꼈던 여러 가지 증상들 (온갖 신체 부위의 통증, 어지러움, 구역 등등)을 이미 알고 있는 터라 더더욱 긴장감을 가지고 속도를 과도하게 내지 않도록 주의하며 브루클린을 지나 퀸즈로 넘어가는 다리 위에서 하프 지점 표식을 통과했다.






퀸즈,
마의 퀸즈보로 브리지


(왼쪽) 하프 지점 통과 / (오른쪽) 마의 퀸즈보로 브릿지



하프 지점을 통과한 후로는 뉴욕시티 마라톤 마의 후반 하프가 시작된다. 모든 코치와 선배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할 수 있다면 후반 하프에서 속도를 높여라"였지만 막상 뛰어보니 "할 수 있다면"이 아니었다. 지형이 험한 후반 하프는 그냥 뛰기에도 힘이 부치는 코스인데 이미 20Km 이상 뛴 상태에서 도저히 속도를 높일 수가 없었다. 여기부터는 걷는 사람이 늘어나고, 메디컬 스태프에게 실려나가는 사람, 코스 한편에서 토하는 사람 등 부상자가 속출한다. 



웰컴 투 퀸즈 사인을 보며 퀸즈 속 신도시라고도 하는 롱아일랜드 시티를 달리고 있노라니 서울 생각이 많이 났다. 미국으로 온 지 10년이 넘은 내 기억 속 종로가 이런 모습이었지 싶은 롱아일랜드 시티를 지나 다시 한번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 뉴욕 마라톤 마의 구간이라고 불리는 퀸즈보로 브리지로 올라갔다. 



퀸즈보로 브리지는 퀸즈에서 맨해튼을 연결하는 다리인데 일단 거리가 길고, 당연히 이것도 다리라서 가운데가 볼록하다. 이미 지친 상태에서 상당한 부담을 주는 경사였다. 또 하나의 장벽은 이 다리도 2층으로 되어있는데 모든 러너가 아래층으로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GPS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현재 내가 뛰고 있는 페이스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로 건너야 한다. 그래서 주최 측에서는 이 다리를 10등분 해서 각 지점마다 표식을 붙여둔다. 오로지 거리감각과 시계에 찍히는 "시간"만 보고 달려야 하는 구간이다. 다리 위에는 구경꾼이 없고 러너들만 있어서 굉장히 조용했던 기억이 난다. 출발하면서 건넜던 베라자노 브리지에서는 서로서로 파이팅을 외치며 응원을 주고받던 러너들도 이제는 침묵을 지킨다. 신체적으로 굉장히 힘들고, GPS 시계의 페이스를 못 보는 상태로 달려야 한다는 점에서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든 구간이었다. 왜들 이 다리를 마의 구간이라고 부르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다리를 10개 구간으로 나눠 붙여둔 표식이 5를 지나면서 당연히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반가워야 할 내리막이지만 여기부터는 발목과 무릎이 많이 아프기 시작해서 내리막이 달갑지 않았다. 대회 전에 들었던 마라톤 심리 코치의 강의에서 "너무 힘에 부칠 때는 자기의 이름을 불러가며 구체적으로 북돋워라"는 내용이 생각났다. 무릎을 높이 들어라, 킥백을 힘차게 해라, 이제 10마일 남았다 등등 구체적인 주문을 스스로에게 하는데, 반드시 자기 이름을 넣어서 스스로에게 말해야 효과가 크다고 했다. 

이 다리를 건너고 나면 라스트 10마일이다. 지난주에 팀원들과 함께 뛰었던 라스트 10마일 바로 그 코스다. 나도 여기서 너무 힘에 부치고 많이 아파서 이름을 넣어서 "친구들과 함께 뛰었던 10마일이다! 아는 길이다! 못할 것 없다!"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넣었는데 거기서 많이 울컥해서 조금 눈물이 날 뻔했다. 




출산의 경험이 의외로 크게 도움이(?) 되었다. 

출산을 하다 보면 아프기도 하고 힘들어서 눈물이 나는데 그때 간호사가 "울면 힘이 빠져서 안 돼요"라고 계속 말해준다. 일단 눈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몸에서 힘이 빠진다는 건 사실이다.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다리의 마지막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오면 맨해튼이다. 조용했던 코스에 갑자기 구경꾼들의 함성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낸다. 




마라톤은 스스로와의 싸움이고 혼자 떠나는 먼 길이다. 그렇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날 퀸즈보로 브리지에서 내려와 맨해튼에서 처음 받은 그 열렬한 응원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마라톤은 스스로와의 싸움이고 홀로 하는 외로운 경기지만, 일면식도 없었던 생판 남인 (심지어 외국인인) 사람들의 응원이 이렇게나 큰 힘이 될 줄은 몰랐다.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던 힘을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내주는 놀라운 마력이 있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맨해튼을 북상해 브롱스로 향했다.




