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미사여구를 붙여서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오늘 그저 좋아한다는 단어를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발음하고 싶다. 정말로 담백하게, 그리고 갸륵하게, 나는 조개를 참 좋아한다. 이것이 내가 조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내는 방법인 것만 같다.
<하트시그널> 이란 리얼리티 연애 예능을 아시는지?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은 시즌2였다. 그리고 하고 많은 명장면 중에 내가 참 좋아하는 장면을 꼽으라면, 한 여성 출연자가 호감이 있는 남자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이다. 여자는 먼저 남자에게 특정 음식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묻는다. 그리고 상대방이 좋아한다고 대답하자 그녀는 세상 행복한 얼굴로 대답한다.
“저도요. 저도 좋아요. 좋아해요. 헤헤헤.”
무언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의 그 말갛고 행복한 모습. 나는 여자이지만 그 순간, 그녀의 매력에 퐁당 빠졌었고, 귀엽고도 공감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함‘을 좋아한다고 표현할 때의 가장 순수한 표정. 그리고 그 감정을 가장 잘 전달하는 방법은, 그저 진심을 담아 좋아한다고 내뱉는 일이구나!! 크게 느꼈다.
조개구이를 떠올리면 늘 함께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바로 오이도의 바다와 하늘이다. 그리고 패러글라이딩 하는 사람들. 푸르른 바다 앞으로 융단 같은 갯벌이 가득 펼쳐진다. 어둑어둑 일곱 시가 넘어가면 붉음과 노랑과 파랑이 눈앞에 뒤섞여 아른거린다. 날개를 펼친 새를 닮은 무엇들이 꽃잎처럼 살랑살랑- 움직인다. 바라보고 있자면 시간이 멈추고, 그 와중에 술이 술술 넘어간다.
대학생 시절 나는, 패러글라이딩 동아리였다. 그리고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글라이딩 체험은 오이도에서 했던 것이었다. 착지가 어려워서 바다에 빠지는 줄로만 알고 두근두근했던 기억. 파아란 바다 위를 날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아니, 잊고 싶지 않다. 언덕 위에서 바람이 불 때면 있는 힘을 다해 달린다. 그러면 바람을 타고 발이 어느새 두둥실 뜬다. 쓰면서도 믿기지 않는 감각이다. 산 위를 난다. 바다 위를 난다. 바람이 나를 밀고, 하늘을 헤쳐서 나아가는 감각. 그 자유의 느낌과 황홀함이란!
요즘은 마음에 먹구름이 끼는 주말에, 주로 먹으러 오이도에 간다. 짭조름하면서도 부드럽고 귀여운 맛. 조개마다 그 매력도 다 달라서 더욱 행복하다. 알록달록한 패러글라이더의 모습을 보면서 소주 한 잔에 조개를 하나 둘 까서 먹는다. 조금 이르게 집으면 바다향이 찌릿-하게 들어온다. 딱 맞게 익혀 먹으면 부드러운 속살이 조개 국물과 함께 입안에 감긴다. 바다를 쳐다보느라 나도 모르게 조금 더 익히면, 아주 쫄깃-한 조갯살이 불향과 함께 혀를 공격한다. 어떻게 먹어도 다 좋다. 그대로 먹어도 좋고, 치즈 양념을 올려도 좋고, 초장의 새콤한 맛과 함께 먹어도 좋다.
조개가 처음에는 입을 꽉 다물고 있다가, 뜨끈한 불 위에서 입을 탁- 벌리는 순간이 정말이지 기쁘다. 안 풀리는 인생의 수수께끼도 이렇게 타악 하고 열리면 좋겠지 싶다. 서서히 서서히 열리다가 마지막 순간에 파악하고 기백이 넘치게 벌어지는 순간은, 나만의 불판 위 불꽃놀이다.
조개를 보고 있자니, 나는 조개와 닮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껍질이 없거나, 그 껍질이 투명해서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한 방에 보여주는 사람은 못 되는 것 같다. 애초부터 첫인상에 완전한 호감을 사는 타입은 아니다.
껍질을 열어봐야 그 속을 볼 수가 있는데, 손으로 억지로 열려고 해 봐도 웬만해서는 쉬이 껍데기를 열지 않는다. 누군가 막 불을 때고 다가오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음을 열어보려고 노력한다.
근데 또 조금씩 순차적으로 여는 것도 재주가 없어서,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내가 먼저 팍- 하고 상대방을 강하게 좋아하고 만다. 너무 좋아서 혼자 속도를 높이고 나를 빵- 다 열어 보여 주고야 만다.
“저 사실 야들야들하고 여린 속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대가 불을 때기 시작했으니 껍데기 안으로 어서 들어오세요 이리 와서 신나게 같이 놀아요!”
다만, 그 지점까지는 생각보다 꽤나 오래 걸리는 인간인 것인데, 불 넣어주는 사람들과의 속도조절은 늘 어렵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늘 조금 어렵나 보다. 조개구이는 아무래도 불 조절을 잘해야 한다.
가끔 김밥 체인점에서 저렴한 된장찌개를 먹다 보면, 모시조개 속살이 말도 안 되게 작아서 실망할 때가 있다. 그래도 뭔가 씹힐 만한 건더기를 기대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너무나도 쪼그라든 작고 작은 속살이 들어있는 것이다. 모시조개는 좀 동글동글 귀엽게 생겨서 일단 누구나 첫인상은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호감형이지만, 막상 열어보면 만족할지의 여부는 모른다. 까 봐야 안다.
된장찌개 안의 텅 빈 모시조개는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홍 가리비, 비단가리비 - 이 종류 저 종류 열어봐도 기본으로 꽉 차고 동그란 알맹이가 들어있는 가리비를 닮고 싶다. 내 안의 양분을 잘 키우고 키워서, 그 누가 내 껍데기를 열어봐도 실망하지 않을 사람이 되고 싶다. 된장찌개에 국물 맛만 내고 사라질 것이 아니라, 육수를 내고도 만족스러운 살을 그대에게 내보여주고 싶다. 그렇다고 귀염둥이 모시조개를 하찮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된장찌개에서 모시조개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잘 안다. 다만 삶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따금 어떤 조개는 진주까지 숨기고 있지 아니한가?
오늘도 속살을 채우기 위해 제법 노력한 하루였다. 일을 하고, 책을 읽고, 걷고, 이야기하고, 썼다. 시작부터 대놓고 늘 의도하는 것은 아닌데, 음식 이야기가 자꾸 사람 이야기로 간다. 아무래도, 음식과 사람을 동시에 너무나도 좋아하기 때문이리라. 이쯤 되면 ‘음식으로 보는 인간탐구학’ 이라도 만들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웃어본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둘 다 싫어하는 것보단 좋은 인생이라는 것이다
아우 우- 이름만 불러도 좋아 죽겠다. 한 시인은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된다고 하였던가. 조개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다 보니 황홀한 조개구이가 되어 곧 나의 뱃속으로 올 것만 같다. 흐흐. 열심히 불러줄 테니 요리가 되어서 제게 와주세요, 조개님들! 올 때는 부디, 차가운 진로 친구 불러서 함께 와 주시겠어요? 정말이지 소주 씨와 조개들은 영혼의 단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