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원장님은 내가 처음 상담 전화를 했을 때 아이와 함께 오라고 했다. 먼저 혼자서 어린이집을 방문해 보고 싶었던 나는 아주 잠깐 몇 초의 숨을 돌리고, 아이와 함께 가겠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외출은 챙겨야 할 물건도 두 배, 시간도 두 배로 걸렸다. 아이와 함께면 원장님과 대화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핸드폰 건너 느껴지는 원장님의 자신감을 믿기로 했다.
“우리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보내시면 후회하시는 일, 절대 없을 거예요. 와 보시면 마음에 드실 겁니다.”
새 어린이집은 장애통합 어린이집이다.
나는 불안정한 현 어린이집 특수반을 가느니, 정말로 꼬달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설과 교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제 그만, 걱정과 고민을 끝내는 결단이 필요했다.
어린이집 상담을 가던 날, 우리 꼬달이를 보고 관찰했던 여러 선생님들은 특수교사들이었다. 원장님은 본인의 판단보다 선생님들을 신뢰하고 있었다. 아이가 성향이 어떤지 파악하기 위한 테스트 아닌 테스트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린이집을 찾았을 때 비어있던 자리는 특수반이 아닌 일반반 자리였다. 상담이 끝나고 원장님은 우리 꼬달이를 받아주겠다고 시원하게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심한 불안감에 아직 말문을 열지 못하고, 기저귀도 떼지 못한 우리 꼬달이는 특수반은 가야 할 아이라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내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 내년 3월에 가면 대기자 1순위라는 보장은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던 우리는 꼬달이를 받아 달라고 부탁했다.
원장님은 다른 교사들의 의견을 물었다.
“우리 어린이집으로 오면,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따뜻하게 말해주던 선생님의 말 덕분에 우린 꼬달이는 새로운 어린이집으로 등원을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이집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우리 집에서 어린이집까지 40분, 내 사무실에서 어린이집까지 40분. 등원은 남편이, 하원은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꼬달이가 적응을 못 하면 어쩌나 걱정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직감적으로 어린이집을 방문하던 날 느꼈다. 이곳에는 따뜻함이 있다는 걸. 등원하자마자 원장님께 씩씩하게 인사하는 아이들, 밝은 선생님들의 얼굴들, 어린이집 뒤로 보이는 메타세쿼이아 길까지.
꼬달이는 새로운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시작하면서 매일 종이 한 장을 받아 왔다. 꼬달이가 제일 좋아하는 자동차 그림들이 프린트된 종이였다. 아이는 그것이 마치 애착 인형이나 되는 듯 하루 종일 손에 놓지 않고 들고 다녔다. 담임선생님은 꼬달이가 자동차를 좋아하고, 그게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걸 눈치채고 매일 다른 자동차 그림을 프린트해 꼬달이에게 주었다. 이 작은 배려로 꼬달이는 어린이집에 잘 적응해 나갔다. 조금만 더 아이를 천천히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 주면 알 수 있다.
배려란 그런 것이다. 관심과 기다림.
새 어린이집은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정원 60명 정도에 일반교사 별도로 특수교사가 10명이나 있는 곳이다. 일반반과 통합 수업을 하고, 특수반은 특수교사 1명이 3명의 아이를 전담한다. 어린이집 내에서는 전문 치료사들이 있어, 별도 비용 없이 언어와 작업치료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어린이집 건물 뒤로는 산책하기 좋은 숲길이 조성되어 있어, 아이들은 매일 이곳에서 산책을 한다. 어린이집 버스를 타고 근처 산림청으로 숲 체험도 나간다. 담임은 꼼꼼하게 아이의 부족함을 체크 해 개별화 보육계획안을 만들어 지도 계획을 세운다. 꼬달이의 이번 학기 보육계획안은 도움 없이 혼자 옷 입기, 연필 잡기 연습 등이다.
육아를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세상이다.
나도 육아를 하면서 장애통합 어린이집이 있다는 걸 알았다. 발달지연, 발달장애, 감각추구 등, 세상에 있는지도 모르던 단어들이었다. 왠지 모르게 장애라는 단어가 낯설고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만나고 느낀 세상은 일반과 장애라는 두 세계만이 있었다.
세상은 일반적인 기준을 벗어나면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소수를 위한 배려는 없다. 다수에 들어간다고 해도 개개인을 위한 배려 따위는 없다.
꼬달이에게 맞는 좋은 환경을 찾아 나가야 한다. 누구도 꼬달이에게 맞는 길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보호자인 엄마가 길을 찾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지금 내가 선택해 나아가고 있는 길이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더 좋은 길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냥 묵묵히 오늘도 나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