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6개월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만나러 대학병원을 간다. 벌써 4번째 찾아가는 병원이지만, 갈 때마다 그리 마음이 가볍지 않다. 아이의 문제로 찾아가는 병원이고, 그렇다고 뚜렷하고 시원한 대안을 얻어 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 가닥 포기하지 못한 희망의 끈을 붙잡는 마음으로 병원에 가는 것이다.
서울에 유명한 대학병원은 의사를 만나기까지 1년이 넘게 걸린다. 주변에 떠도는 말처럼 아이가 다 커버린 후에나 의사를 만날 수 있는 현실. 몇 차례 병원 방문과 여러 센터 방문 경험상 단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은 없었다. 의사를 어렵게 만나도 의사의 소견은 검사를 해보자는 것. 검사일은 또 다른 날로 잡히고, 검사 결과는 또 다른 날로 예약된다. 명확한 진단 없이 시작한 치료들도 벌써 3년이 넘었다.
먼 거리와 시간은 나와 아이 모두 지치게 만들겠다 싶었다.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괜찮다는 의사를 찾아내 병원을 예약했지만, 9개월이 지나서야 의사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유명한 연예인이나 대통령 만나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소아 전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아닐지.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 머리는 복잡하다. 의사에게 6개월간 아이와 어떻게 지냈는지 할 말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오늘 아이의 컨디션은 어떤지 살피기도 한다. 어느새 병원 건물이 보이고, 다시 한번 진료 예약시간을 확인해본다.
진료실까지 가는 길도 험난하다. 병원이라면 기겁을 하는 아이를 억지로 끌고 지하주차장을 지나 1층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병원 1층에 들어오자마자 귀신이라도 홀린 듯 아이는 편의점을 향해 달린다. 빨리 장난감 하나만 고르라고 아이를 재촉하고 아이 손을 부여잡고 2층으로 올라간다.
아이의 이름이 호명되기까지 대기하는 십여 분의 시간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부산스러운 아이를 달래가면 붙잡아가며 아이의 이름이 호명되기만을 기다린다.
드디어 6개월 만에 유명인 의사 선생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의 밝은 목소리는 이 모든 상황과는 어색하다고 느끼곤 한다. 나의 마음 상태며 진료실까지 오는 과정이 수월하지 않았음을 의사는 알기나 할까.
그래도 이 분야 전문가라고 하니 마치 날 선 무당처럼 우리 아이 얼굴만 보아도 아이의 상태를 다 파악할 거라 기대하지만, 매일 만나는 아이들을 모니터 보듯 습관처럼 쳐다만 보는 건 아닌지. 단지 부모의 말에만 의존하여 간단히 상담만 하고 마는 것인지.
나도 의사의 마음을 알 길은 없지만 그래도 전문가라니까 매달려야 한다. ‘우리 아이 괜찮나요?’ 간절한 눈빛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라면서 의사는 내 눈빛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직은 나의 무릎을 딱 치는 특별한 소견도 치료는 없었다.
“아이와 눈 맞춤 잘해 주세요.”
“엄마, 아빠가 수다쟁이가 되어서, 언어 자극 많이 주세요.”
누구나 말해 줄 수 있는 평범하다 못해 수 십 번은 들었을 말들 뿐.
하지만 오늘은 의사가 다른 말을 우리에게 던진다.
“이제 올해 7세가 되니, 다음번에 오실 때는 검사를 하도록 메모에 놓겠습니다. 6개월 후에 뵙도록 하죠.”
두둥.
요즘 티비만 틀면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절대로 합격하면 안 되는 무시무시한 오디션에 우리 아이가 참가하게 된 것이다. ‘제발 떨어지게 해 주세요. 제발.’ 난 속으로 간절히 외칠뿐이다.
대학병원을 처음 찾았을 때, 다른 개인병원에서 실시한 검사지를 들고 와 의사를 만난 지 2년이 넘었다. 의사는 이제 정확한 진단을 하려는 것이다. 막연한 나의 걱정 속에 떠다니던 단어들.
발달지연, 지적장애, 자폐스펙트럼, ADHD, 경계성 등등
우리 아이는 어디에 해당되는 걸까?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꼬달이 별문제 없습니다.”
내가 의사에게 듣고 싶은 말은 이 말 뿐이라는 걸 의사는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