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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톨슈 Oct 24. 2021

01. 나의 짝사랑, 영월

영월을 기대하며

 

 

 영월로 가는 길은 늘 마음이 편안하다. 영월이라는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하면, 무엇보다도 산이 먼저 마음으로 들어온다. 산은 다 똑같이 생겼는걸!이라고 외쳤던 어린 시절의 나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싶게, 삼십 대의 나는 강원도의 산세를 보고 매번 격하게 감동하고 만다. 


 산은 분명 우리 집 앞에도 있고, 지난주 갔었던 충청도에도 있었는데 영월의 산세 같지는 않았다. 어릴 적 스케치북에 다 함께 그림을 그릴 때와는 다르게 산은 정삼각형이지도 직삼각형이지도 않았다. 일렬로 나란히 옆으로 배치되어 있지도 않았다. 뾰족한 끝이 뭉퉁그려져 둥그런 삼각형 모양인 듯하다가도 뒤집힌 반찬 그릇처럼 넓적한 모양이기도 했다. 그런 여러 산들이 앞으로 뒤로 막 겹겹이 겹쳐서 나타나다 보면, 대체 무슨 모양인지 말로는 설명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런데도 그 불규칙한 초록 형태들의 배열이 사랑스러워서 나는 그만 숨이 막힐 지경이다. 펼쳐지는 산맥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고, 거대하고 아름다운 산들 아래에 나라는 인간이 살아있음을 느낄 때, 나는 안도한다. 


 도시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감각이다. 도시의 산 아래에는 산을 마음껏 감탄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사람과 높고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시선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사람도 다양한 문화 콘텐츠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물론 도시의 풍경도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대도 둘 중 하나만 골라 살아가라는 가혹한 시련을 받는다면, 영월의 산 풍경을 택할 것 같다. 자극과 흥분과 새로움에서 오는 행복은 의외로 오래가지 않는 것임을 이제는 잘 안다. 


 나에게 인생은 두 발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았다. 계속해서 바퀴를 굴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고 새롭고 예쁜 풍경도 눈앞에 멀리는 보이지만 가까이 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무릎을 다쳐도 복숭아뼈가 치여도 일단 페달을 계속 밟고 살았다. 그러다가 꽈당 넘어져서 울기를 몇 번. 트럭에 치인 것처럼 나가떨어지기도 몇 번. 그래도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일단 페달을 밟고 보던 나는 요즘 문득 자전거를 왜 타고 있는지 멈춰서 돌아보게 되었다. 눈앞의 풍경을 강제로 자세히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그 풍경이 사실은 멀리 있는 새로운 풍경과 다르게 아름답고 눈부신 거였다. 같은 풍경도 왼쪽 눈을 감고 보면 달랐고 오른쪽 눈을 찡긋해서 보면 달랐고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달라서 다 예쁠 수도 있는 거였다. 


 오히려 같은 풍경에 서 있을 때 나는, 고개와 눈짓을 바꿔가며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정신없이 흐르는 풍경이 아닌 꼿꼿이 서있는 나라는 존재의 탐스러움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었다. 이제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서 있는 내가 더 이상 한심하지도 나약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같은 것을 계속 보고 같은 곳을 계속 가도 참 좋을 수 있다는 감각을, 나는 영월을 통해서 처음 배웠다. 


 몇 번을 가도 변하지 않는 산 풍경과 시내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영월을 몇 년째 마주할 때마다, 나는 시골 외할머니 품에 안긴 일곱 살 어린아이가 된다. 무릎을 베고 누워서 탈탈거리는 선풍기를 쐬면서 할머니가 잘라준 즙이 넘치는 수박을 깨문다. 달려드는 바람이 선선한데 할머니의 무릎과 쪼글쪼글한 손은 적당히 따뜻해서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게 되었었다. 마음이 놓였다. 마음이 내게 괜찮다고 말한다. 마음이 놓이는 그 감각, 바로 그 감각이 어째서인지 서울에서는 찾아지지가 않아서, 자꾸만 영월로 가나 보다.




 또 영월에 가려고 준비 중이다. 이번에는 <영월 일주일 살기>. 영월군에서 영월 홍보차 일주일 머물며 사진과 글을 올려줄 사람을 모집했는데, 보자마자 신청을 했다. 신청 이유에 내가 영월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주절주절 분량이 넘치게 쓰고 말았다. 그랬더니 덜컥 대상자로 선정이 되었다. 마음이 설렌다. 내가 찍은 사진들이 홍보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고 했다. 최고의 사진으로 선정되면 상금도 더 준다고 한다. 상금보다 탐나는 것은 짝사랑하는 상대(=영월)에게 인정받는 기분일 것이다. 진짜 사랑하는 것들을 사진으로 찍으면 나는 사진에 그 애정이 묻어난다고 믿는다. 


 골목골목, 산과 계곡과 강 구석구석, 가게 하나하나, 풀 하나하나- 내가 정말 사랑하는데, 이 짝사랑을 잘 담아올 수 있을까. 늘 갈 때마다 사진을 수백 장씩 찍지만 이번에는 더 마음을 담아 셔터를 눌러볼 작정이다. 아주 오랜만에 디지털카메라도,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꺼냈다. 디지털 카메라라고 하는 것은 십 년도 더 된 어느 날 유럽에서 썼던 것이 마지막일 구형 올림푸스 카메라다. 지금은 핸드폰 카메라가 더 화질이 좋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이걸로 찍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순수하고 해맑던 열일곱의 내가 되어서 그런 순수한 마음을 넣어서 사진을 찍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 배낭여행을 떠났던 학생처럼 목에 카메라를 걸고, 걱정 없이 계속 마음의 셔터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싶다. 


 늘 사나흘밖에 못 머물렀었는데 이번에는 일주일이니까, 정말 질리도록 영월의 풍경을 바라볼테다! 늦가을이 왔고, 비수기의 평일이니까 숙소는 발이 멈추는 곳에서 잘 것이다.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려야지!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또 어떤 최고를 발견하게 될까, 마음이 설레어서  손가락이 자꾸만 영월 정보 찾기에 머문다. 숙소를 검색하고, 여러 번 갔었던 관광지 사진과 정보를 보고 다시 본다. 작은 마을의 이장님들께서 새로이 마련한 체험활동은 없는지 살핀다. 애정해 마지않던 식당과 카페들이 그새 닫지는 않았을지 네이버에 한 번씩 쳐보면서 그네들의 안부를 챙긴다. 주천면아 안녕, 김삿갓면아 안녕! 곧 내가 간다!




 나는 이렇게 영월 일주일 살기를 준비 중이다. 요즘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아서 힘든 나날들이었는데 영월에서 일주일을 쉬게 하려는 하늘의 뜻이었나 보다. 영월의 영은 편안할 영이고 월은 넘을 월이다. 사람들이 지금의 힘든 시기를 편안하게 넘어가기를, 나도 지금의 어려운 마음들을 무탈히 넘기기를 기원하면서 영월의 풍경을 그린다. 평화롭다. 





 이 이야기는 영월에서의 행복한 일주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함께, 떠나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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