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꼬달이가 아무 문제없다고 해도 말이 느린 건 너무나 선명한 사실이었다. 이제 20개월이지만 엄마, 아빠밖에 말하지 못한다는 건 문제였다. 걱정이 많은 나는 그냥 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었다.
병원을 다녀온 뒤로 나는 조바심이 생겼다. 꼬달이가 말이라도 시작해야 마음이 놓일 거 같았다. 아직 이르다는 걸 알면서 아이를 데리고 발달센터 상담을 받았다. 원장 선생은 20개월부터 시작하는 아이들도 있다며 치료를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그렇게 언어치료를 시작했는데, 아직 분리불안이 심한 어린 꼬달이는 엄마와의 분리는커녕 치료실에서 내내 징징거리거나, 교실 밖으로 나가겠다고 떼만 썼다. 이 새로운 상황이 꼬달이의 마음에 들지 않아 보였다. 나도 힘들고, 꼬달이에게도 도움이 되는 거 같지 않아 결국 시작한 지 한 달만에 수업을 중단했다.
‘그래, 아직은 너무 어리구나, 24개월까지 좀 기다려 보자. 그사이에 말문이 터질 수도 있고.’
시간은 흘러만 갔고, 내가 기다리던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꼬달이의 발달 상황에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 한채 24개월 영유아 검진 시기가 다가왔다. 검진을 하러 병원을 방문했다. 하지만 꼬달이가 검진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수월하지 않았다. 꼬달이는 집에서 보다 훨씬 어수선한 행동을 보였고, 검진 선생의 말에 전혀 집중하지 않았다. 낯선 공간, 낯선 젊은 여자 선생의 쌀쌀스러운 지시를 따를 리 없었다. 꼬달이는 이 낯선 환경에서 자기가 익숙하게 봐왔던 물건이 없는지 찾기에 바빠 보였다.
꼬달이는 겁이 많은 아이였다. 이때는 몰랐는데 불안도가 큰 아이일수록 낯선 환경에 놓이면 더 산만해진다고 한다. 본인이 좋아하고, 익숙한 자동차 장난감이나 책을 찾으면 조금 편안해 지고는 했다.
아이를 본 검진 선생은 아이가 왜 이렇게 산만하냐고, 지금 당장 큰 병원에 가서 검사받을 수준이라며, 생각 없이 말을 쏟아냈다.(너무 당황한 나머지, 우리아이에 대해 뭘 안다고 전문 의사도 아니면서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냐고 말하지 못한 게 아직도 마음에 한이 된다.) 우린 제대로 된 검진도 받지 못한 채 소아과 의사를 만나야 했다.
"어머니, 지금 언어치료 시작하시면 좋을 거 같아요. 지금이 딱 좋은 시기입니다."
"선생님, 주변에서 보면 갑자기 어느 날 말문 터졌다는 아이들도 있잖아요. 조금 더 기다려도 되지 않을까요?"
"어머니 말씀처럼 그런 아이들도 있지요. 그럼 다행이지만, 이미 또래들과 차이는 벌어졌고, 말이 늦을수록 인지도 늦어져요. 또래들과 차이를 조금이라도 좁히기 위해선 치료가 필요합니다. 빨리 시작할수록 좋으니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건 어쩌면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있을 아이의 문제를 늦게 발견해 개입 시기가 늦어질까 봐 걱정하면서도 그래도 우리 아이는 문제없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처음 언어치료를 시작했을 때처럼 별 효과 없이 아이에게 스트레스만 주는 건 아닌지, 더 기다리는 게 맞는 건 아닌지 고민은 계속되었다. 아이와 관련된 결정은 아주 작은 거 하나라도 고민의 연속이었다. 엄마 노릇이란 이렇게 늘 어렵기만 했다. 나에게 이런 선택의 순간은 100미터 달리기를 한 듯 숨이 차 올랐다.
꼬달이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인 내가 주는 언어 자극이 부족하다면 전문가를 찾는 게 맞는 거라고. 낯선 선생님과 놀이시간을 갖는 것 자체도 아이에겐 새로운 경험일 것이고, 그 경험을 통해 아이도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아무런 자기 변화와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게 없다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더 솔직해지면 치료라도 시작해야 내 마음이 놓일 것만 같았다. 긴 기다림이 예상되는 이 상황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했다. 이제 단순히 잘 먹이고 잘 재우는 육아만으로는 부족했다. 아이는 이제 혼자 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하나 늘려나가야 할 나이가 되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학원을 조금 일찍 다니기 시작하는 거 뿐이야.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기다리고 있었고, 아이는 24개월 무렵 주 1회 언어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