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육아의 일상
우리의 육아도 평범했다. 새벽에 수유하느라 밤잠 못 잤고, 잠투정이 심해 안아 재우느라 손목은 늘 아팠다. 분유를 먹이면서는 트림시키느라 애먹었고, 음식 솜씨도 없지만 직접 이유식과 유아식을 만들어 먹인다고 애썼다. 돌 무렵부터는 그놈의 감기 때문에 하루가 멀다고 병원을 다녀야 했다.
하지만 나름 육아를 잘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감기는 달고 살았지만, 특별히 크게 아파 병원에 입원하는 일 한번 없었다. 뒤집기를 시작해, 걸음마를 떼는 것도 비교적 평균적인 시기에 해주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그래서 잘 크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독서와 영어를 목표로 삼았다. 어릴 적부터 독서 습관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유명 전집을 사드려 책도 많이 읽어주었다. 다행히 꼬달이는 나와 책 읽는 걸 좋아했다. 나는 평생 영어 콤플렉스를 달고 살았지만, 우리 꼬달이는 엄마하고 달랐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엄마표 영어를 시도해 보겠다며 책도 읽고, 강의도 들으면서 혼자만의 행복한 꿈을 꾸었다. 가끔 영어 노래를 틀어주는 열의에도 불탔다. 독서와 영어가 내가 꼬달이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내 목표대로 수월하게 육아가 진행되어 가고 있다고 믿었다.
불길한 예감
꼬달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담임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꼬달이는 이제 18개월이 되었고, 단순히 말이 조금 느릴 뿐.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큰 걱정 없이 상담을 하러 어린이집을 찾았다.
상담을 하면서 나는 꼬달이의 다른 모습을 알게 되었다. 물론 꼬달이가 장소에 대한 낯가림이 심하고, 오감 놀이를 싫어하는 건 알고 있었다. 식판 세 그릇을 먹어도 더 먹겠다고 떼를 쓴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커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애써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 있었다.
"어머니, 꼬달이는 이름을 불러도 잘 쳐다보지를 않아요. 눈 맞춤도 잘 안 하고요."
"그래요? 전 그게 문제인지 잘 몰랐네요. 제가 사람 눈을 잘 안 쳐다보는데, 그래서 그런 건지...... “
상담을 하고 집에 돌아온 나는 무언가 찜찜함을 느꼈다. 꼬달이의 발달사항에 대해 검색을 시작했다. ‘아... 이런...’ 눈 맞춤과 호명 반응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 서야 알게 되었다. 아직은 어리니까 엄마가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아직 말을 못 하니, 당연히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꼬달이와 놀아 줄 때도 눈 맞춤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며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금기어 ‘자폐’와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에 큰 산 앞에 놓인 듯 답답함이 밀려왔다. 아무 문제없을 거라 믿었던 완벽한 줄 알았던 나의 육아가 내가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설마 아니겠지? 설마. 아닐 거야. 우리 꼬달이는 문제없을 거야. 지금까지 잘 커 왔는데...‘
하지만 자폐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꼬달이를 보고 있자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말이 또래보다 느린 것, 자동차 놀이에만 빠져있는 모습,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쳐다보지 않는 것, 문화센터에 데리고 가면 무조건 손을 끌고 밖으로 나가자는 꼬달이의 모습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걱정은 그렇게 티끌에서 태산이 되어가고 있었다.
난 답답한 마음에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어린이집 상담을 다녀왔고, 꼬달이가 조금 걱정된다고 털어놓았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들을 거라 기대했던 나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마음이 약한 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도 걱정하고 있었다는 말을 전했다.
"왜? 나한테 말 안 한 거야. 왜? 왜?"
결국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꼬달이의 문제를 모르고 있던 나의 무지함. 사람 눈을 잘 쳐다보지 않는 나의 습관 때문에 꼬달이의 눈 맞춤이 잘 안 되는 건 내 탓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으로 나는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남편과 나는 상상의 나래 속에서 자꾸 걱정만 키워가고 있었다. 나보다 더 한숨을 푹푹 쉬며 걱정만 하는 남편을 더 지켜만 볼 수 없었다.
'그래 하루라도 빨리 꼬달이를 위한 방법을 찾아야 돼. 이대로는 안 돼. 계속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첫 병원 방문
나는 두려운 마음을 억누르며, 꼬달이를 데리고 소아정신과에 가기로 마음먹고 병원을 예약했다. 그리고 남편과 꼬달이와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
낯선 곳이라 꼬달이는 평소보다 더 산만함을 보였다. 왔다, 갔다, 앉았다, 일어났다, 병원 출입문을 나갔다, 들어왔다. 애써 카페 느낌으로 꾸며진 병원 실내는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 마음이 한겨울인데 아무것도 따뜻하게 보일리 없었다.
아이의 이름이 불려지고, 우리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한쪽에는 의사의 책상이, 반대편 창문이 있는 쪽에는 몇 가지 놀잇감이 있고, 작은 매트가 깔려 있었다. 여태껏 가본 진료실 중에 가장 넓고 안락하게 꾸며져 있었다.
의사는 10분 정도 꼬달이의 노는 모습을 보며, 꼬달이를 관찰했다. 꼬달이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자동차를 쳐다보고, 진료실에 있는 장난감을 마구 뒤지고, 의사 선생님 책상 위에 마우스를 만지려 하는 등의 모습들.
남편과 나는 의심스러운 부분에 대해 의사에게 이야기했다. 언어가 느린 것, 눈 맞춤과 호명 반응의 문제 등등
의사는 천천히 판단 소견을 말했다.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의사의 말을 경청했다.
"두 분이 평소에 걱정이 많으신가 봐요. 눈 맞춤과 호명 반응이 안된다는 것만으로 자폐라고 판단할 수 없어요. 이제 18개월인데 아직 너무 어려서 검사를 할 수도 없고요. 말 느린 것도 아직 어리기 때문에 더 지켜봐야 되고요. 저도 아이를 키우지만, 저희 아이들도 평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가 많아요. 너무 걱정 마시고, 집에서 언어 자극 많이 주세요."
남편과 나는 너무 지나치게 걱정을 했나 부끄러워하며 진료실을 나왔다.
‘우리 꼬달이는 별문제 없어, 그래, 너무 걱정을 많이 한 거야. 괜히 담임선생과 주변 사람들 때문에 예민했어.‘
병원을 찾는 건 이걸로 끝일 거라 생각했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튼튼한 벽돌로 쌓아진 줄 알았던 나의 육아는 차가운 얼음덩어리가 되어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