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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톨슈 May 14. 2021

영혼을 달래는 소울 푸드 너

소울메이트 순대국



“이모 여기 정식 하나랑, 진로이즈백 하나요!”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앞에 있는 카운터에 자연스럽게 주문을 하고 착석한다.

굳이 혼자 오셨냐고 묻고 답할 것도 없고, 아주 깔끔하다.

나는 식당의 짜 둘 탕 하나, 혹은 잔치 하나 비빔 하나! 이런 주문 방식을 좋아한다. 한국말은 정말이지 재미있는 언어라, 어떻게 생략하고 줄여도 말이 될 때가 많아 흥미롭다.


이 음식은 보통 아주 빠른 속도로 나온다. 먼저 가져다 주신 차디찬 소주의 뚜껑을 도르륵- 돌려 여는 순간이 제일 좋다. 집 냉장고와는 다른 업소 냉장고의 차가운 기운은 소주를 영접하기에 황홀히 딱 맞는 온도이다. 가끔은 술 좀 많이 먹어본 여자처럼 - 아니라고도 못하겠지만- 괜스레 팔꿈치로 병 아래를 두어 번 치고, 바로 돌린다. 이건 맛있게 먹기 위한 작은 의식 중 하나이다. 보글보글 올라오는 기포들이 퍼레이드의 알록달록한 풍선처럼 귀엽다.


 첫 잔은 삼분의 이쯤 따라서 원샷하는 게 내 스타일이다. 졸졸졸 따라서 한 잔 탁- 털어 넣고 나면 오늘의 메인 음식이 곧장 나온다. 한국인의 패스푸드는 아무래도 이 국밥이다. 계속 끓이고 있다가 작은 뚝배기에 덜어내면 금세 따뜻하고 발그레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그래서 백의민족 시대에서부터 주막의 단골 메뉴였을런지도 모른다.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남장을 하고서라도 국밥과 술을 먹으러 다녔을까, 그런 상상을 하면서, 앞에 놓인 모락모락 연기 나는 그릇을 마주한다. 그렇다. 오늘의 음식은, 나의 사랑 순댓국!!!







 첫 입은 신중하고도 소중하다. 한 숟가락에 부추, 머릿고기, 곱창 부분이 골고루 들어가게 정성스럽게 떠서 밥과 함께 깍두기를 척 올린다. 소주도 반잔 살짝 넘게 부어두고. 한 숟가락에 입안 가-득 밀어 넣고서는, 뒤이어 바로 소주를 들이켠다. 와, 맛있어서 춤이 절로 나온다. 보는 눈이 있으니까 참는 것이지, 한 숟가락 먹을 때마다 내적 댄스를 춘다. 순댓국이 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면, 한 번 먹을 때마다 어깨를 흔들고 손발을 파닥거렸을 것이다. 크게 들어가 있는 순대는 건져내어 미리 앞 그릇에 식혀둔다. 적당히 식으면 새우젓을 콕 찍어서 한 번에 입에 넣는다. 입안이 텁텁하게 느껴지면 반찬으로 나온 생양파를 쌈장에 찍어서 입을 헹군다. 숟가락으로 뚝배기 벽을 이용하여 국물을 쫘악 빼고 건더기만 듬뿍 삼켜보기도 하고, 쫄깃한 부분만 젓가락으로 건져 먹기도 한다. 마지막에는 뚝배기를 기울인다. 남은 국물 한 방울도 놓칠 수 없다. 진한 우윳빛 국물을 마무리로 입에 털어 넣는다. 탁- 깔끔히 한 그릇을 비운다. 요정이 와서 설거지라도 하고 간 듯,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에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간다. 허기지고 불편했던 마음이 구운 오징어처럼 접힌다.


 다 먹고서 만족스러운 배를 두들기고 있는데, 이십 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긴 생머리의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검정 슬랙스 바지에 살구색 블라우스. 회사원 같다.


“이모 순댓국 하나랑 막걸리 하나요”


 크으- 사실 순댓국에 반주 홀로 하는 여자 사람을 전국으로 따지면 많기야 하겠지만, 딱 이렇게 동시간에 가게에서 마주치기는 처음이다. 정말이지 반갑다.  브런치였다면 일단 지금 순간의 모습만으로 구독 버튼을 눌렀으리라. 때는 오후 여섯 시였다. 나처럼 일터에서 지친 영혼을 달래러 들어왔을 일일지 몰랐다. 그럼 그럼. 지쳤을 때는 순댓국에 한 잔이지. 자연스럽게 막걸리를 따고 쭈욱 들이키는 모습에 모르는 사람인데도 아주 호감이 간다. 말 걸고 싶을 정도로 좋다. 혹시나 부담스러워할까 봐 나도 수줍게 시선을 거둔다. 내 테이블 위의 마지막 남은 소주 한 잔을 마시며, 이런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자 혼자 가기에 대체로 아저씨들이 가득한 일반 순댓국집이 부담스럽다면, 대놓고 혼밥러가 많은 할매 순댓국 같은 체인도 괜찮다. 비슷하지만 단정하고 예쁜 체인들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아주 카페 뺨치는 인테리어의 순댓국 집을 차려볼까. 순댓국 카페. 순댓국 먹을 때 옆에 빈 와인병이 나란히 줄 서있고, 조명은 은은한 노란빛, 테이블에 꽃병이 놓여 있다면 어떨까. 새햐얀 대리석 테이블에 금빛 철제 의자를 매치해야지. 뚝배기는 당연히 포기할 수 없지만, 수저받침은 고급스럽게 놔주고 싶다. 원한다면 소주를 차갑게 해 둔 뒤, 와인 잔에 식전 주로 따라 드리리다. 즐거운 상상을 하며 오늘의 만족스러운 먹방을 마친다.







 미국에 머물렀을 때, 내가 있던 텍사스의 작은 도시에는 한식집이 단 하나뿐이었고, 순댓국은 메뉴판에 없었다. 순댓국을 못 먹은 지 삼 개월이 넘어가자 그리움에 마음이 타들어갔던 때를 떠올린다. 한국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보다 더 그리운 것은 정말 순댓국이었다. 그래서 인천 공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순댓국집을 향해 돌진했었다. 텍사스에서 돌아오기 일주일 전, 가장 많이 검색한 것은 ‘인천 순댓국’과 ‘영종도 국밥’이었니 말 다했다.


 집에서 더 편안히 먹어 보려고 순댓국 포장을 시도해 본 적도 있다. 인기 있다는 온라인 급속 냉동 상품도 시켜보았다. 그러나 가게에 가서 뚝배기 가득 먹는 그 맛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순댓국에는 연거푸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낸 가게의 공기와, 국밥을 사랑하는 자의 향이 진하게 배어있다.

어쩔 수 없다. 내일도 순댓국집에 혼자서 씩씩하게 들어가야지!







순댓국을 한 그릇 먹은 날이면, 정말이지 속이 든든하다. 영혼이 위로가 되었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테다. 그래서 순댓국은 나의 소울 메이트다. 미안하지만, 누구 없인 살아도 순댓국 없이는 못 살 것 같다. 순댓국아 사랑해! 평생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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