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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톨슈 Oct 24. 2021

04. 마법의 와인 족욕

예밀 와인족욕 힐링체험장과 유튜브 촬영


 비 소식이 있는 날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부터 날이 흐리다. 부러 따뜻한 커피에 빵과 계란, 사과까지 든든히 챙겨 먹고 나왔다. 오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삿갓면 쪽으로 드라이브길을 향한다. 중동면 석항역에서 차를 몰고 나와 망경대산을 지나는 도로에 진입하면 금방 해발 400M라는 글자가 보인다. 날이 으슬으슬 춥지만, 오늘도 산 모양 구경에 여념이 없다. 와 저건 진짜 삼각김밥 같다! 우와 저 봉우리는 두 개가 이어진 게 쌍봉 오리다! 조금씩 다른 산의 모양에 구경을 해도 해도 질릴 틈이 없다. 20분여를 넘게 달렸을까, 금세 내 차보다도 큰 포도 모형과 포도밭들이 양옆으로 펼쳐진다. 영월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과일, 김삿갓 포도를 주로 재배하고 또 그 포도로 맛있는 와인을 만드는 예밀 마을이다. 와인도 살 겸, 예밀 와인 힐링 족욕센터에 도착했다. 건물 앞으로는 천이 흐르고, 나무로 인테리어 한 와인 바와 족욕체험장, 다양한 식물이 어우러진 사랑스러운 곳이다. 나에게는 이번이 한 다 여섯 번째 방문이 되려나, 그래도 올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다.  


 족욕체험을 신청하고 자리에 앉아서 따뜻한 물을 튼다. 물 온도를 재는 온도계가 있어서 신기하다. 내가 좋아하는 온도는 45도쯤이다. 권장은 40도에서 43도쯤이지만 발이 많이 찬 편인 나는 살짝 놀랄 만큼 뜨끈한 물의 감각이 좋다. 앗 뜨거워 라고 말하면서 차가운 발을 뜨거운 물에 담글 때면 나는 늘 달이 태양과 겹쳐지는 그런 순간을 떠올린다. 과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실제 온도는 잘 모르겠지만, 감각적으로 차가워 보이는 달이 활활 타고 있는 듯한 태양과 합쳐지면 이렇게 황홀한 기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그것은 마치 섹스를 할 때와도 비슷한 감각이다. 늘 온몸이 차가운 나에게 뜨거운 몸이 겹쳐지면 몸 안에서 촛불이 켜지는 기분이다. 서서히 따뜻한 흥분과 희열이 발 끝 손 끝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진다.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 대신, 뜨거운 와인을 섞은 물로 나를 덥혀주려고 한다.




 

 준비된 히말라야 소금과 꽃잎, 그리고 예밀 마을의 정성이 담긴 와인을 부어준다. 투명하던 물이 붉게 변하고 빨갛고 커다란 꽃잎이 둥 둥 떠있으니 참 아름답다. 준비해주신 드라이한 레드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안주로 준비된 치즈와 마카롱 조각을 한 입 깨문다. 달콤하고 시고 씁쓰름한 여러 가지 맛들이 한꺼번에 입안에 퍼진다. 이곳이 천국인 것만 같다. 행복을 만끽하고 있을 때, 한 부부가 활달히 인사하며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안녕하세요- 족욕 체험도 하고, 유튜브도 찍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하나도 낯을 가릴 것 같지 않은 당당함과 호탕함이 조금 빠른 말씨에 섞여있다. 남자분은 촬영용 카메라를 들고 계시고 여자분은 조잘조잘 흥겹게 계속 말씀을 잘하신다. 직원분께 촬영 동의를 구하고는 성큼성큼 나에게로 와서 말을 거신다. 여행지에서의 낯선 사람과의 이야기라면 아주 환영이다. 우리는 서로의 하고 있는 일과 사는 곳, 왜 이곳에 왔고 유튜브나 블로그에 올리려고 하는지 등의 정보를 나눈다. “저는 00 티브이를 운영하고 있고요, 괜찮으시다면 인터뷰나 족욕하는 모습을 원테이크로 인터뷰로 찍어서 올리고 싶어요. 괜찮으실까요? 말씀하시는 스타일 보니까 잘하실 것 같아서요, 호호.”



사실 나는 지인들에게 유튜브 출연 제의를 자주 받는다. 속으로는 긴장할는지는 몰라도, 티가 잘 안나는 타입인가 보다. 또 무슨 질문을 받아도 오디오가 비지 않게 계속 주절거릴 수 있는 소소한 능력이 있다. 그래도 즉흥으로 응해주는 일은 처음인 것 같다. 이 우연한 만남이 유쾌하다.

 검색을 해보니 아주 큰 채널은 아니고 몇백 명 정도 되는 채널이기에 크게 상관없지 않을까, 재밌겠다 싶은 마음이 동하다가도 혹시 이상하게 편집해서 올리거나 잘못된 나에 관한 정보를 올릴까 걱정되는 마음도 든다. 그런데 저쪽에서 먼저 가지고 계신 핸드폰으로 전화를 울려주시며 명함도 건네주신다. 요즘 시대의 가장 안전한 번호 교환법! 번호를 받는 것만으로는 진짜 그 번호가 맞을지 아닐지 모르기 때문에 완전히 안심이 되지 않는데 이렇게 직접 통화를 눌러 번호가 뜨면 안심이 된다. 그래, 뭐- 너무 이상하게 올려주시면 편집해달라고 연락하면 되는 거지 뭘! 하며 흔쾌히 번호와 명함을 받아 들고 카메라를 마주 했다.


 카메라를 켜자마자 세 톤은 더 업된 목소리가 족욕체험장에 울려 퍼진다. 다양한 손짓과 함께 구독자의 이름을 부르며 사람 좋게 웃다가도 나에게 말을 걸었다가 하는 유튜버님을 지켜보는 게 즐겁다. 진행 솜씨가 예사롭지 않으시다. 세상에는 참 매력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나도 잘 익은 영월 포도처럼, 여름의 햇살을 버티고 맛있고 매력적인 포도나 와인이 되고 싶다.





 촬영 후 그녀는 몇 번이나 고맙다며 인사를 건넸다. 이런 분을 만나서 오늘 운이 좋다면서 연거푸 감사를 표현해 주셨다. 별 것 아닌 목소리나 뒷모습 오분의 출연 만으로 누군가에게 감사를 받고 활짝 웃으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일은 신비하다. 나중에 핸드폰에서 세모 버튼을 누르면 소중한 이 순간을 계속해서 플레이해 볼 수 있다는 것도 기대가 된다.


 사실 유튜브를 하려고 찍어둔 영상이 꽤 많은데, 나도 용기 내어서 올려볼까나? 호탕하고 밝고 용기 있는 유튜버를 만나서 즐거운 경험을 얻은 하루였다.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영월 예밀 와인의 붉은 기운이 보이지 않는 실을 연결해 준 기분이다. 비가 와도 발과 마음이 따뜻한 붉음으로 물드는 그런 가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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