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생이라서요. 남자아이라서요.

by 엄달꼬달

결혼 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12월생은 또래들에게 치인다며 좋지 않다고들 했다. 그때는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쳤다. 어른들 말을 잘 들으면 딱히 나쁠 것도 없는데 항상 나한테 닥치고 나서야 후회는 밀려온다.


결혼을 하고, 계획 없던 임신으로 출산예정일이 12월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도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조금 늦게 태어나서 1월생이면 좋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그런 말들을 흘려들었다. 남편도, 나도 키가 크기 때문에 12월생이라서 또래들한테 작다고 무시받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육아의 현실이 그렇게 수월하지 않다는 걸 참 몰랐다.

그렇게 우리 꼬달이는 12월생으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며칠 후 꽁으로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 것이다. 일반적인 육아하는 기간을 10년으로 예상한다고 하면 나는 9년만 하면 된다는 계산법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처음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담임선생이 꼬달이는 한 살 어린 반 친구들이랑 잘 논다고 했을 때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 어리니 그럴 수도 있지 했다. 사회 나가면 한 살 차이는 쉽게 친구를 먹는데, 이제 겨우 3살, 결국 몇 개월 차이 나는 아이들이고, 다 친하게 지내면 좋지, 그렇게 생각했다.


꼬달이가 어렸을 때 3살 이전에는 아이의 느림을 그냥 “12월생이라서요. 남자아이라서요.” 하고 넘겨버렸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보다 발달이 느리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세상의 일반적인 상황을 들이밀려, 핑계 아닌 핑계로, 변명 아닌 변명으로 사람들의 의심을 단번에 해결해 주고는 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나이보다는 개월 수로 아이를 파악한다.

“아이 몇 개월이에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린이집을 들어가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개월 수의 단위는 사라지고

“아이 몇 살이에요?”라는 질문으로 바뀌게 된다.

요즘 나는 아이가 몇 살이냐고 질문을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받게 되면,

“5살인데요.” 하고 대답한다.


질문한 사람이 더 이상 말이 없으면 그냥 넘어가지만,

상대방이 “어? 누구 애랑 동갑인데.” 하고 말하면,

그때 서야 “아... 우리나라 나이로는 6살이에요. 12월생이라서요...”

거짓말 아닌 거짓말로 말을 흘려버린다.

나이라는 숫자 때문에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말이 느린 것도,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산만한 것도. 어리다는 이유로 그렇게 급하게 마무리가 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혹시나 모를 의심을 받을까 나 혼자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꼬달이는 6살, 58개월이 되었다. 나는 꼬달이의 느림이 2배로 느껴진다. 며칠만 늦게 태어났어도 5살인데, 6살 아이들을 기준으로 우리 아이를 비교할 세상과 만나는 것이 두렵다. 학교라는 너무나 거대한 장벽이 섬뜩섬뜩하게 느껴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내가 마흔이 되었어도 마흔의 나잇값을 온전히 다 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개인의 사정 따위는 봐주지 않는다. 나이가 되면 학교에 가야 하고, 졸업을 해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한다. 너무 늦지 않게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 다 때가 있는 것이라고. 그 나이에 맞춰 살고 있지 못하면 엄청 문제가 있고, 잘 못 살고 있다는 듯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포함해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기준을 누가 만든 것인지 그게 정말 정답인지도 의심해 보지 않는다. 나도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 나는 세상의 기준을 밖이 아니라, 안에서 찾으려 한다.


나에게 6살 아이의 발달사항의 기준은 우리 꼬달이다. 우리 아이가 기준이고, 주변 다른 아이들이 조금 빠른 거라고. 세상이 정한 발달사항 기준을 우리 아이에게 들이미는 것 의미가 없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 너무 속상해하거나, 슬퍼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중요한 건 꼬달이가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니까.


꼬달이는 이제 고작 태어나 5년 가까운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아이를 믿어야 한다. 아무리 세상이 차가운 시선으로 꼬달이를 바라본다 해도 세상에 단 한 사람은 따듯한 눈길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꼬달이가 커서 거친 세상살이를 꿋꿋하게 버틸 힘이 날 것이다. 세상의 비바람을 다 막이 주지는 못해도 잠시 숨 돌리고 쉴 수 있는 나무가 되어야 한다. 나는 꼬마달팽이 엄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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