브롱스,
마지막 퍼킹 브리지


브롱스는 도로가 넓고 러너들이 많이 지친 상태라 내 주변이 성글어져서 공간 확보가 쉬워 달리기는 편안했다. 발목, 무릎, 고관절 등 다리에 있는 관절이 아픈 것은 당연했고 팔과 등까지 아팠지만 이제는 달려온 거리보다 남은 거리가 훨씬 짧다는 생각이 큰 위안이 되었다. 



이번 대회 때는 이상하게 목마름을 많이 느꼈다. 코스에서 물을 잘 마시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거의 모든 급수대에서 물을 마셨다. 정확히는 한 번은 물, 그다음 급수대에서는 게토레이 이런 식으로 마셨다. 달리면서 물을 마시는 멋진 프로 스킬이 나에게는 없기 때문에 물을 마실 때는 조금씩 걸었다. 한번 걸으면 다시 뛰기 힘드니 힘들면 느리게 뛰더라도 걷지는 말라는 조언도 들었는데 사실 안 그랬다. 걷는 게 뛰는 것보다 더 아파서 그냥 빨리 마시고 다시 뛰는 게 차라리 나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대회를 뛰면서 다리에 쥐가 난 적은 없었지만 마라톤 후반에 가면 쥐가 많이 난다고 해서 예방차원으로 전해질 캔디도 많이 먹었다. 



마라톤을 뛰는 중에 쥐가 나기 시작하면 한번 풀어줘도 계속 다시 난다고 들어서 겁먹은 마음에 정말 성실히 먹었다. 대회 전날에 카보로딩이라고 해서 탄수화물을 충분히 먹어야 해서 전날부터 밥, 빵, 면을 많이도 먹었다. 거기에 전해질 캔디를 틈틈이 먹고, 평소 안 마시는 게토레이도 마시니 속이 달아서 이제 탄수화물은 그만 먹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충분한 에너지 공급이 되지 않으면 몸이 거리를 버티지 못할 테니 연료 주입이라는 생각으로 먹었다.



거기에 젤도 5마일마다 한 개씩 먹었다. 코스에서 물과 함께 젤도 주는데 나는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어서 바리바리 그걸 들고뛰었다. 처음엔 부피가 꽤 되어서 짐스러웠던 젤도 이제는 다 먹고 마지막 한 개를 먹을 무렵, "라스트 퍼킹 브리지"라는 사인을 보고 잠시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찾고 그렇게 다시 맨해튼으로 들어오면 피니쉬가 코앞이다.





다시 맨해튼,
센트럴파크



브롱스에 가기 위해 북상했던 맨해튼을 이제 다시 남하해 센트럴파크로 들어간다. 거기부터는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러너들도 다시금 에너지를 되찾고, 마지막으로 힘을 내는 러너들을 구경하기 위한 응원 인파도 상당하다. 너나 할 것 없이 열광의 도가니다. 



하지만 잊으면 안 된다. 센트럴파크는 바위산이었다는 사실을...



바위산을 폭파시켜 공원으로 조성한 센트럴파크는 급경사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센트럴파크에서 하는 10K 대회만 뛰어도 정말 힘들다. 이미 40km 가까이 뛴 다리로 그 오르막과 내리막을 뛰려니 정말 힘에 부쳤다. 시계를 보니 내가 생각했던 시간보다 한참이나 뒤처져 있어서 조금이라도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스퍼트를 하고 싶었지만 힘든 것보다 너무나 아팠다.



신기하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내내 숨이 찬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내 페이스보다 느리게 뛰었기 때문이다. 40km 표식을 지나고 나면 남은 거리는 2km 남짓이니 있는 힘을 다해 스퍼트 해볼 생각이 들었다. 숨도 차지 않았고, 에너지도 남아있었다. 문제는 너무 아팠던 것이다. 발바닥에는 진작부터 물집이 잡힌 게 느껴졌고, 평소 달리면서 느껴본 적이 없는 부위의 통증도 있었다. 달리기라는 게 쓰는 근육이 정해져 있고 내가 그걸 알고 있는데 '어? 이런 부분이 아파?' 싶을 만큼 신박한 부위까지 근육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행이었던 점은 20마일 달리기 때 느꼈던 어지러움과 구역감이 없었다는 점. 

일정 거리를 지나고 나면 온몸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몸을 움직이려야 움직일 수 없다는 "봉킹"도 없이, 늠름한 콜럼버스 서클의 조각상 앞을 지나 마지막 구간으로 들어갔다.





센트럴파크가 이렇게나 멀었나 싶을 만큼 긴 여정이었다. 꼭두새벽에 버스를 탔던 게 오늘인지 어제인지 분간이 안 갈 만큼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콜럼버스 서클을 통과해 파크 안으로 들어가면 800m, 700m, 600m 하는 식으로 촘촘한 거리 표식이 있다.



사실 피니쉬가 다가오면 정말 많이 짜증이 난다. 몸이 지쳐서 그렇다. 나는 빨리 이걸 끝내고 싶은데 응원하는 사람들이 코스로 밀고 들어와 길은 좁고, 막상 물리적으로 속도를 더 낼 수도 없는데 그게 마치 사람들 탓인 양  화가 난다. 앞에 가는 사람이 나보다 느린 것도 아닌데 너 때문에 내가 못 가잖아!! 하며 화가 나기도 하고, "거의 다 왔어!!"라는 응원의 말에 "누가 몰라???" 하고 윽박지르고 싶을 만큼 화가 난다. 어쨌든 빨리 이걸 끝내고 싶고, 어디라도 앉고 싶다... 



400m, 300m, 200m... 그리고 저 앞에 전자시계가 달린 피니쉬라인이 보인다. 비록 마지막 몇 킬로는 인성이 파탄난 상태로 뛰었을지언정 마지막엔 웃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통과.



4시간 30분 47초의 기록으로 생애 첫 마라톤을 마쳤다. 



기묘하게 부풀어 오른 허벅지를 손으로 살살 풀고, 당장 어디라도 앉고 싶었지만 절대 앉지 말고 계속 움직이라는 진행요원들의 유도에 따라 계속 걸었다. 대회가 대회인 만큼 끝난 후에 주는 얇은 은박지(힛시트)가 아닌 보드라운 플리스 안감이 대어진 판초를 받았다. 갑자기 온몸이 덜덜 떨릴 만큼 추워서 얼른 판초를 입고, 리커버리 백을 받아 게토레이를 원샷하고 물도 그 자리에서 다 마셨다. 코스 내내 정말 목이 말랐다. 맘껏 물을 마시면 배가 출렁거려 뛰기 힘들 것 같아 조금씩만 마셨던 물을 원 없이 들이켜고 나니 살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직후에 내 앞에 가던 어느 여자 러너가 주황색 물을 쫙 토해내는 걸 보고 (주황색 게토레이임에 틀림없었다) 갑자기 또 겁이 났다 ;; 



사진으로만 보던 메달을 드디어 받아 드니 생각보다 묵직해서 놀랐다. 혹여 떨어트려 잃어버리기라도 할세라 목에 단단히 걸고, 계속 움직이라는 진행요원들의 소리침을 들으며 공원 출구 쪽을 향해 걷고 있으니 팀원이 나를 붙잡는다. 코스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은 팀원이 지나가면 더없이 반갑다. 잘 모르는 멤버여도 그렇다. 피니쉬 후에 만나는 팀원은 더더욱 반가웠다. 

보자마자 친구가 한마디 한다.

"너 왜 이렇게 멀쩡해?"




One and only?
First of many!


평생 받을 만큼의 환영과 응원을 다 받으며 지나온 42.195Km였는데, 피니쉬 후 클럽 리커버리존에 들어가니 지금까지 받았던 것보다 몇 배는 더 뜨거운 환영의 박수를 쳐준다. 피니쉬라인을 지날 때는 울지 않았지만 여기서 눈물샘이 터진다. 



함께 훈련해 온 친구들이라서, 뜨거운 뉴욕의 여름을 함께 달려온 동료들이라서,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아는 멤버들이라서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첫 마라톤 완주를 축하해!
그래서 다음 마라톤은 언제 뛸 거야?


언제긴! 내년 뉴욕마라톤이지!!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달려온 26.2마일/ 42.195km 

평생에 한 번은 뛰어보자! 에서 

앞으로 따라올 수많은 마라톤 중 첫 번째! 가 된

나의 뜨거웠던 하루.

때로는 힘들고 아팠지만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울고 웃었기에 즐거웠던 3년 3,200km.

때로는 뙤약볕 아래를, 때로는 폭우 속을 함께 달렸던 16주의 훈련.




이 이야기는 "빛나는 메달을 받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로 여기서 끝나는게 아닌,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앞으로 내가 달릴 수 많은 마라톤의 이야기가. 바로 여기 뉴욕마라톤의 피니쉬라인에서.





평생 운동치 몸치로 살아온 여자의

인생 첫 마라톤 도전기 [인생에서 한 번은 뉴욕마라톤을 뛰자] 매거진에서 만나보세요 :)

https://brunch.co.kr/magazine/ny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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